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취한 반도체 핵심 소재의 대한(對韓) 수출규제를 둘러싼 한일 간 갈등이 예사롭지 않다. 한국은 가뜩이나 힘든 우리 수출이 더 위축될 것으로 우려한다.
하지만 일본도 부메랑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일본의 ‘경제도발’이 한일의 공동부담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일 공멸론은 이미 하나로 연결된 글로벌 경제 현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 생산과 소비의 전 과정이 국가의 경계를 뛰어넘어 복잡하게 얽혀 있다. 한국이 LNG선 한 척을 건조하면 20%가량은 노르웨이 스웨덴이나 중국 등 해외에서 기술과 소재부품이 조달된다. 자동차와 반도체, 의류와 가전제품의 생산과 소비시장도 마찬가지다. 글로벌 경제는 하나의 거대한 살아 있는 생명체로 진화했다.
그래서 우리 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등 대응 조처와 함께 거론한 대목이 주목된다. 성윤모 산업자원통상부 장관은 “우리 정부는 그간 업계와 함께 일본의 일방적인 조치에 대비해 수입선 다변화, 국내 생산설비 확충, 국산화 개발 등을 추진해왔다”고 말했다.
단기적으로 국내 기업의 어려움을 최소화하고 장기적으로 해당 소재부품의 수입 선을 일본에서 대만·중국 등으로 돌리거나 국내 생산으로 조달하겠다는 뜻이다.
우리 정부가 중장기적으로 부품소재를 무기화하는 상황에 대비해 왔다는 말로도 들린다. 우리나라는 1980년대 조선 자동차 석유화학 가전산업 등을 중심으로 한창 달아올랐을 때 입에 달고 산 게 ‘일본 좋은 일 시킨다’는 거였다. 핵심 소재부품을 해외에서 들여와 싼 노동력으로 가공조립하는 현실을 벗어나기 위한 자체 기술 개발이 정확히 어느 수준에 도달했는가를 단정적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관련 업계의 말을 들어봤다. 그동안 한국 기업이 해당 소재를 일본에서 수입한 것은 전 세계 시장의 지배적 지위를 바탕으로 한 가격 경쟁력이 큰 요인이었다고 한다. 일본 업체들의 기술력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수준은 아니라는 뜻이다.
단기적인 생산 차질은 피하기 어렵더라도 생산 중단 상황까지 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얘기도 들렸다. 업체 관계자는 “일본이 막히면 어렵다. 그래도 완전히 대안이 없는 상황은 아니다”고 답했다.
일본 내에도 아베 정부의 조치가 딱히 ‘잘했다’는 분위기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가 대한 수출규제 품목으로 발표한 스마트폰 디스플레이에 쓰이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반도체 제조 과정에 필수적인 리지스트와 에칭가스(고순도 불화수소)를 생산·수출하는 기업들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라고 한다. 한국 수입 업체들의 수요 물량이 만만찮은 상황이라 불화수소를 생산하는 모리타화학공업은 수출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일본 언론들도 한국의 수입 업체들이 아예 수입 선을 돌리는 ‘탈일본화’에 대한 우려를 거론하고 있다.
한일 모두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다가 한국과 일본이 공멸할 것이라는 우려까지 나오는 지경이다.
이런 현실을 모를 리 없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경제 도발을 감행한 배경은 경제산업성 발표에서 짐작할 수 있다. 경제산업성은 대한 수출규제의 이유를 “수출관리를 둘러싸고 한국이 관련된 ‘부적절한 사안’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부적절한 사안’이 뭔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일본 정부가 징용 문제와 관련해 (해결책을) 요구한 데 대해 (한국 정부의) 제대로 된 답변이 없었던 것도 이유”라고 했다. 한국 사법부가 내린 일본 기업의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대한 대응이라는 얘기다. 일본의 조치가 오는 21일 예정된 참의원 선거를 겨냥한 아베 총리의 ‘국내 정치용’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아베 총리의 이번 조치는 양국에 상처만 남기는 백해무익한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크다. 문은 출입을 위한 통로이다. 문을 닫으면 나가는 것도 막히지만 들어오는 것도 막힌다. 닫힌 문 바깥쪽이나 안쪽이나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둘 다 손해만 보는 일은 빨리 그만 두는 게 상책이다.
서울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