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정(大長征)은 중국인에게 불굴의 의지를 상징한다. 현대 중국의 초석이 된 대장정의 기록은 어마어마하다. 1935년 10월 20일 중국 서북부 산시성 옌안에 모인 공산당 홍군은 6000여 명에 불과했다. 공산당이 1934년 10월 국민당의 공격을 견디지 못해 근거지인 동남부 장시성을 떠날 때 홍군은 8만6000여 명이었다. 10명 중 1명도 살아남지 못한 것이다.
국민당은 공산군을 박멸했다고 여겼을 법하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대장정은 홍군이 농민을 만나며 혁명의 씨앗을 뿌리는 계기가 됐다. 홍군은 약탈 등을 일삼았던 국민당군이나 군벌과 달랐다. 농촌 곳곳에서 토지를 무상몰수 무상분배했고, 농민을 계몽하려고 애를 썼다. 대장정이 끝날 무렵 많은 농민은 공산당 지지자가 됐고 결국 전세는 역전됐다.
대장정은 유사 이래 인류가 단일한 군사상 목적으로 행한 최대의 기동이라고 한다. 368일 동안 12개 성, 18개 산맥(다섯 개는 만년설산), 24개의 강을 건넜다. 홍군은 운송 수단이 없어 대부분 걸어서 행군했다. 말과 노새는 극소수 간부를 위한 것이었다. 홍군의 행군 거리는 9600㎞였다. 이런 대장정은 마오쩌둥에게 공산당의 유일 리더십을 가져다주었다.
그래서 중국은 지금도 미래를 열어나가는 결단을 할 때 대장정을 자주 인용한다. 최근 미국과 무역전쟁이 한창인 시진핑 국가 주석은 ‘대장정’ 기념탑에 헌화하고 대장정 정신을 언급했다. 우주선과 통신 위성을 발사하는 중국제 로켓 시리즈의 이름도 ‘장정’이다.
중국만이 아니다. 우리나라 정치인도 결기를 보여주며 리더십을 얻으려고 할 때 종종 따라 한다. 대표적인 게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의 2006년 ‘100일 민심 대장정’이다. 당시 그는 전국을 일주하며 노동 현장 체험 등 인간적인 모습으로 어필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이었다. 손 대표가 화려하게 대장정의 마침표를 찍는 날 하필 북한이 처음 핵실험을 했다. 여기에 대장정 이슈는 묻혀 버렸다. 그의 험난한 대권 가도를 예고한 전조였다. 물론 결과론이다.
최근에는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민생 대장정’을 했다. 지난 7일 부산에서 시작해 지난 25일 서울 광화문광장 집회로 막을 내렸다. 그는 18일간 전국 4080.3㎞를 누볐다고 한다. 야당 대표로서 강력한 리더십을 국민에게 보여주려는 의도로 보인다. 실제 효과가 있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그래서 민심의 향배가 궁금하다.
정순백 논설위원 sbj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