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세상읽기] 산골 어르신들의 글쓰기 /최영욱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5-29 19:04:36
  •  |   본지 30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지난해 가을이었다. 국회에서는 소득주도성장을 두고 여야가 전혀 다른 소리를 하고 있었고, 이른바 ‘태극기 부대’가 자기들의 일을 하고 있을 때, 화살머리고지에서는 ‘남북 공동유해발굴’을 위한 지뢰 제거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각자가 각자의 말을 하고 각자의 일을 하고 있는 시간에도 가을의 꽃들은 어김없이 피어 방싯거리자, 각 지자체에서는 가을 축제를 열어 경쟁하기 시작했다.

경남 하동 평사리 최참판댁에서도 문학축제가 열리는데 ‘토지문학제’가 바로 그것이다. 그 문학제의 한 행사로 문해학교 어르신들의 시화가 초청되어 전시되고 있었다. 최참판댁 담장 중간 받침돌에 얹힌 어르신들의 작품 앞에는 많은 사람이 앉거나 서 있었다.

그들은 무릎을 치거나, 웃거나 또 어떤 이들은 하마 울고 있었다. ‘콩 심으러 갔다가/한글 공부하러 가려고/쎄가 빠지게 왔다/남은 고랑은 다음에 심고/꽁이 콩을 다 파묵고 내 글자도 같이 파묵는다’. 콩 심으러 갔다가 한글 공부 수업 시간에 맞추려고 허둥지둥 달리는 모습과 꿩이 심어 놓은 콩을 다 파먹지나 않을까 싶은 걱정, 배워도 배워도 자꾸만 잊어버리는 자탄이 섞여 울림이 큰 작품도 있고. ‘애정(왜정) 때 학교를 못 가고/가시나는 시집 가서 친정에 편지한다고/글을 안 가르쳤지/가난이 웬수였지/이 좋은 세상에 글을 배우니 얼매나 좋은지/가슴이/툭/ 터지는 것 같다/홍시 쪼그라진 것 같은 내 나이/웃음꽃이 피었다’는 작품도 있고. ‘시집이라고 옹깨/개○도 없대/숟가락 한 짝/대젓가락 한 짝/으찌 살았으까/88 나이에/재미진거슨/한글 밖에 없네’라고 쓴 88세 어르신의 작품 앞에서는 박장대소를 하다가도 이내 숙연해지는 모습들이었다.

평생교육법 제39조에는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성인의 사회생활에 필요한 문자 해독 능력 등 기초능력을 높이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필자가 속한 하동군에서도 평생학습조례 제2조에 ‘군민이면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필요한 것을 배울 수 있도록 평생학습에 필요한 계획을 수립하고 관련 시책을 강구하여야 한다’고 적어 놓았다.

이러한 규정에 의해 실시되는 ‘문해교실 지원 사업’에 참가하는 어르신들의 연령 분포도(2017년 하동군의 경우)를 보면 60대 34명, 70대 178명, 80대 이상 106명으로 나타났다. 이 통계치만 놓고 보아도 우리나라 근현대사가 한눈에 보이는 것만 같아 눈물겹다.

1930년대 태어나 일제강점기와 민족전쟁을 온몸으로 겪은 80대와 해방 즈음 태어나 역시 전쟁과 가난을 겪은 70대가 전체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핍진하여 고달프게 살아온 내력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짧은 운문이 사람들 발길을 잡아, 웃고 울게 하는 시대의 핍진함과 더불어 어머니들의 험난했던 삶의 고백에 공감하고 있는 것일 터이다.

여기 소개한 작품 외에도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탄다는 게 반대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타는 바람에 밤새 걸어서 집으로 왔다는 어르신은 이제 버스를 잘못 탈 일 없어 깨친 한글에 한없이 안도하는가 하면, 은행에서, 약국에서, 병원에서도 쓰고 읽을 줄 안다는 것에 대한 안도가 작품 곳곳에 스며 있다.

