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렁한 바지에 무릎 밑까지 바짝 올려 신은 스타킹. 옛날 야구선수의 전형적인 복장이다. 1920, 30년대 홈런왕 베이브 루스나 우리나라 최초 야구팀 격인 YMCA야구단의 선수 사진에도 잘 나타난다. 빠르게 달리고 민첩하게 움직이려면, 다리 정강이에 착 붙는 스타킹이 필요했을 터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야구복이 점점 몸에 꽉 끼는 디자인으로 바뀌면서 스타킹의 그런 기능은 줄어들었다. 대신 바지 밑단을 운동화쪽으로 쭉 내려서 입는 스타일이 자리를 잡았다.
지금은 롯데 자이언츠가 프로야구 최하위에 허덕이고 있지만, 20년 전 1999시즌의 이맘때에는 리그 선두를 내달렸다. 직전에 2년 연속 꼴찌를 한 팀이 시즌 개막 후 줄곧 1위를 달렸으니, ‘이게 뭔 일이냐’는 반응과 시선이 쏟아졌다. 이와 함께 롯데 선수들의 유니폼이 새삼 화제를 모았다. 하나같이 스타킹을 무릎 바로 아래까지 올려서 착용하고 출전하는 것으로, 이른바 농군(農軍) 패션이다. 마치 모내기에 나선 농민의 복장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롯데의 이런 패션은 해외 스프링캠프 때 일부 선수의 제안에 따라 이뤄졌다고 한다. 학교 시절처럼 겉멋 부리지 말고 운동만 열심히 하자는 뜻에서다. 즉, 정신무장을 단단히 하고 2년 연속 꼴찌의 수모에서 벗어나자는 거였다. 그런 영향인지 1999시즌 롯데는 플레이오프에 진출해 난적 삼성을 물리치고 한국시리즈 무대에 올랐다.
롯데가 그제 NC와의 원정전에서 선수단 전원이 같은 줄무늬 스타킹의 농군 패션으로 승리를 거둬 눈길을 끌었다. 그 직전까지 10경기 중 9패를 당했으니 가뭄에 단비 같은 승전보였다. 그간 롯데뿐 아니라 다른 팀의 상당수 선수가 늘 이런 복장으로 나왔지만 코치진과 선발·벤치 멤버 가리지 않고 모두 동참한 것은 근래 유례를 찾기 힘들다. 그만큼 롯데팀 사정이 절박하다. 기대했던 상위권은커녕 꼴찌에서 헤매고 있어서다. 시즌 초반이기는 해도 최상위와 격차가 15경기 넘게 벌어졌으니, 구도(球都) 부산의 팬들로서는 실망스럽기 짝이 없고 원성이 높을 만하다.
보통 야구에서 팀이나 개인 성적이 저조할 때 각오를 새롭게 다지는 차원으로 농군 패션이 곧잘 이용된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도 그런 복장이 심심찮게 보인다. 물론 그렇게 한다고 반드시 이기고 잘되는 건 아니나, 팀 결속력과 선수 의지를 높이는 것은 무시하지 못할 듯하다. 더 이상 내려갈 곳도 없는 롯데로서는 모든 방법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 20년 전처럼 거인군단에 농군 패션의 효과나 기적이 다시 나타날지 모르겠다.
구시영 논설위원 ksyo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