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감성터치] 도시의 반려식물 /최정란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7-07 19:16:03
  •  |   본지 26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도시에 나무가 없다면 어떨까. 지우개로 도시의 초록을 지워본다. 회색 콘크리트와 차가운 유리와 도금된 쇠붙이들과 끈적한 아스팔트 사막이 남는다. 사람과 건물과 차들이 우글대는 도시를 숨 쉬고 살 만하게 만드는 것은 나무들이다.

꽃 보자고 심는 나무가 있다. 열매 얻자고 심는 나무가 있다. 가시 보자고 심는 나무가 있다. 울타리 탱자나무다. 잎 보자고 심는 나무가 있다. 가을에 잎이 아름다운 나무다. 색 보자고 심는 나무가 있다. 세상의 무성한 초록이 사라지는 겨울, 몸과 영혼은 초록을 그리워한다.

수형의 아름다움을 취하는 나무가 있다. 나무의 수형은 기쁨을 준다. 전지가위는 인위적으로 정원의 향나무 수형을 다듬어준다. 영화 ‘가위손’은 나무를 다양한 동물의 모양으로 다듬어 보여준다. 파리의 플라타너스 가로수는 두꺼운 담처럼 장방형으로 다듬어져 있어 낯설고 아름다웠다.

메타세쿼이아의 수형은 다른 차원의 아름다움이다. 다듬지 않은 본래 수형, 본색의 아름다움이다. 평면상 훤칠한 이등변 삼각형이지만 사방으로 보면 우듬지가 뾰족한 원뿔 모양이다. 한 그루일 때 몸은 일상의 땅에 뿌리박고 있으나 때 묻지 않은 정신은 하늘로 비상하는 현자 같다. 수십 수백 그루가 늘어설 때 침묵으로 수행하는 초록 성자의 긴 행렬 같다. 가로수들은 나란히 평행으로 두 줄로 선 채 어딘가 우리가 알지 못할 곳으로 걸어가는 것 같다. 그 행렬을 따라가면 쓸데없는 말이 멈추고 헛된 욕망이 스러지는 성스러운 사원의 문으로 들어가게 될 것 같다.

부산에도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가 있다. 노포동 시외버스터미널을 지나 울산 방향 7번 국도가 시작되는 곳이다. 메타세쿼이아 가로수라고 하지만 무언가 애매하다. 이곳의 가로수에서는 아름다움도 장엄함도 숭고함도 느껴지지 않는다. 중동이 뭉텅 잘려나간 나무가 많아서이다. 잘린 나무들은 수형이 원뿔이 아니라 둥글둥글 부스스한 더벅머리 모양이다. 원래의 뾰족한 정수리를 회복하고자 우듬지 새순이 삐죽하니 자라나긴 하지만, 모양이 빠진다. 잘못 만들어 붙인 도깨비 뿔 같고, 꽁지 빠진 수탉 같다.

왜 저렇게 정수리를 뭉텅 잘라버렸을까. 다시 보니 굵은 전선이 나무 위를 지나간다. 전신주 사이사이에 묘목을 심었을 것이다. 어린 나무는 키가 작았을 것이다. 나무는 쑥쑥 자랐을 것이다. 몇 년 만에 전신주만큼 자랐을 것이다. 전신주도 나무처럼 키가 쑥쑥 자라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전신주는 자라지 않고 나무만 자랐다. 가만 내버려두었으면, 나무는 전신주보다 더 크게 자랐을 것이다.

전신주 키에 맞춰, 전깃줄 높이에 맞춰, 메타세쿼이아 둥치 중간이 뭉툭 잘려나간 것이다. 침대 길이에 맞춰 여행자의 발목을 자르던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가 따로 없다. 저 나무를 도시의 가로수로 계획한 사람은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 생각이 있기나 했을까.