가난은 어르신들을 논밭으로 끊임없이 내몰았고, 올망졸망 달린 자식들의 배를 채워주기 위해 그 모든 것을 바친 어르신들이다. 하여 흙이 지닌 생명력을 닮았는지도 모를 일인 것이다. 이제 배고픔도 자식 걱정도 없는 연세이긴 하나 늙음과 아픔에 시달리면서도 자식들 걱정할까 봐 그마저 숨기고, 심지어 보고픈 마음도 속으로만 갈무리하는 것일 터이다. 좋은 집에서 태어나 공부 많이 한 어르신들이 옮지 못한 행동과 말들로 온 국민의 분노를 살 때, 우리의 산골 어르신들 자신의 변화, 단지 글자 몇을 깨우쳤을 뿐인데도 세상이 전부 내 것인 양 들떠 하는 모습들에 박수를 보낸다.

‘어머니 어머니/내 어머니/어머니 딸/박덕선/이제 내 이름 석 자 써요/내 이름은 박덕선’. 올해로 87세인 박덕선 어르신의 작품이다. 그야말로 ‘개○도 없는’ 집으로 시집와서 육 남매를 낳아 세상에 부끄럽지 않게 내놓은 우리 어르신께 한없는 존경의 큰절을 드리고 싶다.

시인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이 대통령, 부캉이 보러 북항 방문…전재수 ‘돔 아레나’ 건의
  2. 2조용히 작품의 중심 잡아주던 사람…‘영원한 별’ 안성기 추억하다
  3. 3중리해변 흉물 알박기 텐트, 민원 쏟아져도 시늉뿐인 단속
  4. 4市 기관장 하세월 임명절차…청문 통과해도 공백
  5. 5“북극항로 가능성, 시범운항서 확인”(종합)
  6. 6닻 올린 HMM 부산시대…5년간 15조·2만 명 고용 효과
  7. 7거인 3년 연속 7위…레이예스·한동희는 날았다
  8. 8[사설] 비타민이라 속여 주사맞혔나…진실 규명 시급하다
  9. 9공공기관 이전 연내 발표…“산은·금감원 반드시 부산 와야”
  10. 10인천 대형마트 상가 50대 남성 흉기 난동…1명 심정지·7명 부상(종합)
  1. 1이 대통령, 부캉이 보러 북항 방문…전재수 ‘돔 아레나’ 건의
  2. 2“북극항로 가능성, 시범운항서 확인”(종합)
  3. 3이헌승 “국제신문 100억대 체임 구속사유”…장관 “엄정 대응”
  4. 4김민석, 주진우 겨냥 “막말 땐 자격 정지 추진”
  5. 5與, 신천지 가입 정황 확인…후속 조치 주목(종합)
  6. 6KTX·SRT 통합, 이재용·최태원 증인채택 두고 여야 신경전
  7. 7李대통령 “늘어난 청소년 자살률…학업문제 등 강력한 대책 찾아야”
  8. 8강경화 “한미 협의 쉽지 않아” 시인…국힘 “정부, 혈맥 막혔는데 뭐하나”(종합)
  9. 9“부산 情 담은 뮤지컬 ‘당신만이’를 관광 콘텐츠로”
  10. 10국힘 ‘골프 특검법’ 예고하며 공세…주진우 ‘명 끊을 때’ 댓글에 與 격분
  1. 1市 기관장 하세월 임명절차…청문 통과해도 공백
  2. 2닻 올린 HMM 부산시대…5년간 15조·2만 명 고용 효과
  3. 3공공기관 이전 연내 발표…“산은·금감원 반드시 부산 와야”
  4. 4해양·파생특화 넘어 디지털금융으로…부산 금융도시 고도화
  5. 5해수장관 “내년 북극 시범운항 車운반선 등 확대”(종합)
  6. 6고리 3·4호기 계속운전 심사 개시…사고관리계획서도 상정(종합)
  7. 7반도체주 추락에 5%대 급락…코스피 간신히 6000선 방어(종합)
  8. 8광고산업 수도권 집중 심화…“지역업체 살려야”
  9. 9주가지수- 2026년 10월 13일
  10. 10부산이 원했던 금융위원회, 결국 세종으로 간다…지역 반발 거셀 듯
  1. 1중리해변 흉물 알박기 텐트, 민원 쏟아져도 시늉뿐인 단속
  2. 2인천 대형마트 상가 50대 남성 흉기 난동…1명 심정지·7명 부상(종합)
  3. 3오늘의 날씨- 2026년 10월 14일
  4. 4정신건강복지법 개정 갈등 심화…부산지역 심리학과 등 시국선언
  5. 5출처불명 선박 ‘뒷기름’ 40억 원어치 유통업자 집유 2년
  6. 6동명대 스마트해양, 신라대 AI웰라이프, 고신대 AI헬스케어
  7. 7고영삼의 인생 이모작…한 번 더 현역 <87> 배우 강석우
  8. 8부산외고 학생들, 독립운동가 후손 초청 감사제
  9. 9“창원시민 필요한 사업 100개 추진할 것”
