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개봉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의 이미지는 수직적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두 가족의 빈부 양극화가 빚어내는 이미지다. 네 식구 모두 백수인 한 가족은 반지하 셋집에 산다. 반면, IT기업 사장 가족의 집은 지상의 2층 호화주택이다. 반지하와 지상의 사회경제적 격차는 크다. 수직적 격차다. ‘개천에서 용난다’는 속담은 옛말일 뿐이다. ‘계층 상승 사다리’도 사라진 지 오래다. 반지하 가족의 아들이 지상 가족 딸의 과외교사로 들어가면서 벌어지는 갖가지 사건이 이를 증언한다. 그렇게 우리 사회는 구성원들에게 ‘빈자(반지하 가족)=기생충’ ‘부자(지상 가족)=숙주’라는 등식을 각인시킨다.
그런데 이 등식은 맞는 것일까. 현실의 외형은 등식대로인 듯하나 사실은 다르다. 구두업계의 실태가 단적인 예다. 구두의 부가가치는 순전히 제화공이 창출한다. 하지만 이익의 대부분은 비생산자의 수중에 들어간다. ‘제화노동자 권리찾기 사업단’에 따르면 30만 원짜리 구두 한 켤레를 팔면 백화점과 홈쇼핑이 유통수수료로 38~41%를 가져간다. 이 금액을 제외한 18만~19만 원 중 하청을 준 구두 브랜드 회사(원청)가 또 12만~13만 원을 차지한다. 그러고 남은 5만~6만 원에서 하청공장의 운영비와 원자재값을 빼면 제화공에게 돌아가는 돈은 7000원에 불과하다. 여기서 등식의 오류가 드러난다. 숙주는 당연히 30만 원의 부가가치를 창출한 제화공이다. 유통과 원청 등 비생산자는 숙주의 영양분을 빨아먹는 기생충일 뿐이다. 그런데도 비생산자는 자본권력을 앞세워 제화공을 빈곤(반지하)으로 내몬다.
미국의 정치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렌(1857~1929)은 이런 자본가를 ‘유한계급(leisure class)’이라고 했다. 생산적 노동을 하지 않으면서 타인이 창출한 부가가치를 소유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이들은 존재를 과시하기 위해 과소비를 한다. 그러다 보니 사치품의 경우 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줄지 않고 늘어나는 기현상이 나타난다. 이른바 ‘베블렌 효과’다. 우리나라에서도 롤렉스 샤넬 등 해외 명품들은 매년 가격과 수요가 동반 상승하고 있다. 부조리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영화 ‘기생충’의 예매율이 개봉 첫날 80%에 육박하는 등 흥행에 날개가 달렸다. 1000만 관객 돌파 기대도 나온다. 칸영화제 대상 수상의 여파다. 이를 계기로 우리 사회에서 과연 누가 기생충인지 진지하게 성찰하는 시간을 가져봤으면 좋겠다. 영화를 그냥 재미로만 평가하기에는 갈수록 커져가는 빈부 격차가 너무 심각해서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