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에서 용 났다는 말이 있다. 환경이나 조건이 열악한데도 노력으로 매우 높은 지위를 얻어 성공한 경우를 말하는 속담이다. 개인적으로 사법시험이 폐지되고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이 도입됐을 때 이 말을 많이 인용했다. 별로 가진 것 없는 사람이 신분을 상승시킬 기회 하나가 사라졌다는 이유에서다. 재능이 뛰어나도, 집안 사정이 어려우면 이제 판검사의 꿈은 접어야 할 것으로 봤다. 이는 로스쿨에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찮은 현실을 고려한 것이다. 사립대학의 경우 등록금만 연간 2000만 원 가까이 든다.
그래서 로스쿨이 가지는 장단점은 별로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았다. 경제적 여력이 진학을 꿈꾸는 자체를 결정하는 시스템에 거부감을 가졌던 것이다. 로스쿨이 신분을 세습하는 시스템이라는 편견(?)에 가득 차 있었다. 게다가 로스쿨 제도는 졸업 후가 더 문제로 여겨졌다. 배경과 인맥이 졸업 후 취업의 기회에 중요한 잣대가 될 여지가 많아 보였기 때문이다.
미국식 시스템은 대부분 그랬다. 경제적 부가 교육의 질을 결정했다. 우리에게 전인교육이라고 소개되는 공립교육은 저렴하지만, 사회 진출의 측면에서 보면 방치에 가깝다고 한다. 그래서 미국 귀족은 대부분 자녀를 수월성 교육을 하는 사립학교에 보낸다.
우리는 이런 미국식 교육을 선진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받아들인 것은 아닐까. 지정 취소가 잇따르고 있는 자율형사립고등학교(자사고)의 논란을 보면서 해본 생각이다. 원래 자사고는 2010년 이명박 정부 당시 다양한 교육 환경을 제공할 목적으로 도입됐다. 자사고는 교육과정, 수업 일수 조정, 무학년제 운용(능력에 따라 학년의 구분을 두지 않음) 등과 관련된 사항에 대해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 좋은 취지에서 도입됐다.
하지만 자사고는 귀족화했다. 등록금은 일반고의 3배 수준이나 된다. 학교 운영도 철저히 진학 위주라고 한다. 정규 수업 후나 주말에도 사교육까지 해야 할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 이런 실정이니 보통 가정에서는 자녀를 자사고에 보내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도 자사고가 인기 있는 것은 의대와 명문대 진학률이 높기 때문이다. 자녀 교육에 목을 매는 부모 입장에서는 보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이제 개천에서 용 날 기회가 갈수록 줄어드는 게 우리 사회의 현실이 아닌가. 더욱이 학맥은 사회 진출에 중요한 스펙이다. 이러니 지금의 자사고 논란을 학교만의 문제라고 할 수 있겠는가.
정순백 논설위원 sbj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