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부산메디클럽

[문태준 칼럼] 데이비드 호크니의 첫 생각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7-04 19:07:16
  •  |  본지 30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데이비드 호크니 전시회에 다녀왔다. 전시회가 개막한 이후 누적 관람객 수가 22만 명을 넘어섰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지난 주말에도 인파가 넘쳐났다. 길게 늘어선 대기행렬 속에 끼어 전시장에 발을 들여놓기 까지 꽤 오래 기다려야 했다. 그의 작품인 ‘예술가의 초상’이 지난해에 1000억이 넘는 고가에 판매되었다는 얘기가 절로 실감이 났다. 데이비드 호크니는 ‘존재 자체가 하나의 장르’라는 평가를 받고 있고, 우리 시대에 가장 큰 인기를 구가하는 아티스트이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그의 작품 133점을 만날 수 있었다. 회화와 드로잉, 판화 등 여러 장르의 작품들이었다.

여든 살이 넘었지만 호크니는 얼리어답터로 알려져 있다. 그는 화가이면서 판화가 무대미술가 사진가이고, 그가 아이패드로 작업한 작품들은 세계인들의 각별한 관심을 끌고 있다.

전시된 작품들 가운데 콘스탄티노스 페트루 카바피스의 시로부터 영감을 받은 작품들이 우선 눈에 띄었다. 전시회 안내 소책자에는 ‘콘스탄틴 카바피’라고 쓰여 있는데, 아마도 그리스의 시인 콘스탄티노스 페트루 카바피스를 일컫는 것으로 보인다. 나는 카바피스의 시 ‘이타카’를 읽은 적이 있었다. “이타카로 떠날 때는/ 기도하라, 여행 길고 길은,/ 모험 가득 차 있기를, 지식 가득 차 있기를./(…)/ 기도하라 길이 길기를/ 숱한 여름 아침 있기를/ 네가 엄청 즐거워하며, 엄청 기뻐하며/ 처음 보는 항구로 들어갈 아침 말이다/ 네가 페니키아 상점에서 멈추고/ 세련된 보물 구입하기를/ 자개와 산호, 호박과 흑단과/ 육감적인 향수를 온갖 종류로/ 육감적인 향수를 가능한 한 많이/ 네가 숱한 이집트 도시에 가서/ 학자들한테 배우고 또 배우기를’이라고 썼다. 이 시는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의 장례식에서 낭독되기도 했다. 카바피스의 파격적인 언어와 동성(同性)에 대한 탐미적인 사랑의 시편은 호크니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이러한 영향은 호크니의 작품들에서 동성의 육체에 대한 욕망의 표현으로 나타났다.

전시회에서 많은 사람의 시선이 머문 작품은 단연 ‘더 큰 첨벙’이라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호크니가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던 시기인 1967년에 창작되었다. 그곳의 맑고 건조한 공기, 작열하는 빛 등에 매료되어 그렸다고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내게는 그런 점보다는 아주 강렬한 대낮의 정적을, 그 시공간을 일시에 깨는 어떤 충격을 생생하게 포착한 것으로 읽혔다. 마치 유리컵이 바닥에 깨지는 순간의 파열음을 잡아채는 것처럼…. 그는 수영장 수면의 고요를 무너뜨리는 하나의 우연한 행위를 파편처럼 사방으로 튀는 물방울들을 통해 보여주고자 한 것으로 보였다. 어쩌면 그는 고요함의 내부에서 들끓고 있는 에너지를 바깥으로 끌어내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피카소를 흠모해서 창작한 ‘푸른 기타’ 시리즈와 ‘와터 근처의 더 큰 나무들 또는 새로운 포스트-사진 시대를 위한 야외에서 그린 회화’ 등도 관심을 끌었다. 나는 전시회를 관람하면서 ‘예술은 세상을 어떤 방식으로 표현하는가’라는 점에 대해 생각했다. 호크니는 “나는 사물을 보는 방식 그리고 본 것을 단순하게 사고하는 방법에 관심이 있다”고 말했고, 또 “눈은 언제나 움직인다. 눈이 움직이지 않으면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눈이 움직일 때, 내가 보는 방식에 따라 시점도 달라지기 때문에 대상은 계속해서 변화한다. 실제로 다섯 명의 인물을 바라볼 때 그곳에는 1000 개의 시점이 존재한다”고 했다. 각자의 방식으로 바라본다는 것이고, 각자가 갖고 있는 기억에 의존해 본다는 것이다. 이렇게 창작된 예술 작품이 우리의 삶을 보다 탄력 있게 해줄 것임은 틀림없을 것이다.
호크니는 농장으로 가는 길을 한 해에 일곱 차례 그리기도 했다. 그 길은 변화가 있기 때문이었다. 어느 때에는 나무들이 풍요롭게 솟아 있고, 어느 때에는 잎이 시든 풍경을 보여주었다. 그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을 표현하려 했고, 인간도 이 자연의 일부라고 여겼다. 그는 “여름은 땅이 멋져요. 땅의 표면 말이에요. 안 그래요? 길의 색을 봐요. 다양하고 극적인 모습이에요”라고 말했다. 이런 바깥 세계의 변화를 그림에 다 그려 넣지는 않았지만, 그것에 반응하는 사람이 화가라고 믿었다. 그리고 그 반응은 직관적인 반응에 가까웠다.

