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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냄새의 기호학 /권혜경

봉준호 작품 ‘기생충’, 사회 계층 구분하는 가장 큰 요소는 후각

끝없는 인간 탐구로 성공적 영화 이끌어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6-05 19:04:19
  •  |  본지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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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을 봤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이후 쏟아진 기사 덕분에 스토리는 대략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영화를 본 후 마치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두 시간여 짧지 않은 상영시간을 전혀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영화는 빠르게 그리고 예측 불허로 진행됐다.

영화의 한 축을 이루는 기택(송강호)의 가족. 온갖 사업과 직업을 전전했지만 결국 실패한 가장 덕분에 그들은 반지하방에 거주한다. 취객이 노상방뇨를 하고 방역소독 연기가 파고 들어오는 눅눅한 공간이다. 그곳에서 대입에 수차례 실패한 그의 아들 기식과 딸 기정은 윗집 와이파이를 잡기 위해 혈안이다. 그들의 유일한 수입원은 배달피자 박스를 접는 일이다.

하지만 기식이 친구의 부탁으로 박 사장집의 과외교사로 들어가면서 스토리는 급전한다. 위조된 재학증명서를 쥐고 처음 박 사장의 집을 찾아가는 기식은 끝없이 오르막길과 계단을 오른다. IT 기업을 운영하는 박 사장의 집은 유명 건축가가 지은 넓고 아름다운 저택이다. 가정부의 손에 티끌 하나 없이 관리되는 그 공간에 들락거리면서 기식은 여동생을 끌어들인다. 그리고 계속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까지 그 집에 입성한다. 봉 준호 감독은 고용자와 고용주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관계로 두 가족을 만나게 하지만 속임수라는 변수로 그 관계를 비튼다. 임기응변과 거짓으로 이어지는 그 과정은 유쾌하기까지 해서 관객석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박 사장네가 아들의 생일 기념 여행을 간 사이 기택의 가족들은 박 사장 집에 모여 자축파티를 연다. 자기 집처럼 누리던 편안함도 잠시, 밤늦은 시간 세찬 빗속에 문을 두드리는 이전 가정부의 등장으로 영화는 급변한다. 전혀 예상하지 못하던 방식으로 급진전되는 이야기에 관객은 숨을 죽였다. 그리고 영화의 말미, 다시 허를 찌르는,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스멀스멀 마음속으로 예상되던 결말이 기다리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 영화를 수작으로 만드는 것은 ‘냄새’라는 기호를 찾아낸 봉 감독의 탁월함이다. 봉 감독은 “부자와 가난한 자는 동선이 달라 서로 냄새를 맡을 기회가 없다. 냄새는 영화에서 유일하게 예민한 도구”라고 밝힌 바 있다. 겉으로는 점잖고 상냥한 박 사장 부부는 영화 곳곳 냄새에 민감한 모습을 보인다. 박 사장의 입을 통해 “지하철 타는 사람들 특유의 냄새”로 비유되는 그 냄새는 곧 자신이 속한 세계와 바깥 사이에 선을 긋는 기호이다. 박 사장네의 물질적인 안락함과 쾌적함의 공기는 햇볕도 잘 들지 않는 눅눅한 반지하의 냄새를 묻힌 기택네 식구들의 냄새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정작 기택네 식구들은 모르는 그 냄새의 존재를 어린 박 사장 아들은 정확하게 찾아낸다.

냄새는 가뿐히 선을 넘는다. 계층과 계층 사이에 존재하는 깊디깊은 골을 넘어 침범하는 냄새야말로 선 안쪽의 세계에선 혐오의 대상이자 불안과 위협을 유발한다. 영화의 말미, 의도치 않게 맞닥뜨린 냄새에 인상을 찌푸리는 박 사장의 반응은 정확히 이를 드러낸다. 마치 벌레를 보듯 한 인간에게 가해지는 혐오와 경멸. 순간, 박 사장의 고용인으로 늘 고분고분하던 기택의 뇌관이 폭발한다. 박 사장의 반응은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저버리는 용납 못할 행위였던 것이다. 사회 계층을 구분하는 선과 그 선을 넘는 냄새라는 기호는 자본주의적 물질 사회의 양상을 구조화하는 동시에 그 틀에 균열을 내기 위해 봉준호가 찾아낸 상징이다.

영화 ‘기생충’은 봉준호 감독이 데뷔 이후 지속적으로 추구해 온 인간과 사회라는 큰 주제의 연장 선상에 있다. 그의 전작들, 즉 머리 칸에서 꼬리 칸까지 살아남은 사람들을 태우고 빙하 세계를 떠도는 ‘설국열차’나 전 지구적 유전자 변이 가축과 공장식 육가공 실태를 다룬 ‘옥자’와 비교할 때 ‘기생충’의 세계는 훨씬 더 미시적이고 정교하다. 지상과 지하라는 이분법적 구조 위에 계층의 문제를 풀어놓은 이 작품은 우리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훨씬 더 피부에 와 닿는다. 영화 속 폭우가 쏟아지는 밤, 박 사장의 저택에서 벗어나 집으로 돌아오는 기택의 가족들이 끝없이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는 장면은 특히 인상 깊었다. 수많은 계단을 내려와 어두운 터널을 거쳐 그들이 다다른 저지대 동네는 이미 폭우에 범람해 물바다였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의 수직 이동은 이 사회 속 그들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극명하게 가시화한다.

영화 ‘기생충’은 인간과 사회에 대한 봉준호 감독의 지칠 줄 모르는 깊은 관심이 완성도 높은 그의 영화 문법과 결합해 만들어진 탁월한 결과물이다. ‘기생충’의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은 계속 진화하고 심화되어 온 봉 감독의 영화 세계를 입증하는 가시적 성과이다. 나아가 이는 또한 한국 영화 100년의 힘이기도 하다.

동서대 영어학과 교수·민석도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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