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부산메디클럽

[세상읽기] ‘페치카’ 최재형 선생의 삶과 나 /차동욱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7-15 19:21:30
  •  |  본지 26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이달 첫 주에 지인들과 4박5일 블라디보스토크 여행을 다녀왔다. 블라디보스토크 여행이라 하지만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잠만 자고, 연해주 일대의 독립운동 유적지와 고려인 후손이 운영하는 기관들을 탐방하였다. 여행 둘째 날, 안중근 의사의 단지동맹 기념비 방문 때부터 우리 독립운동사에 대한 나의 무지함 탓에 부끄러움이 시작되었다. 우리 독립 의사들의 항거와 함께 기억되어 있는 독립운동 지도자들의 이름이 등장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전혀 생소한 이름들이 계속 다가왔다. 그중 나의 부끄러움을 극대화시킨 이름은 난로를 의미하는 러시아 말 ‘페치카’란 애칭으로 불리던 최재형 선생이었다.

최재형 선생은 우리 항일 무장투쟁의 아버지로 한국 역사책에 기록되어야 할 분이다. ‘페치카’란 애칭은 이국땅에 사는 동포에게 한없이 따뜻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회과학 전공의 대학 교수가 최재형 선생의 이름을 처음 들어봤다는 사실에 대한 수치심은 “나도 이번에 처음 알았어”라는 주위의 위로로 조금씩 누그러들었지만, 남은 블라디보스토크 여행기간과 귀국 후 지금까지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것은, 최재형 선생이 왜 그런 삶을 선택했을까 하는 질문이다.

러시아 사회에서 인정받는 러시아인으로 살면서, 소수 민족이긴 하지만 명문가 혈통을 이어가도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물론 볼셰비키 혁명 이후 러시아에서 소수 민족이 당했던 일을 생각하면, 질문의 전제가 잘못된 것이라 할 수도 있지만, 최재형 선생이 동포를 위한 삶을 선택하고 항일투쟁의 선봉에 선 것은 볼셰비키 혁명 훨씬 이전이다. 혁명 이후라도 최재형 선생 본인과 그의 능력, 처세술을 이어받은 후손들은 소비에트 정권과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을 것 같다.

최재형 선생은 1860년 함경북도에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 9세 때 아버지와 연해주로 이주하였다. 잘 살아보자는 러시안 드림이 아니라, 고향 땅에는 굶어 죽거나 맞아 죽을 일만 남아 있기 때문에 고향을 등졌을 것이다. 소년 최재형의 마음에 조국은 없었을 것이다. 11세 때 가출했다가 쓰러져 죽어가는 것을 러시아 상선의 선원들이 구해줬고, 소년 최재형의 근면함과 영특함에 반한 러시아인 선장 부부의 후견으로 가출 10년 뒤 성공한 사업가로 가족에 돌아간다. 유창한 러시아어 구사 능력과 뛰어난 사업 수완으로 러시아 군·관계에 폭넓은 인맥을 형성하였다. 그의 사업 중 하나가 러시아 군납 사업이었으니 그에 대한 러시아인의 신임은 대단했을 것이다. 두 차례나 러시아 황제를 알현할 기회를 갖고 5개의 훈장을 받았다.

최재형 선생의 동포를 위한 교육열은, 선생이 1891년 설립한 연추 니콜라예프스코예 소학교가 1899년 연해주 내 최우수 러시아 소학교로 평가받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잘 알 수 있다. 이국땅에서 성공한 사업가가 동포를 위해 훌륭한 학교를 세웠다는 건 놀라운 사실은 아니다. 놀라운 것은 최재형 선생이 항일의병의 군자금으로 1만3000루블이란 거금을 쾌척하고, 직접 일본군과의 전투를 지휘했다는 것이다. 1920년 4월 최재형 선생은 일본군에 의해 살해되었다.

대대로 조선의 고위 관직을 이어 온 명문가인 이회영 선생의 일가도 전 재산을 독립운동을 위해 쓰고 헌신하였다. 편안한 삶을 버리고 항일운동에 까지 뛰어들어 자신과 가족, 후손의 삶까지 희생의 길로 접어들게 한 독립 의사가 많다. 그럼에도 최재형 선생의 삶에 유독 마음이 편치 않은 이유는, 그는 아무런 죄책감 없이 러시아인으로서 사업을 잘하며, 러시아 땅의 동포를 위한 교육 등 공익사업들만으로도 충분히 페치카 최재형으로 기억될 수 있었다. 그런데 무엇이 사업가 최재형 선생으로 하여금 무기를 들게 만든 것일까?

