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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냉정한 번영 /엄길청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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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9-06-11 19:38:48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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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간 사랑은 존재하는가. 다른 민족 간 포용은 허락되는가.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국제 무역질서는 자유와 번영의 공유라는 어젠다로 적어도 자유진영을 중심으로 많은 호혜적 특약과 약속을 남겼다. 우리나라도 혜택을 많이 입은 개도국에 대한 선진국의 관세특례제도(GSP)와 개도국, 최빈국 등에 대한 특별차등우대조치(SDT) 등이 그런 배경을 지닌다. 가난한 나라에 특별한 관세 혜택과 자유거래의 문턱을 낮추어 경제 발전을 돕겠다는 선진국의 따뜻하고 공정한 약속이다.

그러나 얼마 전 중국의 한 고위 무역협상 대표는 이런 절규를 국제사회에 남겼다. “이젠 한 번 가난한 나라는 영원히 가난하란 말인가.” 최근 미국의 압박으로 수출의 기세가 꺾이고 나아가 성장을 후퇴시켜야 하는 위기에 처한 중국의 속내를 보여준 토로이다. 작금의 정황들은 후진국이나 개도국에서 국제법을 어기고 불공정한 사례가 많다는 것보다는 이제 선진국도 살아야 하겠다는 ‘냉정한 번영’의 신호탄으로 보인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에도 장차 이런 관용적 지원 정책의 변질이 눈앞에 와 있음을 의식하게 된다. 서서히 지역 균형발전 정책이나 지원 제도는 점점 각자의 형편이나 수익자 부담으로 넘어갈 공산이 크다. 국민소득이 3만 달러에 도달하자 우리도 경제성장률이 이제 2.5%를 넘나들기 시작한다. 점점 국가 운영에서 실제로 누가 돈을 버는가를 따지기 시작하는 시점이 대개 이런 시기부터이다. 스페인이나 영국의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갈등 촉발과 특정 지역 분리 독립의 요구도 이런 시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급기야 일부 학자는 경제 발전에서 내생적인 지식혁신의 요인이 외생적인 자원 배분 요인의 변화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하고 나섰으며, 우리나라도 지역에 따라 지역 간 산업지식의 내부 창출과 외부 교류의 밀접도가 엄청난 격차가 있음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서울을 중심으로 경기도와 충남의 산업지식 밀접도가 높지만, 남부의 부산 울산 경남은 중부의 충북, 수도권의 인천에 못 미치는 낮은 수준을 보였다. 이는 곧 지역의 소득 추이와도 깊은 상관을 보인다.

도시학자인 글레이저는 도시가 고등교육기관이 많고 건물이 고층화될수록 도시 성장에 유익하다고 밝힌 바 있는데, 지금 남부의 대도시인 부산 대구 광주의 고용과 소득의 현실은 이 주장과 거리가 멀다. 광주는 광주형 일자리라는 정치적인 처방이 나오는 형국이다. 이래서 지역 경제 발전에서 경제지리적인 유리함을 따질 때 인접 지역의 상호 간 발전 요인 기여가 먼 외부로부터의 새로운 발전 요인 제공보다 더 중요하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도시 내부에서도 점점 지역 안 공조와 공동노력이 도시정책 전체의 배려나 지역 안배의 효과보다 더 실질적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낙후된 부산의 원도심 발전도 이런 맥락에서는 처지가 유사한 원도심 지역의 더욱 광역화된 공조체제의 구축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개연성을 제기한다.

선진국이 금융위기에 빠지면서 점점 국제관계는 각국이 자신의 내생적 처지와 근거리 환경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각자도생의 냉정한 생존 룰이 새롭게 환기되는 엄혹한 과정에 다다르듯, 우리나라는 이제 저성장 시대의 진입을 앞두고 지역균형 정책의 후퇴가 가시화될 것을 미리 내다보는 냉정한 자기 인식이 필요한 시점이다.

선거를 통해 중앙정부의 유대관계가 지역발전에 직결된다는 정치적 기대는 점점 어불성설이 되어 갈 것이다. 그보다는 지역 내부의 산업지식 혁신속도와 근거리와의 산업지식 교류 증진이 얼마나 더 유기적이고 원활한 것인가에 힘을 쏟아야 한다. 그런 면에서 지역 내 대학과 산업체의 통합적이고 연합적인 연구 시스템 강화는 시급한 경제발전 과제로 다루어야 한다.
건축학 용어에 경계효과란 게 있다. 건물에 벽을 쌓으면 그 내부에서 생기는 힘의 변화를 일컫는 말이다. 요즘 미국이 놀랍도록 자국 이익을 위해 벽을 쌓는 강력한 조처들을 강행하고 있는데, 그 힘으로 지금 미국은 10년 전의 금융위기를 무색게 하는 성장세를 회복하고 있다, 그런데 우방국이 보아도 참으로 냉정한 번영의 처신처럼 보인다.

경기대 교수·글로벌경영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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