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하나. 지난 달 부산지역 환자들의 역외유출이 한 해 60만 명이 넘고 이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1조 원에 달한다는 결과가 발표되자 부산시청에서 의료산업 간담회가 긴급하게 열렸다. 오거돈 시장은 심각한 역외유출에 대한 대책으로 부산의 의료수준을 높여 서울로 향하는 부산의 의료환자들을 되돌리고 해외환자 유치를 위해 의료관광을 활성화해야 한다며 참석자들의 의견을 구했다. 그런데 지역에서 가장 크다는 대학의 병원장은 본인 대학입학 때의 성적까지 거론하며 “부산의 의료수준이 결코 서울에 뒤지지 않는다”고 강변한다.
과연 그럴까. 노부모가 경기도에 계신 관계로 그쪽 병원을 꽤나 드나들었던 내 경험에 비추면 부산의 메이저 대학병원은 적어도 서비스 차원에선 수도권의 2선급 대학병원보다 낫다고 할 수 없다. 부산에도 쟁쟁한 의사가 분명 많지만 평균의 차이는 솔직하게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이를 인정하지 못하면, 즉 이에 대한 냉철한 인식이 부재하다면, 문제 극복을 위한 노력은 시동조차 걸 수 없다. 그렇게 잘하고 있다는데 도대체 그날 우리는 왜 모인 것인가.
풍경 둘. 부산시의회는 지난 4월 이른바 ‘살찐 고양이법’을 통과시켰다. 부산시 산하 기관 임원의 연봉을 최저임금의 6~7배로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기관장들의 연봉은 1억4659만 원을 넘지 못한다. ‘연봉 상한제’다.
그렇다면 현실은 어떨까. 예산 한 푼이 절박한 부산시는 이미 연초에 기관장에 따라 5%에서 무려 40%의 연봉을 삭감했다. ‘연봉 1억’ 넘는 기관장이 거의 사라졌다. 연봉이 워낙 적어 5%만 삭감당한 나는 전직이었던 교수 때 연봉 근처에도 못 가는 충격적인(?) 연봉을 받고 있다. 오히려 ‘연봉 하한제’가 절실하다. 기관장과 직원 간 연봉 차이가 크다면 시의회는 왜 직원의 급여를 올릴 생각은 하지 않고 끌어내릴 생각만 했을까.
그렇게 나는 살찐 고양이가 되었다. 오래된 조그마한 아파트에 살면서 아침에 일어나 술독을 컵라면으로 달래고 월말이면 은행잔고 확인에 예민해지는 내가 졸지에 탐욕의 상징, 배 부른 자본가가 된 것이다. 소박한 대우지만 부산을 바꾸고야 말겠다는 사명감으로 일하는 모든 기관장도 느닷없이 살찐 고양이가 돼버렸다. 이어지는 궁금증. 이런 부산에서 과연 인재가 클 수 있을까. 최고의 인재가 합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을까. 히딩크나 정명훈 같은 인물이 부산에 올까.
풍경 셋. 올해가 4회째인 부산원아시아페스티벌(BOF)은 부산 최대 이벤트다. 27만 명의 참여인원은 부산국제영화제(16만 명)와 지스타(25만 명)에 앞설 뿐 아니라 외국인 참여자 수(4만 명), 특히 외국인 관광객 유치(2만 명)에 있어서는 비교를 허락하지 않는다. 국제적 인지도를 높여야 하는 부산시 입장에선 이만한 복덩이가 없다.
그런데 최고의 K팝 콘서트를 지향하는 BOF에 지역 문화계는 동의하기 어려운 비판을 해왔다. 정체성이 없다고 한다. 엄연한 K팝 콘서트인데 달리 무슨 정체성을 찾아야 하나. 부산이 안 보인다고 한다. 그럼 서울에서 하는 K팝 콘서트에선 서울이 보이나. 이걸 왜 부산에서 하느냐고 한다. 이쯤 되면 그냥 싫은 거다. 엄청난 인기의 아이돌그룹 공연에 투입되는 예산이 못마땅한 것이다.
세계적인, 최고의 콘서트는 서울에서만 해야 하고 부산은 부산스러운 것만 해야 하나. 부산은 최고를 가지면 안 되는 것일까. 그들 주장대로 K팝 콘서트에 동래학춤을 집어넣으면 못마땅함을 거둘 것인가. 결국 그렇게 갔다. 불만을 해결하기 위해 BOF는 뷰티, 푸드에서부터 공연, 전시, 퍼포먼스에 전통무용까지 온갖 장르를 프로그램에 포함시켜야 했다. 결국 정체성이 더 모호해진 행사가 됐다. 익히 보아오던 나눠먹기다.
‘부산병’이다. 2등주의에 취해 지내다 3등으로 추락한지도 모르고 있었다. 냉혹한 성찰과 인식이 필요하다. 3등이라는, 어쩌면 4등이라는 현실을 인정하는 것은 고통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아픈 인식 없이 절박함이 생겨날 수 없다. 그리고 인재 귀한 줄 알아야 하고 ‘사람값’ 깎지 말아야 한다. 대접 안 해주는데 올 사람 없다. 이를 위해 당연히 폐쇄성을 버려야 한다. 수렁에 빠진 부산을 구할 수만 있다면 성별, 지역, 장르 가릴 것 없다. 마지막으로 나눠먹기와 결별해야 실력 있는 인재가 비집고 들어올 공간이 생긴다. 과거 시와 가까운 사람들이 자리와 지원금을 차지했다. 시도 나눠주는 게 관행이 됐다. 실력은 두 번째였다. 경쟁력이 자라날 리 없다.
부산이 위기라는 말 나온 지 30년 됐다. 이제 바뀌지 않으면 죽는다. 대기업 일자리도 없고 재벌 스폰서도 없는데 중앙정부는 서울 편이다. 믿을 건 자각과 실력뿐이다.
부산관광공사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