카페 앞 은행나무 가로수는 가지 사이에 여러 가닥의 굵은 전선을 얹고 있다. 정수리가 잘려나간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못지않게, 가지 사이에 전선들을 무겁게 지고 견디는 은행나무 가로수도 고단해 보인다. 심지어 전선들은 위험해 보인다. 나무들이 자라면 전선이 짧아져 합선되는 것 아닌지 걱정도 된다.

도시의 가로수는 도시의 반려식물이다. 말없이 주기만 하는 반려식물이다. 그늘을 주고, 호흡에 도움을 주고, 마음의 평온을 주지만, 반려식물의 고단함은 쉽사리 헤아려지지 않는다. 어디에 어떤 나무를 심는 것이 더 적절한지, 한 번만 더 고민했더라면, 메타세쿼이아는 도시의 꽁지 빠진 수탉 같은 신세는 면했을 것이다.

백 년 계획이라는 사람 기르기는 어떨까. 근시안 어른의 전지가위가 아이 본성의 정수리를 자르는 것은 아닐까. 아이를 엉뚱한 자리에 세워놓고 서툰 전지가위질로 꿈의 우듬지를 자르는 것 아닐까. 반려식물에 대한 예의는 결국 사람에 대한 예의가 된다. 적절한 장소에 서는 것은 드문 행운이다. 엉뚱한 장소와 불편에 난감한 것이 삶일까.