“대상을 이해하고 나면 자신의 첫 생각을 믿어야 해요. 그리고 그날의 특별한 선택을 믿어야 해요”라고 말했다. 자신이 갖게 된 예감과 착상을 신뢰하지 않고선 진전이 어렵다고 보았다. 이러한 태도는 그만의 창작 작법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삶에 대해 가져야 할 신념으로도 썩 괜찮은 것이 아닐까 싶다. 자신을 보호하지 않고, 자신을 반신반의한다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호크니의 작품들 또한 그의 첫 생각이 짓고 만든 윤곽선이요, 형태요, 건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에 관한 한 문외한이지만 호크니가 보여주는 원근 기억 공간에 대한 해석은 인상적이었다. 가령 그는 하나의 얼굴 안에 여러 표정을 구현한다. 튀어나온 것과 평평한 것, 멈춤과 이동, 옛것과 신생의 것을 하나의 구도에 넣는다. 사물과 세계에 대한 이러한 해석은 대단히 유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혹은 역동적인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대상을 고정적인 것으로 바라보지 않기 때문이다. 대상의 유동적이고 가역적인 속성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만약 누군가의 마음에 이처럼 여럿의 감정과 사유가 들어있다고 여긴다면 우리는 그에 대한 이해를 훨씬 넓힐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사고를 자신에게도 적용한다면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망설임, 두려움, 설렘, 기쁨과 환락, 우울과 고독, 슬픔, 거부하는 것과 욕망하는 것 그리고 이것으로부터 생겨나는 말과 행동 등에 대해 너그럽게 바라볼 수 있고, 그리하여 자아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전시회를 나올 때 다큐멘터리 영상에서 호크니가 한 말이 다시 한번 떠올랐다. “영원한 것은 현재이에요. 순간이 모든 것에 우선해요. 그리고 삶은 큰 선물이에요. 제 인생관이지요. 지금의 삶을 사랑하세요.”

시인


[국제신문 공식 페이스북] [국제신문 인스타그램]

