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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에세이] 관계한다, 고로 존재한다 /조송현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6-17 19:32:27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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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아담의 후예는 한 몸을 형성하며 / 동일한 존재다. // 시간이 고통으로 그 몸의 일부를 / 괴롭게 할 때 // 다른 부분들도 고통스러워한다. // 그대가 다른 이들의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면 // 인간이라 불릴 자격이 없다’. 13세기 페르시아시의 대시인이자 탁발승 사 디(Sa’ di, 1209~1291)의 시다.

양자중력 이론가로 ‘제2의 스티븐 호킹’이라 불리는 카를로 로벨리의 최근 저서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에서 이 시를 보고 전율했다. 소통과 공감 능력이 결여된 현대사회에 경종으로 읽히면서 한편으론 우주의 본질을 꿰뚫기 때문이다. ‘모든 아담의 후예’를 ‘모든 우주의 만물’로 바꾸면 이 시는 현대 우주관인 ‘관계론적 우주관’의 멋진 은유다. 시간은 인간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주제 중 하나다. 철학자, 심리학자들도 나름 시간의 본질을 파악했지만, 특히 물리학자들에게 시간은 핵심 연구과제 중 하나다. 시간과 공간 개념의 혁명이라고 불리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도화선이었다고 할까.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니! 도발적이면서도 흥미롭지 않은가. 그런데 책의 영문 제목은 ‘시간의 순서(The Order of Time)’다. 로벨리가 ‘시간의 순서’라고 단 것은 역설적인 의미였다. 플라톤과 함께 서구 정신세계를 지배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시간은 변화의 척도로, 아무 변화가 없으면 시간도 없다고 했다. 시간은 뭔가와의 관계 속에서 생겨나는 개념이라는 말이다. 반면 근대물리학의 초석을 세운 뉴턴은 어디에서나 한결같이 흐르는 절대시간이 있다고 주장했다. 누구의 말이 옳을까? 일반인의 상식과 관념은 뉴턴 쪽인 것 같다. 우리는 누구에게나 한결같이(공평하게) 흐르는 게 시간(세월)이라고 여기지 않는가. 부자든 빈자든.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으로 두 선배의 견해를 명쾌하게 정리했다. 시간이 독립적이지 않고 관계 속에 생겨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손을 들어줬다. 시간은 공간과 얽혀 있으며, 공간은 물질과 한 몸이다. 그러니 시간이 절대적인 지위를 갖고 단독으로 존재한다는 뉴턴의 가설은 옳지 않다. 상대성이론(중력의 시간 지연효과)에 따라, 산 위에서 시간이 상대적으로 빠르게 흐르고 평지에서는 느리게 흐른다. 심지어 우리가 걸을 때 머리보다 다리 부분에서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중력뿐 아니라 속도도 시간을 지연시킨다. 빠른 열차나 비행기 속의 시간은 바깥보다 느리게 간다. 시간은 사람마다 다르게 흐르는 것이다. 이런 원리를 적용하면 우주 곳곳의 시간은 모두 제각각이다. ‘우주 어디에나 한결같이 흐르는 시간’이란 없다.

그렇다면 시간의 원천과 최소단위는 무엇일까? 이 물음에서 시간은 완전히 우리의 상식에서 사라지고 황당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시간의 양자적 특징을 연구하는 학문이 ‘양자중력’ 이론인데, 로벨리의 연구 분야다. 100% 공인받은 것은 아니지만 매우 유력한 이론으로 인정받는다. 이에 따르면, 시간 혹은 시공간은 아주 작은 알갱이(양자)로 전자와 같은 물리적 실체다. 시공간은 양자역학적 특성인 ‘중첩’의 원리에 따라 과거와 미래의 구분이 흐릿하다. 특히 시공간은 상호작용하지 않는 한 발현되지 않는다. 이 또한 양자적 특성이다. 마치 전자가 입자검출기에 잡히거나 광자와 충돌해야 구체적인 위치에서 발견되는 것처럼. 시간이나 공간 그리고 이 둘이 직조된 시공간은 뭔가와 상호작용, 혹은 관계하지 않으면 구체적인 물리적 실체로 나타나지 않는다.

이 논리를 확장하면, 우주에 어떤 변화나 사건이 없으면 시간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 실제로 양자중력 이론가들은 시간 변수도 없이 양자중력을 설명하는 방정식을 만들어냈다. 로벨리는 이렇게 말한다. 세상은 사건과 과정의 총체라고. 이 말은 유기체 철학으로 유명한 화이트헤드의 “자연은 과정과 관계의 망(nexus)”이라는 말과 일치한다. 우리 우주는 사건들의 상호 관계적 구조로 보는 ‘관계론적 우주관’이다. 우주의 뼈대인 시공간이 바로 관계적 특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사 디의 시가 우주의 본질을 꿰뚫는다는 얘기는 이런 이유다. 자식이 죽어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받는 사람들을 아무렇지 않게 조롱하는 사람들을 어찌 인간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관계성이 우주의 섭리이다.

웹진 인저리타임 대표·동아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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