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이 열릴 때면 다른 나라 선수가 아주 두려워하는 한국 종목이 있다. 하계 올림픽은 양궁, 동계 올림픽은 쇼트트랙이다. 우리 선수들의 기량이 워낙 뛰어나 웬만해서는 이기기가 힘들어서다. 그동안 두 종목에서 따낸 메달은 부지기수다. 그래서 두 종목에서는 올림픽 경기보다 국내 선발전이 더 힘들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그러나 같은 ‘효자 종목’인데도 양궁과 쇼트트랙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엇갈린다. 한국 양궁은 공정한 선수 선발로 유명하다. 수차례 평가전을 거쳐 대표 선수를 뽑는다. 오직 실력만이 평가잣대다. 과거 명성이나 학연, 지연 등이 끼어들 틈은 전혀 없다. 국제 스포츠계는 한국 양궁이 오랫동안 세계 무대를 호령한 이유를 여기에서 찾는다.
반면 쇼트트랙은 한국 체육에 공헌한 업적에 비해 좋지 않은 평가를 받는다. 오래전부터 선수 선발을 둘러싼 파벌 논란과 구타 의혹 등이 끊임없이 제기됐고 이 때문에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외국으로 귀화하는 일도 벌어졌다. 최근에는 여자 대표 선수를 코치가 성폭행한 사실이 드러나며 쇼트트랙을 관리하는 빙상연맹은 더욱 궁지에 몰렸다.
상황이 이렇다면 모두 합심해 자숙하면서 훈련에 매진하면 좋으련만 그마저도 잘 되지 않는 모양새다. 지난 17일 충북 진천 국가대표 선수촌에서 산악훈련을 하던 한 남자선수는 갑자기 남자 후배의 바지를 벗겼다. 선배는 장난 삼아 이런 행동을 했겠지만 여자 선수들도 함께 있던 자리에서 심한 모멸감을 느낀 후배는 성희롱을 당했다며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사건의 전말이야 곧 밝혀질 일. 그렇지만 신치용 선수촌장은 쇼트트랙 대표 선수 전원(남자 7명, 여자 7명)에게 한 달간 선수촌 퇴출이라는 철퇴를 빼들었다. 그간 쇼트트랙계에서 잇달았던 불미스러운 사건을 고려하면 신 촌장의 결단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불과 4개 월전에도 진천선수촌에서는 쇼트트랙 남자 선수가 여자 선수 숙소에 들어갔다가 들켜 물의를 빚었다.
성폭행 사건을 전후해 일부 국민 사이에서는 쇼트트랙 종목을 해체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의견이 나온 바 있다. 잇단 추문이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쇼트트랙 전체에 잠재해 있는 구조적 문제라고 해석한 까닭이다. 물론 아무리 화가 난들 종목 자체를 없앨 수는 없는 노릇. 그러나 지금 쇼트트랙계의 모습을 보면 이게 아주 그릇된 주장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정말 애증이 교차하는 우리나라 쇼트트랙이다.
염창현 논설위원 haore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