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와 바나나는 다르다.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뜬금없이 사과와 바나나의 차이를 들먹이는 이유가 있다. 사과와 바나나를 같은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아니, 사과를 바나나라고 하고, 바나나를 사과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과는 사과이고, 바나나는 바나나일 뿐이다.
‘사과와 바나나는? 사실이 먼저다(Facts First)’라는 CNN의 캠페인에 등장하는 과일들이다. 캠페인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사과가 있다. 그런데 누군가 그것을 바나나라고 말을 할 때 처음에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그러나 주변에서 계속 사과를 바나나라고 외치면 달라진다. 사과가 사실은 바나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그러나 사과는 사과일 뿐이다. 사과가 바나나일 수는 없다.
언론은 많은 사회적 역할을 한다.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 성숙한 민주사회의 시민을 위한 교육, 문화와 교양 등 그 역할과 기능은 셀 수 없이 많다. 그러나 언론의 본령은 팩트 전달에 있다. 팩트 전달이라는 본령에서 벗어난 언론은 아무리 정보가 풍부하고, 아무리 문장이 유려해도 진정한 언론이 아니다.
팩트 전달이라는 언론의 본령은 거의 예외 없이 보도 속도와 긴장 관계에 있다. 속도는 정보 전달의 적시성을 의미한다. 때를 놓치면 의미가 퇴색한다. 중요한 뉴스를 남들이 다 알고 난 뒤 보도하면 무용하다. 다른 신문이 먼저 보도하고 난 후 보도하면 가치가 떨어진다. 팩트의 정확성 못지않게 팩트 전달의 속도도 중요한 것이다. 즉 빠른 부정확성은 해악이지만, 느린 정확성은 무가치하다. 이는 팩트의 정확성이라는 이상(理想)만을 언론에 요구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우리는 언론 탄압의 가장 교묘한 방법의 하나가 팩트의 부정확성을 이유로 언론에 대한 과도한 제재, 손해배상, 처벌에 나아가는 것임을 역사적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리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언론사들도 수도 없이 많은 부정확한 보도를 해왔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그 언론사들의 명예가 더럽혀지지는 않았다. 오보(誤報)는 언론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이는 법원의 재판에 있어서 오판(誤判)이 숙명인 것과 같다. 이상주의자들이 아무리 그 가능성을 부인하고 규탄해도 오보는 언론의 숙명이고, 오판은 재판의 숙명이다. 그래서 오보를 부인하는 것은 민주적 언론을 부인하는 것과 다를 바 없고, 오판을 부인하는 것은 민주적 사법을 부인하는 것과 같다. 오보의 가능성이 전제되어야 기자들이 겸손해지고 신중해진다. 오판의 가능성이 전제되어야 재판관들이 겸손해지고 신중해진다. 결국 언론의 보도에서 중요한 것은 정확성과 속도의 조화라고 하겠다.
언론 보도가 시간적 제약 아래 급박한 상황에서 이루어졌다면 부정확한 보도라도 양해해 줄 수 있는 경우가 있다. 그 경우 부정확한 보도의 정정은 후속 보도를 통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급박한 상황에서의 보도라고 하여 부정확한 보도가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 그러나 시간적 제약이 별로 없었음에도 부정확한 보도를 한 경우에는 해당 언론사에서 더욱 큰 책임을 져야 한다. 이 경우 그 책임은 반드시 법률적인 책임에 국한되지는 않을 것이다. 여러 가지 형태가 될 것이다. 기본적으로는 해당 언론사의 수준이나 신뢰성 문제가 제기될 것이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팩트 확인을 위해 기울인 진지한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노력 없이 보도한 경우 시간적 제약을 이유로 오보가 면책될 수 없다.
필자는 국제신문의 독자로서 언론의 정확성과 속도를 조화시키는 문제를 말하고 있지만 그 실현 가능한 방법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국제신문 나름의 정책과 노하우가 있을 것이다. 다만 독자로서 제언하고 싶은 것은 팩트 확인에 최선을 다해 달라는 것이다. 그리고 남들이 팩트를 왜곡할 때 정확한 팩트를 전달하는 언론사가 되도록 노력해 달라는 것이다. 남들이 모두 사과를 바나나라고 할 때 바나나가 아니라 사과임을 소신 있게 전달하는 언론이 되기를 바란다. 사과는 바나나가 아니다.
변호사·법무법인 청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