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빈의 벨베데레 궁전은 1년 내내 관람객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대표작 ‘키스’가 바로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그림은 황금색 옷을 입은 연인이 꽃이 만발한 언덕 위에서 서로를 꼭 껴안고 키스하는 순간을 묘사하고 있다. 남자는 여자의 입술이 아닌 볼에 입을 맞추고, 여자는 조용히 눈을 감고 이를 받아들이고 있다. 극도의 관능적인 그림으로 악명 높았던 클림트. 그런데 이 그림만큼은 범속함을 넘어 사랑의 숭고함까지 느껴진다. 도대체 그림 속 모델이 누구기에 이런 명작을 탄생시켰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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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림트 ‘키스, 1907-08’의 일부. |
이견은 있지만 화가 자신과 그의 평생 연인이었던 에밀리 플뢰게를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빈의 전설적 화가였던 클림트는 황금빛의 화려하고 관능적인 그림으로 최고의 명성을 얻었지만 동시에 악명도 높았다. 평생 독신이었지만 수많은 뮤즈가 있었고, 모델과 숱한 염문을 뿌리고 다녔다. 하지만 그의 사랑은 오직 한 사람, 플뢰게뿐이었다. 이 그림에서처럼 두 사람은 서로를 평생 의지하고 사랑했지만 끝내 부부로 맺어지진 않았다.
서로 그토록 갈구했으면서 왜 결혼은 하지 않았을까? 어쩌면 클림트는 플뢰게를 가족처럼 여겼기에 결혼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실제로도 두 사람은 사돈지간으로, 그녀는 클림트 동생 에른스트의 처제였다. 동생이 젊은 나이에 죽자, 제수와 조카를 부양하게 된 클림트는 플뢰게와 자연스럽게 한 가족처럼 더욱 가까워졌다.
클림트는 많은 여인과 정을 통했지만 플뢰게와는 30년 이상 수백 통의 서신을 서로 주고받으며 마음을 나눴다.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부터 작업에 대한 것까지 모든 문제를 그녀와 나누고 조언을 구했다. 여름휴가를 함께 보내고, 그녀가 디자인한 옷을 입었지만 결코 육체적인 관계는 맺지 않았다. 클림트 사망 후 14건의 친자확인 소송이 벌어졌을 때, 유언 집행자로서 클림트 작품 일부를 처분해 사생아들의 양육비로 나눠준 것도 바로 플뢰게였다.
물론 두 사람은 플뢰게가 원치 않아서 결혼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크다. 패션 디자이너였던 그녀 역시 빈의 유명 인사로, 자신의 의상실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경제적 능력도 있었다. 바람둥이 예술가의 부인으로 사느니, 차라리 전문직 여성의 삶을 선택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아니면 클림트의 몸은 다른 여성들과 나누고 그의 정신만 온전히 소유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클림트는 1918년 뇌출혈로 쓰러졌을 때도 플뢰게를 가장 먼저 찾았다. 그 후 일어서지 못한 세기의 거장은 평생의 연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56세를 일기로 숨을 거뒀다. 그녀 역시 클림트를 추억하며 평생 독신으로 살다가 1952년 조용히 눈을 감았다. 두 사람은 비록 이승에서 완전한 결합을 이루지 못했지만, 이 그림 속에선 변치 않는 황금처럼 영원한 사랑을 나누고 있다. ‘키스’가 사랑받는 이유는 거장의 삶과 예술, 사랑이 모두 담긴 결정체이기 때문일 것이다.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