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등지를 찾은 적이 있다. ‘기회의 땅, 연해주가 깨어난다’는 주제로 새 물류의 관문인 극동 러시아와 관련해 신년기획 기사를 쓰기 위해서였다. 그 배경은 ‘쑤이펀허(중국)-나홋카(러시아) 물류 프로젝트’였다. 블라디보스트코 보스노치니 나홋카 자루비노 등 극동 러시아 항만은 자국 화물뿐만 아니라 헤이룽장성 지린성 랴오닝성 등 중국 동북 3성의 화물도 유치할 수 있는 지리교통의 요충지에 자리 잡았다. 중국은 동북 3성의 물동량을 북중국 항만 다롄항 등이 아닌 극동 러시아 항만으로 보내는 물류 프로젝트 구축에 골몰했다. 이런 사정은 지금도 비슷하다. 러시아 역시 극동 항만의 물동량 처리 능력이 한계 상황에 도달한 까닭에 이런 북한 두만강 유역 물류 프로젝트에 적극적이다. 당시 부산항만공사(BPA)도 중국 동북 3성의 화물을 러시아 항만(나홋카)을 통해 부산항으로 유치하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BPA는 나홋카의 컨테이너 항만 개발에 직접 뛰어들기도 했다.
하지만 ‘쑤이펀허-나홋카 물류 프로젝트’의 핵심인 BPA의 나홋카 컨테이너 항만 개발 사업은 끝내 좌초했다. 사업 파트너 쪽에 문제가 있었던 게 주된 이유로 꼽혔다. 그런데도 두만강 유역은 여전히 남북한과 중국 러시아 등 ‘물류 4국지’의 중심이다. 일부 사업이 무산됐다고 해서 큰 그림마저 사라지지 않는다. 러시아 나홋카에서 우수리스크를 거쳐 중국 국경도시 헤이룽장성 쑤이펀허까지 육로로 270㎞인데, 쑤이펀허에서 다롄항까지는 무려 1700㎞. 물류 4국지 프로젝트의 필요성이 ‘유효한’ 까닭이다.
요즘은 중국의 하얼빈 창춘 쑤이펀허 훈춘 등과 러시아 우수리스크 블라디보스토크 자루비노 등지를 연결하는 2개의 북방 물류루트(프리모리예 1·2호)의 활성화 방안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다. 프리모리예 1·2호는 부산항의 미래와도 직결된다. 다만, 중국 러시아 국경의 화물 통관 지연이 프리모리예 1·2호의 활성화에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는 만큼 국제물류자유구역을 설치해 통관 절차를 간소화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는 오거돈 부산시장이 지난 5월 20~24일 북방 물류루트를 따라 러시아 연해주와 중국 지린성 헤이룽장성의 5개 도시를 잇달아 방문한 자리에서 신속한 통관에 관해 협조를 당부했던 배경이다.
북방 물류루트는 현재 중국 러시아를 경유하는 프리모리예 1·2호뿐이다. 하지만 북한의 비핵화 문제가 해소돼 대북 경제제재가 해제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다양한 북방 물류루트 개척이 가능해진다. 이런 측면에서 두만강 유역 물류루트 중 하나인 ‘나진-하산 물류 프로젝트’에 다시 시선이 쏠린다.
남·북·러 복합물류 사업인 나진-하산 프로젝트는 두만강 하구의 북한 나진과 두만강 건너편 러시아 하산을 잇는 54㎞ 구간 철도 운송에 초점이 맞춰졌다. 극동 러시아의 열악한 도로 여건 등을 고려할 때 두만강 유역 접경 지역 간 물류 시스템은 철도 운송이 적합한 방안으로 꼽힌다. 나진-하산 프로젝트는 러시아 유연탄 등을 하산과 나진항을 잇는 철도로 운송한 뒤 나진항에서 이를 화물선에 옮겨 싣고 부산항 등 우리나라 항만으로 가져오는 게 골자다. 여기서 철도 운송 구간 ‘54㎞’의 의미가 엄청나다. 시베리아 횡단철도(TSR)를 통해 유라시아 대륙으로 뻗어갈 수 있다. 남북 관계가 개선되면 한반도 종단철도(TKR)로 런던 파리까지 연결할 수도 있다. 부산항을 거치는 미주 유럽 등 원양 항로 개설도 가능하다.
이에 따라 2014년 11월, 2015년 4~5월과 11월 등 모두 세 차례에 걸쳐 나진-하산 프로젝트의 석탄 시범 운송도 진행했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도 사실상 중단됐다. 2016년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과 2월 탄도미사일 발사에 따라 우리 정부가 그해 3월 대북(해운) 제재에 나섰기 때문이다. ‘외국 선박이 북한에 기항한 뒤 180일 이내에 국내에 입항하는 것은 전면 불허’하고 있다. 나진-하산 프로젝트는 아직 공회전 중이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우리 측 컨소시엄이 실사를 해보니 ‘상업성이 없다’는 얘기마저 있었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나진-하산 프로젝트의 재추진 가능성에는 대비해야 한다. 메가 프로젝트의 이행이 하루아침에 되겠는가. 큰 그림 속에서 꼼꼼하게 경제성 분석을 할 필요가 있다. 중국 동북 3성 중 지린성과 헤이룽장성의 물동량을 안정적으로 확보, 부산항으로 연결하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앞서 언급한 국제물류자유구역을 두만강 접경 지역에 지정, 운용하는 것도 한 방안이다. 나진과 선봉은 북한이 이미 1991년 경제특구로 지정하며 처음으로 개방한 곳이다. 나진-하산 프로젝트는 유엔 차원의 제재 대상이 아니다. 미국의 독자 제재 대상이므로 ‘의지’와 ‘여건’에 달려 있다. 남북한과 미국의 정상이 30일 오후 66년 만에 판문점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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