  10. 10단일 고분자반도체 3진 논리 소자 개발
  1. 1거인 3년 연속 7위…레이예스·한동희는 날았다
  2. 2황성빈은 첫 도루왕…끝까지 뜨거웠던 타이틀 경쟁
  3. 3한화, 새 사령탑에 류지현…3년 20억원
  4. 43년 無가을로 계약 만료…김태형 감독 운명은?
  5. 5프로야구 한화, 신임 사령탑으로 류지현 국가대표 감독과 계약
  6. 6HJ重·동부건설, 소외층·골프 꿈나무에 3000만원 기부
  7. 7어깨 부상 김우민, 수술 대신 재활로
  8. 8최동원 어린이 야구교실, 출범 11년 만에 프로선수 배출
  9. 9롯데, 신인 전원 계약…유망주 박근서 3억에
  10. 10차준환, 이번 시즌 국가대표·대회 출전 중단…서울시청과도 결별
우리은행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학교 통폐합 지역 맞춤형으로 접근”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해운기업 유치, 해사법원 신설 “해양수도 부산 경쟁력 키울 것”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AI 시대, 부산 R&D의 대전환
원자력 청출어람, 스승을 가르치다
국제칼럼 [전체보기]
사라지는 것, 귀 기울일 것
열린 사회와 그 적들
기고 [전체보기]
거장은 떠나도, 오케스트라는 남아야 한다
전문대학을 소개합니다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여름날의 애상, 왈츠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다대포에서 만난 퇴계 이황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솔직할 수 있는 용기, 당신에게도 닿기를
히말라야의 경고
도청도설 [전체보기]
사형 생중계
발탁해놓고 감찰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요추부 척추관협착증, ‘메포츠’로 극복하기
B형 간염 ‘바이러스 수치’에 ‘급여’ 맞춰야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캉이’ 스펙터클에서 공존으로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사설 [전체보기]
국감서 국제신문 회생 지연 지적…대주주는 결단하라
비타민이라 속여 주사맞혔나…진실 규명 시급하다
세상읽기 [전체보기]
부캉이가 북항에 던진 질문
개척자 정신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해양수도 부산, ‘제3의 경계 공간’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두 미술관, 각자의 역할을 묻다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행위별수가제와 인두제, 오해와 진실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HMM 부산 이전, 해양수도의 시험대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한국이 가진 자산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금가락지가 땅에 떨어진 형국, 곡전재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추석의 식탁, 가족을 잇는 와인
오스트리아 와인,빈의 시간을 마시다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당론 따를지 역사 따를지 양심의 선택을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유영국의 1957년 작 ‘사람’
CEO 칼럼 [전체보기]
거울 속의 외계인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