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부산 여행이 특별했던 것은 그동안 늘 다니던 해운대지역이 아닌 부산역 주변에서 영도에 이르는 구도심 지역을 돌아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요즘 부산을 상징하는 곳은 단연 해운대지역이다. 높은 마천루가 우뚝 솟아 있고 화려한 건물과 상가가 즐비한 모습을 보면 ‘동양의 진주’라 불리는 홍콩보다 더욱 세련된 도시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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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곡 고희동의 ‘부산 영도 해안’. |
그러나 이렇게 변화하기 전에는 해운대지역보다 동래, 영도지역이 더욱 부산다운 시절이 있었다. 이번에 돌아본 자갈치시장이나 영도 깡깡이 마을은 그 시절을 떠올리기에 충분했고, 아름다운 흰여울문화마을은 유럽 어느 해안보다 아름다웠다. 옛것과 현대적인 것을 어울리게 하는 도시 재생의 미래를 보는 듯했다.
1950년 6·25 전쟁이 일어나자 수많은 피란민이 부산으로 몰려들었다. 김환기 박고석 이중섭 등 유명한 화가들도 부산으로 와 힘들게 전쟁 기간을 보냈다. 이때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 김환기의 ‘피난 열차’, 박고석의 ‘범일동 풍경’, 이수억의 ‘6·25 동란’ 등이다. 미래를 기약할 수 없었던 암울한 시대에 이들은 항만 역전 시장 등을 떠돌며 일하였고, 물감조차 구하기 힘든 현실 속에서도 그림을 그리는 열정을 보였다.
이들은 광복동의 ‘밀다원(密茶苑)’이나 ‘르네상스’ 등 다방을 옮겨 다니며 전쟁으로 인한 불안과 허무를 달래었다. 이곳에서 전시회를 열기도 하고, 음악을 듣기도 하며 미술 작품을 남겼다. 당시 부산은 전쟁의 거센 회오리 속에서도 비교적 외곽 지대에 있어, 많은 예술가가 모여 가장 치열하고 현실적인 작품이 탄생하는 배경이 될 수 있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로 당시 화단의 어른이었던 춘곡(春谷) 고희동(高羲東, 1886~1965)도 전쟁 중 부산 영도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도 어려운 시대를 부산에서 보내며 그림을 그렸다. 이때 남긴 그림이 한 점 있는데, 1952년에 그린 ‘부산 영도 해안’이라는 작품이다. 영도 앞바다에 정박해 있는 배들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원근법을 잘 사용하여 여러 척의 배가 V자 형태로 나란히 있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그렸다.
여러 척의 배가 묶여 있고, 바닷물이 짙푸르고, 그 위로 검은 구름이 엄습한다. 마치 태풍이라도 몰려오고 있는 듯 매우 어둡다. 자못 음산하기까지 한 모습은 마치 전쟁으로 인한 시대의 어려움을 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역동적인 구성과 뛰어난 색채 감각으로 기운이 생동하는 모습을 잘 나타내었다. 어려서 배운 남종화에 일본 유학으로 배운 서양 화법을 더해 새로운 형식의 산수화를 그린 고희동의 뛰어난 재주가 엿보이는 좋은 작품이다.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