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대선 후보였던 시절, 그의 재산이 얼마냐를 놓고 논란이 벌어졌다. 미 연방선거관리위원회(FEC)가 자산 총액을 “최소 14억 달러(약 1조6000억 원)”라고 공표하자, 트럼프는 “100억 달러(약 11조6000억 원) 이상”이라고 발끈했다. 하지만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 언론들도 “실제 자산은 훨씬 적을 것”이라고 했다. 기업가든 공직자든 자산 공개 규모를 한 푼이라도 줄이기 바쁜 한국과는 다른 모습이다.
17세기 초 청빈과 금욕으로 무장한 채 신대륙으로 건너온 청교도들에게 미국은 기회의 땅이었다. 미국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벤자민 프랭클린은 맨주먹으로 시작해 24살 나이에 인쇄소 사장이 됐는데 ‘부자가 되는 길’이라는 글에 이렇게 썼다. “열심히 일한 자는 그만큼의 이익을 취하기 마련이다.” “일어나 게으름뱅이야, 잠은 죽어서 실컷 자.”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처럼 부(富)의 사회 환원에 적극적인 부호가 많은 까닭도 있겠지만, 미국 사회는 정당한 노력으로 모은 재산에 대체로 관대한 편이다.
윤종서 부산 중구청장이 작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재산을 축소 신고한 혐의로 회부된 1심 재판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았다. 재산이 3억8000여만 원이라 했으나 이는 땅과 건물 17억 원어치가 빠진 수치였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사실은 20억 원 이상의 자산가이면서 소시민인 척했던 셈이다. 우리나라는 유독 부자나 재벌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이다. 축재 과정의 정당성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 구청장의 경우 재산 증식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는 게 아니다. 그런데도 그는 ‘서민 코스프레’를 했고 그 때문에 구청장 직위를 잃을 위기에 처했다. 외국인의 눈에는 놀라움을 넘어 기묘하게 여겨질 법하다.
26년 전 공직자 재산공개 도입 때는 부동산 과다 보유가 국민 정서를 건드려 당시 대법원장이 옷을 벗었고, 지금도 개각 시즌이면 재산이 낱낱이 드러나는 데 부담을 느껴 입각 제의를 거절하는 인사가 많다고 한다. 20대 국회의원 38.2%는 작년 재산변동내역 신고 때 부모와 자녀의 재산은 빼놓았다. 관련법상 고지 거부가 가능하기도 하거니와 굳이 구설에 휘말리기 싫어서일 거다. 그렇게 해 또 은닉의 의심만 키운다. 부정한 방법을 동원한 게 아니라면 부자임을 부끄러워 할 이유가 없고, 부자라는 이유로 매도당해서도 안 된다. ‘배 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는다’는 말이 있지만 이제는 달라질 때도 됐다.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다.
강필희 논설위원 flut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