 많이 본 뉴스RSS

  1. 1현대사회 속 인간의 욕망은 어떻게 무너지는가
  2. 2근교산&그너머 <1139> 김천 인현왕후길
  3. 3부산의 전통주 양조장 <3> 동래 제이케이크래프트
  4. 4“독도, 우리 땅이란 증거 있나” 부산대 교수 끝없는 막말
  5. 5[서상균 그림창] 님들! 여기도 와주셔, 힘들대…
  6. 6추석선물, 화과자·사케 대신 이색과일·견과류 어때요
  7. 7여성 안무가 3명 ‘몸으로 쓰는 詩’
  8. 8[호텔가] 해운대그랜드호텔 한식당 ‘비스트로한’ ‘아크 페일에일’ 론칭 外
  9. 9에어컨 실외기 그늘에만 둬도 전기 10% 아껴요
  10. 10“학장 부적절 언행으로 교내 구성원 모두가 수모”
  1. 1‘조국 딸 학위취소’ 국민청원 비공개 전환한 청와대… 삭제·비공개 조건 보니
  2. 2홍준표, 나경원 겨냥 "조국 못보내면 그만 내려와야"
  3. 3북한 방사능 “우라늄 공장 폐기물 서해 유입 가능성”
  4. 4靑 "기조 변화 없다"…'조국 여론' 주시하며 '정면돌파'할 듯
  5. 5의사협회, 조국 딸 의학논문 지도교수 윤리위원회 회부
  6. 6조국 딸 장학금 논란에 이어 ‘제1저자’논란...조국 측 “지도교수의 판단”
  7. 7이영훈의 반일 종족주의 공동 저자들, 서울지검에 모욕 혐의로 조국 고소···이리저리 치이는 조국
  8. 8공지영 "조국 지지…촛불 의미 포함된 이겨야 하는 싸움"
  9. 9여야, 내년 총선 부산 최대 승부처 북강서을 화력 집중
  10. 10조국 딸 장학금 준 교수, 올 초 부산대병원장 내정설 파다
  1. 1추석선물, 화과자·사케 대신 이색과일·견과류 어때요
  2. 2양키캔들 50주년 ‘인기상품’ 한정판 재출시
  3. 3프라페노와 만난 젤라또
  4. 4데이터·AI 고도화에 1조1000억, 바이오·미래車에 3조 투입
  5. 5한~일 뱃길 손님 급감에 부산항 면세점 최대 위기
  6. 6‘부산업체 제품 사주기’ 민관 힘 모은다
  7. 7부산공동어시장 노사, 1년 만에 임단협 타결
  8. 8부산항에 ‘5G 스마트 기술’ 심는다
  9. 9균형발전 정책 발굴할 전국 첫 네트워크 부산서 닻 올려
  10. 10부산 향토빵집 B&C도 백화점으로 쏙~
  1. 1이용마 기자 별세, 향년 50세… ‘MBC 해직·복직기자’ 복막암 투병
  2. 2북한 방사능 피해, 순천 우라늄 광산서 암환자 증가..."방호장비 없이 우라늄 채취"
  3. 3GTX B 노선 ‘사실상 통과’ 평가… 수혜지 기대감·투자열기도 덩달아
  4. 4'한강 사건' 피의자 장대호 신상공개 결정... 경찰 曰 "범행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 때문"
  5. 5장대호, 과거 인터넷에 올린 글 화제..."손님들 머리 꼭대기서 쥐고 흔들어야"
  6. 6‘향년 50세’ 이용마 기자 복막암으로 별세…복막암 증상 살펴보니
  7. 7광복동 먹자골목 풍경이 바뀐다…중구, 입식 매대로 시설 교체 추진
  8. 8공지영 SNS에 조국 지지 게시물 올려...괴벨스의 발언도 인용해
  9. 9조국 딸 고교생 시절 의학논문 ‘제1 저자’ 논란… 인턴 면접도 도마에
  10. 10조국 딸 장학금 교수, 올 초 부산대병원장 공모 때 내정설 파다
  1. 1꼴찌팀의 작은 위안…‘영건 듀오’(서준원·고승민)의 발견
  2. 2홀슈타인 킬 이재성, 독일 2부리그 주간 MVP
  3. 3벤투호, 내달 6일 조지아와 평가전
  4. 4졌지만 잘 싸웠다…랭킹 212위 이덕희, 세계 41위에 역전패
  5. 5부산 개최 ‘LPGA BMW 챔피언십’, 국내파 30명 출전·상금랭킹도 반영
  6. 6
  7. 7
  8. 8
  9. 9
  10. 10
우리은행
지방분권으로 도시 살린다
대학이 가져온 ‘부’- 독일 하이델베르크
지방분권으로 도시 살린다
친환경에서 캔 ‘노다지’- 독일 프라이부르크
강동진 칼럼 [전체보기]
이기대·청사포가 눈앞서 사라진다면
2030엑스포 개최에 관한 간절한 소망
기고 [전체보기]
부산포해전을 부산대첩으로 격상하자 /서정의
‘문화도시 부산’에 대한 소고 /김배경
기자수첩 [전체보기]
극한직업의 수상구조대 /임동우
옛 해운대역 도시재생 롤모델로 /이승륜
김용석 칼럼 [전체보기]
달에는 토끼가, 지구에는 청룡이 산다
기생충의 세상, 그 우화의 이면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조선 시대 선비들의 음악문화
전통 가곡인가, 한국 가곡인가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신라젠 쇼크 줄여야 바이오가 산다 /이석주
“한가한 소리 하고 있네” /하송이
도청도설 [전체보기]
자동차 깜빡이
데스 노트
문태준 칼럼 [전체보기]
조선시대 ‘북캉스’ 풍경
데이비드 호크니의 첫 생각
박상현의 끼니 [전체보기]
경상도의 여름음식 찜국
품종을 따져라, 밥맛이 달라진다
사설 [전체보기]
신공항 총리실 검증 한 점 의혹 없이 진행되길
대저신도시 과거 실패 되풀이 말고 이번엔 성공을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중앙정부와 지자체 복지 역할 재정립
‘건강보험 하나로’와 문재인 케어
이은화의 미술여행 [전체보기]
예쁘고 행복한 그림의 화가
바람둥이 화가의 영원한 사랑
이홍 칼럼 [전체보기]
일본은 실수했다
창의성, 한국기업의 다음 생존전략
장재건 칼럼 [전체보기]
조국의 ‘서해맹산(誓海盟山)’
두 정치인의 죽음
제언 [전체보기]
광안대교, 해양안전 감시시스템 구축을 /이윤석
조영석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더위 식혀주는 음악들
7월의 음악예찬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은은한 피노누아 같은 사람
닭백숙과 와인…더위를 이기는 조합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김윤겸의 실경산수 ‘태종대’
김정희를 흠모한 이한복
  • 2019 ATC 부산 성공기원 시민대회
  • 2019아시아 트레일즈 컨퍼런스
  • 사하관관사진공모전
  • 제5회 극지 해양 도서 독후감 공모전
  • 부산관광영상전국공모전
  • 유콘서트
  • 어린이경제아카데미
  • 어린이극지해양아카데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