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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석 칼럼] 기생충의 세상, 그 우화의 이면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6-27 19:12:53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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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한 편의 우화이다. 우화치고는 잔혹하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고대로부터 우화는 어느 정도 잔혹성을 품고 있다. 이솝 우화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도 있다. 양가죽을 뒤집어쓰고 양 떼 속으로 침투한 늑대는 저녁에 양치기가 양들을 우리에 몰아넣자 양을 잡아먹기에 아주 수월해졌다. 하지만 저녁거리로 ‘위장한 늑대’를 고른 양치기의 칼에 싹둑 목이 달아났다.
해외 평단에서 이 영화를 블랙 코미디로 분류하기도 한다. 그럴 만도 한데, 블랙 코미디는 고전 우화의 현대적 양식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좀 더 상상력을 발휘하여, 기생충의 입장에서 이 영화를 본다면 ‘전도된 우화’라고 할 수도 있다. 노련한 기생충들이 “으이그, 저렇게 기생하면 안 되지!”라고 한마디 했을 법하기 때문이다.

기택네는 빈민가의 반지하에 산다. 박 사장 가족은 신흥 부유층이다. 기택의 아들 기우는 명문대생으로 위장하고 박 사장의 딸 과외 선생으로 들어간다. 딸 기정도 그 집 아들 그림 선생으로 위장 취업하고, 아빠 기택은 운전기사가 되며, 엄마 충숙도 원래 가사도우미 문광을 쫓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한다. 박 사장 가족이 캠핑을 떠난 사이 이들은 자기들만의 저택에서 술판을 벌인다. 이때 쫓겨난 문광이 남편을 찾으러 돌아온다. 남편 근세는 여러 해 동안 저택의 지하 방공호에 살던 ‘선임 기생충’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우화적 제목’은 그 정의를 다시금 살펴보도록 한다. 한 생물체가 다른 종의 생물체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데 양쪽이 서로 이득을 취하면 공생이라 하고, 한쪽만 이득을 취하는 경우 이득을 보는 쪽을 기생충, 손해를 보는 쪽을 숙주라고 한다. 기생충이 일방적으로 이득을 보더라도 ‘기생의 원칙’은 지켜야 한다. 자기 삶의 터전인 숙주를 지나치게 괴롭히거나 망가뜨려서는 안 된다.

이런 점에서 근세의 삶은 기생의 원칙을 잘 지킨 편이다. 한편 기택 가족의 기생 전략은 주도면밀한 것 같지만 사실 무모하다. 욕망 조절이 잘 안 되는 경우다. 그들의 이런 행동은 이 세상에서 기생의 삶을 사는 자 모두에게 ‘우화적 경고’를 보낸다. 기생의 원칙을 지켜야 삶을 유지할 수 있다고. 그런데 숙주의 삶은 어떤가. 대사처럼 “부자인데도 착한” 아니 “부자니까 착한” 것일까? 우리는 이 영화 안에서 박사장 가족이 어떤 삶을 살아왔기에 이처럼 풍족하고 관대하기까지 한 숙주가 되었는지 모른다.

부자와 빈자의 대립을 내세운 것처럼 보이는 이야기는 사실 비대칭적으로 전개된다. 공간 설정에서부터 그렇다. 이야기 대부분(3분의 2 정도)은 딱히 한국적이지도 않고 (봉준호는 영화가 “워낙 한국적”이라고 능청거리지만) 아주 ‘무국적’적인 공간인 박 사장의 저택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서사의 모든 요소는 마치 줌 인(zoom in) 하듯 그 저택으로 빨려 들어가 그곳에서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다. 박 사장 저택은 하나의 세계이고, 다양한 기생충이 그 세계를 숙주 삼아 기생을 시도하는 것처럼 보인다.

박 사장 가족의 진실을 알고 싶으면 다시 줌 아웃해서 더 넓은 맥락에 그들을 위치시켜 보아야 한다. 그러면 그들이 사회라는 더 큰 세계를 숙주 삼아 기생하는 것을 볼 수도 있으리라. 그 사회를 구성하는 무리에는 기택의 가족도 포함된다. 부자가 부를 축적하고 유지하는 과정 또한 거대한 ‘기생의 계획’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은 너무 쉽게 잊힌다.

권력을 쟁취하고 부를 축적한 자들이 애초부터 ‘공생의 미덕’을 발휘했다면 기택 가족과 같은 극한 빈자 또한 없었으리라. 빈곤한 사람이 많을수록 가진 자들이 풍요한 삶을 성취하는 과정에서 기생의 계획을 과도하게 실행했으리라는 의심을 품게 만든다.

사람들은 기생충이라는 말의 어감 때문에 항상 큰 것에 기생하는 작은 것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다수의 작은 것, 약한 것의 세계에 기생하는 크고 강한 기생충 또한 인간 세상에 두루 존재한다. 이런 기생 괴물은 기생의 원칙을 지키며 숙주를 배려하기는커녕 숙주를 철저히 착취하기까지 한다. 탐욕스러운 자본가는 노동자와 소비자에 기생한다. 학교는 학생에 기생한다.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자신의 수익만 챙기는 사학재단이 운영하는 학교들 말이다. 부패한 병원은 환자에 기생하고, 정치 모리배의 손에 든 국가는 국민에 기생한다.

이들에 비하면 처음 접한 숙주에 대해 릴레이식으로 욕망을 확장해가는 기택 가족의 기생 행위는 분수 넘친다고 비난할 일도 못 된다. 한편 문광과 근세 부부의 기생 활동이 과도하지 않고 균형 잡힌 듯 보이는 데는 나름 다른 이유가 있다. 문광이 그 저택을 지은 건축가와 관계가 있다는 암시에서도 알 수 있듯이 문광은 부유한 숙주의 삶에 대해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이야기의 주된 무대인 박 사장의 저택이라는 공간에서 진정한 공생을 이루지 못하는 기생충과 숙주의 꼬이고 뒤바뀐 관계에 대한 비밀을 파헤쳐 볼 수 있다. 영화를 마무리 짓는 피 튀기는 난장이 일어난 곳, 그곳을 다시 들여다봄으로써 우리는 인간 욕망의 현상학에 관한 어떤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이런 의미에서 저택의 지하실에서 그 아래 비밀 방공호로 이어지는 입구가 인간 사회의 존재 의미를 알려주는 신비의 석판, 곧 수직으로 선 직사각형의 검은 반석(monolith)처럼 보이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 그 정면과 이면에서 숙주와 기생충은 삶의 진실에 관한 밀담을 서로 나누고 있는 것 아닐까.

짓궂은 영화에 대해 짓궂은 농담 하나 하자. 이 영화에는 프리퀄이 필요하다. 지금은 숙주 코스프레를 하는 박 사장이 기생충으로서 성공 가도를 달리던 때의 에피소드들을 담은 프리퀄 말이다. 한편 저택의 살육 현장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기우는 계획을 세운다. 돈을 많이 벌어 지하에 갇혀 버린 아버지를 구하겠다고 다짐한다. 이 꿈 같은 다짐에 엔딩 크레딧은 오버랩 되는데, 기우의 다짐을 실현하는 이야기가 시퀄이라면 무엇이 담길까. 박 사장의 탁월한 기생 능력에 관한 프리퀄의 우화를 반면교사로 삼는 기우의 인생이 담기지 않을까.

철학자·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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