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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지금 난 어떤 속도로 살고 있나 /오경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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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9-07-04 19:27:56
  •  |  본지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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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6시가 되기 전부터 새들의 소리가 요란하다. 그 옛날엔 시계도 없이 어찌 시간을 알았을까 싶은데 막상 시골에서 살아보니 시계 쳐다볼 일이 거의 없다. 방음도 안 되는 창호지 문이 달린 방에서 자는 날이면 눈이 부시게 들어오는 햇살과 알람보다 더 요란한 새들의 지저귐에 늦잠을 억지로 자보려 해도 어렵다. 할 수 없이 일어나 정원으로 나가 눈에 들어오는 대로 잡초를 뽑기 시작한다. 머리맡에도 두고 자는 휴대전화도 없이 손에 잡히는 대로 일을 하다 보니 머리 정수리가 따가워질 정도로 뜨거워진다. 이쯤이면 이미 오전 8시를 넘겨 9시로 가는 중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그제야 집안으로 들어와 간단히 아침을 먹고 책상 앞에서 일을 시작한다. 글을 쓰는 일도 있지만 대부분은 정원을 디자인해야 하는 일인데 창의력이 매일 샘물이 솟아나듯 나올 리가 없다. 한두 시간 두통이 몰려올 정도로 머리를 쥐어짜다 쉬는 짬에 마루에 앉는다. 남쪽으로 깊게 내려진 처마 밑으로 바람이 한 번씩 훅하고 들어와 온몸의 열기를 가라앉혀준다. 남쪽 하늘에 해가 머리 꼭대기에 있으니 낮 12시에서 오후 1시로 흘러가는 중이다. 벌써 점심때인가! 점심을 먹고 나면 신기하게도 시간이 덩어리로 훌쩍 건너간다. 잠시 뭘 좀 하겠다고 뒤적이다 보면 벌써 오후 여섯 시. 시골의 저녁은 생각보다 빠르고 금방 어두워진다. 도시의 간판 불빛이 없으니 해가 지면 어둠도 깊고 진하다. 밤 10시를 못 넘기고 초저녁 잠을 자게 되는 건 작년부터다. 몇 년 전만 해도 나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밤 10시부터 눈이 말똥해지면서 그때부터 일을 시작했던 습관을 시골 생활 6년 만에 완전히 털어내게 된 셈이다.

가끔 늦은 밤, 서울에서 돌아와 어두워진 집 대문을 열 때면 동쪽 하늘에 가장 먼저 빛을 내는 금성이 보이고, 매일 조금씩 변해가는 달이 지금 우리가 어디쯤 가고 있고 말을 해준다. 달이 정말 이토록 규칙적으로 차 오르고, 반달이 되고, 보름이 되었다 다시 작아지는 일을 매일 한다는 걸 요즘에서야 실감한다.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는 이 일을 이제야 나는 알게 된 셈이다. 그러다 가끔 어떤 밤, 잠이 말똥하게 깨어 일어나는 때도 있다. 이런 날은 화장실 가는 길을 가다 문득 마루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면 보름달이 금방이라도 우리 집 마당으로 떨어질 것처럼 가깝다는 걸 알 수 있다. 보름달이 유난히 밝고 선명한 밤, 잠 못 드는 생명체가 꼭 늑대인간만이 아니라는 것을 시골 사는 사람들은 잘 안다. 우리 몸도 뭔가 이상하게 더 꿈틀거리고 뜨거워지기 때문이다.

수년 전 방송일을 하던 시절의 나의 시간은 지금과 아주 달랐다. 사무실에 걸린 시계를 수도 없이 쳐다보며 지냈다. 매일 생방송을 해야 하니 방송 시간 전까지 해야 할 일이 산더미고, 방송 시간이 임박할수록 그 초조함에 숨도 쪼개서 쉬어야 할 판이었다. 출근길엔 막히는 차 안에서 초단위로 한숨을 쉬었고, 퇴근길에는 아이들이 기다리는 유치원을 향해 정신 없이 줄달음을 쳤다. 그때 나의 시간은 요즘 아이들이 듣는 랩보다 더 정교하게 쪼개지고 무슨 소리를 하는지도 모를 만큼 빨랐다.

모두에게 주어진 24시간 같지만 분명 시간의 속도가 다르다. 같은 3분짜리 음악을 들어도 아다지오의 느린 박자를 타게 되면 시간이 천천히 흘러간 듯한 착각이 들고, 반대로 박자를 잘게 쪼갠 비트가 많은 음악을 듣고 나면 같은 3분인데도 순식간에 시간이 흘러간 듯 느껴진다.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설명은 할 길도 없고, 설령 들어도 잘 이해가 되는 건 아니지만 분명한 것은 시간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15년 전쯤, 갑자기 1년 사이 친정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부터 나에게는 시간에 대한 의문이 숙제처럼 늘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태어날 때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는 우리가 할애받은 삶의 시간들. ‘너에게 얼마의 시간을 주겠노라’ 뭐 이런 약속을 받은 적도 없는데 우리는 늘 미래를 걱정하며 살아간다. 오늘 정신 없이 쪼개지고 빨라진 시간이 미래의 나에게 편안함과 느림을 줄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정말 그럴까? 시간은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고 언제나 지금만 있다는 걸 우린 자꾸 잊고 산다. 그래서 정말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시간을 나는 무슨 단위로 살고 있느냐는 것이다. 분 단위로 시계를 보는 시간의 흐름도 있지만, 고개를 들어 파한 하늘에 흰 구름이 양을 그리는지, 호랑이를 그리는지를 상상해볼 수 있는 단위의 시간도 있다. 나는 과연 어떤 단위로 이 시간을 살고 있을 것일까?

작가·가든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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