시인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레이예스 맑음…이이무라 흐림…‘로·비’ 안갯속
  2. 2축제 때도 도개 못 한 영도대교…한 달째 원인불명
  3. 346년 감속기 외길…ICT 입힌 액추에이터 개발 성공
  4. 4청년도 “국제신문 지키자”…대학가로 지지 확산
  5. 5반려견 비비탄 학대 20대들 징역 8개월(종합)
  6. 6“끝내 알 수 없었던 어머니 마음…그 알 수 없음이 인간이죠”
  7. 7김민석 “신천지 與 입당 증거 없다” 사과(종합)
  8. 8국회의원 112명 서명…원내 주요 5개 정당 동참
  9. 9“북항개발 市-BPA 방향 같아…돔 아레나 규모 등 협의할 것”
  10. 10부산 매출액 돛 달아준 ‘해운 빅3’…6년 만에 전국 기준 100대 기업도(종합)
  1. 1김민석 “신천지 與 입당 증거 없다” 사과(종합)
  2. 2국회의원 112명 서명…원내 주요 5개 정당 동참
  3. 3李 “집값 놀라울 정도로 하락…통계 제대로 알려야”
  4. 4정계 “지역언론 독립·공공성 훼손없게 계속 관심을”
  5. 5국힘 신임 부산행복연구원장에 오경은 전 구의원
  6. 6시의회 상임위 제한 폐지 논란일자 결국 심사 보류
  7. 7美 중간선거 시작, 우주서도 투표는 계속된다
  8. 8與주도로 조작기소 특검법안 법사위 상정…국힘 반발·퇴장
  9. 9친청 “공개사과하라”·김 “자정 노력”…민주 신천지 수습 난항
  10. 10정파·지역도 초월…‘국제신문 회생’ 국회 팔 걷었다
  1. 146년 감속기 외길…ICT 입힌 액추에이터 개발 성공
  2. 2부산 매출액 돛 달아준 ‘해운 빅3’…6년 만에 전국 기준 100대 기업도(종합)
  3. 3“부산 해양수도·북극항로 육성, 선원 역할 중요”
  4. 4한진칼 주식 더 사는 조원태…호반과 지분경쟁 2R
  5. 52050년 중간저장시설·2060년 영구시설…정부, 방폐물 관리 3차 계획안 여론 수렴
  6. 6[증시와이드] 불확실성 커진 증시…우량주 중심 냉정한 대응을
  7. 7"가덕도신공항 올해 예산집행률 고작 0.03%…정상화 시급"
  8. 8석유류·공업제품값 ‘고공 행진’ 지속…부산 10월 물가상승 4개월만에 최고(종합)
  9. 9‘반도체 소부장’ 원익 공채에 1만2000명 몰려
  10. 10한양증권도 털렸다…고객·임직원 정보 일부 유출
  1. 1축제 때도 도개 못 한 영도대교…한 달째 원인불명
  2. 2청년도 “국제신문 지키자”…대학가로 지지 확산
  3. 3반려견 비비탄 학대 20대들 징역 8개월(종합)
  4. 4“북항개발 市-BPA 방향 같아…돔 아레나 규모 등 협의할 것”
  5. 5에코델타에 유치원·초·고교 추가 신설
  6. 6수능 ‘AI 안경 커닝’ 막는다지만…전문 탐지기 없어 실효성 의문(종합)
  7. 7첫 공소청 수장 후보, 이정현·박철우·예세민 물망(종합)
  8. 8전재수 부산시장 “목숨 걸고 북항 돔구장 공모 준비”
  9. 9해군 3600t급 디젤잠수함 ‘서희함’ 진수
  10. 10141개 시민단체도 노동계도 ‘국제신문 회생’ 인가 촉구
  1. 1레이예스 맑음…이이무라 흐림…‘로·비’ 안갯속
  2. 22027 아시안컵 내년 12월로 연기…차기 감독 선임 여유
  3. 3KLPGA 상금왕·대상 놓고 ‘림-솔(서교림·김민솔) 대전’
  4. 4MLB 애틀랜타 김하성, 퀄리파잉 오퍼 못 받아
  5. 5박항서 향해 “김치맨”…태국 관중들 인종차별
  6. 6김지율, 고교 최동원상 수상…부산고 하현승 아쉽게 고배
  7. 7BNK 개막전 첫 승…두터워진 선수층 빛났다
  8. 8[뭐라노] 롯데가 스마트 야구를?
  9. 9체력 비축한 마법사, 타선 폭발한 사자…누가 웃을까
  10. 10동의과학대학교,‘제1회 부산지역 전문대학 유학생 축구대회’ 준우승
우리은행
주민자치 모범현장 가다
‘주민대표’가 건축 세부사항까지 의견…지방의회 심사 반영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학교 통폐합 지역 맞춤형으로 접근”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코뿔소 없음과 진공
지역이 기획, 국가가 지원하는 R&D 시대 열자
국제칼럼 [전체보기]
국조 대상은 조희대가 아니라 증시 참사다
개·고양이 학대는 이제 그만
기고 [전체보기]
‘성범죄 취업제한’의 사각지대
‘2028 세계디자인수도 부산’의 과제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세레나데, 다정한 위로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다대포에서 만난 퇴계 이황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탈서울’ 안 된다던 원안위, 세종행에 왜 침묵하나
AX·반도체 전시회 5개 동시에 열렸는데…
도청도설 [전체보기]
등골 프로텍터
바이낸스 턴 북한 해커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왜 제대로 비워지지 않는지 살펴야
개정 응급의료법이 ‘미수용 방지법’?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캉이’ 스펙터클에서 공존으로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사설 [전체보기]
국제신문 정상화에 여야 한뜻…능인선원 결단하라
대통령 순방 정보 유출…국가 보안체계 전면 점검해야
세상읽기 [전체보기]
일상으로의 초대
SNS라는 광장, 우리는 서로의 말을 듣고 있는가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해양수도 부산, ‘제3의 경계 공간’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두 미술관, 각자의 역할을 묻다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복지의 ‘필요 원칙’과 포퓰리즘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기다림에도 비용이 든다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대규모 대미 투자, 기회인가 위협인가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사람은 갔어도 명당은 남아 있다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와인은 어떻게 마음에 남는가
추석의 식탁, 가족을 잇는 와인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당론 따를지 역사 따를지 양심의 선택을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유영국의 1957년 작 ‘사람’
CEO 칼럼 [전체보기]
십시일반(十匙一飯), 나눔이 만드는 연말의 온도
시민 주거안정에서 지역경제 활성화까지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