1945년 7월 16일. 세계 최초의 핵실험이 실시된 날이다. 미국은 이날 오전 5시29분45초, 뉴멕시코주 앨라모고도사막에서 원자폭탄을 터뜨렸다. 엄청난 섬광과 함께 12㎞ 상공에 이르는 버섯구름 기둥이 만들어졌고, 실험장소로부터 240㎞ 떨어진 곳에서도 그 빛을 볼 수 있었다. TNT 2만t의 위력이었다. 미국은 이 핵실험에 ‘삼위일체(Trinity)’라는 이름을 붙였다. 성부·성자·성령의 세 위격(位格)을 가진 유일한 실체인 하나님에 비유한 것이다. 전지전능한 신적 경지에 다가섰다는 오만이 묻어난다. ‘핵 비극’의 서막이었다.
그로부터 6년 후인 1951년, 미국은 남태평양 마셜제도에 있는 산호초섬 ‘에네웨타크(Enewetak)’에서 세계 첫 수소폭탄 실험을 했다. 일명 ‘아이비 마이크(Ivy Mike)’. 이 수소폭탄의 위력은 TNT 1040만t으로,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의 450배였다. 미국이 문을 연 ‘핵 세상’으로 소련·영국·프랑스·중국 등 강대국은 물론 인도·파키스탄·이스라엘에 이어 북한까지 들어섰다. 미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1945년부터 2016년까지 모두 2055번의 핵실험이 이뤄졌다. 핵실험을 가장 많이 한 나라는 미국(1032번)이며, 소련(715번) 프랑스(198번) 영국·중국(각 45번) 등이 그 뒤를 이었다.
그 결과는 참담하다. 대표적인 곳이 에네웨타크. 미국은 이 일대에서 1946년부터 1958년까지 67번의 핵실험을 했다. 핵폐기물 오염이 문제가 되자, 미국은 1977년 뒤늦게 에네웨타크 환초의 일부인 루닛섬에 임시로 두께 45.7㎝의 콘크리트 돔구조물을 만들어 핵폐기물을 보관했다. 그 핵폐기물에는 독성이 가장 강한 플루토늄-239도 포함돼 있다. 그런데도 미국은 1983년 마셜제도 공화국에 자치권을 부여하면서 돔구조물에 대한 관리권도 넘긴 채 핵폐기물을 임시 보관 상태로 방치하고 있다. 에메랄드빛 바다의 천국을 ‘핵 지옥’으로 만들어 떠넘긴 셈이다.
그 후 30여 년이 지나면서 돔구조물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기후 변화로 해수면이 상승하고 있어 돔구조물에 바닷물이 침투할 경우 방사성물질이 유출될 우려가 크다. 열대성 폭풍으로 인한 돔구조물 파손 가능성도 있다. 지난 16일 남태평양을 방문한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에네웨타크에 대해 “미국이 만든 관(棺)”이라고 진단하면서 방사성물질 유출 위험을 경고했다. 하지만 핵 재앙을 유발한 미국은 묵묵부답이다. 그러면서 다른 나라의 비핵화에 열을 올리고 있다. 위선도 이런 위선이 없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