최재형 선생의 초상을 보고 있으면 대화를 나누고 싶어진다. “선생님. 저는 현 정부의 정책 기조에 동의합니다. 그렇게 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은 그런데 작은 불편들이 자꾸 느껴지면서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제 생각과 마음이 이렇게 따로 놉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고 하면, 선생께서는 뭐라고 하실까? 질문의 수준에 화를 내실까? 아니면 페치카 같은 따뜻한 미소로 답하실까?

동의대 공공인재학부 교수


[국제신문 공식 페이스북] [국제신문 인스타그램]

 많이 본 뉴스RSS

  1. 1한국당 출신 예비후보 1명 내세워 하태경과 1대1 경선으로 결정 유력
  2. 2한국당 양산을 후보들 ‘홍준표 반대’ 수위 높여
  3. 3민주당 기장공천, 불꽃 튀는 3파전
  4. 4여당 “금정구 단수공천은 실무 착오”…번복 가능성에 시끌
  5. 5김형오발 부산공천 새판짜기…잡음없는 쇄신에 달렸다
  6. 6압박카드 통했을까…버티던 PK현역 잇단 불출마
  7. 7경남교육청, 교사·시민단체 참석 지구 지키는 환경교육 비상 선언
  8. 8울산시, 국가산단 위험시설 세금 부과 추진 논란
  9. 9김해 화포천습지 주변 불법 시설물 단속
  10. 10[서상균 그림창] 총선 '런웨이'
  1. 1유기준 정갑윤, 총선불출마선언
  2. 2 문재인 대통령 “공포·불안 과도하게 부풀려져 … 비상·엄중한 상황”
  3. 3 홍남기 “중소 관광업체에 500억원 무담보·저금리 융자”
  4. 4 문재인 대통령 “국민들 정상적 일상 복귀해 달라”
  5. 5 홍남기 “외식업체 육성자금 확대…금리도 인하”
  6. 6 홍남기 “해운업체 600억 긴급경영자금…항만 사용료 감면”
  7. 7한국당 5선 정갑윤, 총선 불출마 선언 “문 정권 심판해달라”
  8. 8한국당 출신 예비후보 1명 내세워 하태경과 1대1 경선으로 결정 유력
  9. 9文, ‘혁신성장·상생노력’ 앞세워 코로나19 극복에 총력(종합)
  10. 10민주당 기장공천, 불꽃 튀는 3파전
  1. 1부산항 등 주요 항만 보안감독관 배치
  2. 2P2P금융, 법 테두리 안으로…대박 좇기전 연체율 살펴라
  3. 3하나금융, 더케이손보 770억 원에 인수
  4. 4금융·증시 동향
  5. 5부산시, 수산현안 다룰 정책협의회 만든다
  6. 6 기아차 4세대 쏘렌토 디자인 공개 外
  7. 7주가지수- 2020년 2월 17일
  8. 8“코로나로 선박수리 지연…IMO와 협의, 검사기간 연장을”
  9. 9부산시, 해양신산업 9개 혁신기업 공모
  10. 10원양산업노조 새 위원장 염경두
  1. 1‘코로나19’ 국내 30번째 확진자, 29번째 확진자의 아내
  2. 2베트남 여행 부산 40대 남성 숨져...응급치료한 부산의료원 응급실 폐쇄
  3. 330번째 확진자, 확진 전 ‘기자와 접촉’…자가격리 소홀 논란
  4. 4부산의료원, 사망 남성 ‘음성’ 판정으로 ‘응급실 폐쇄 해제’
  5. 5부산의료원서 숨진 40대 남성, 코로나 19 ‘음성’ 판정
  6. 6금정구 부곡동 오피스텔서 부탄가스 폭발사고…극단적 선택 추정
  7. 7 ‘코로나19’ 국내 28번 환자 오늘 격리 해제
  8. 8 홍남기 “저비용항공사에 3000억 긴급융자…공항사용료 유예"
  9. 9“불에 탄 옷가지 시신 착각” 순천완주고속도로 사고 피해자 집계 혼선
  10. 1017일(오늘) 날씨, 일부지역 제외하고 전국 눈 소식
  1. 1손흥민, 애스턴 빌라전서 평점 8.4점 받아
  2. 2토트넘, 애스턴 빌라에 3-2로 승리···‘손흥민 멀티골 성공’
  3. 3‘손흥민 역전골’…첫 5경기 연속골에 EPL 통산 50골 겹경사
  4. 4아스널 VS 뉴캐슬 선발 라인업 공개
  5. 5아스널, 뉴캐슬 4-0 완파···‘페페의 맹활약’
  6. 6쇼트트랙 박지원, 1000m까지 금메달···'월드컵 6차 2관왕'
  7. 7 격투기 대회 ‘엠타이틀’ 성황리에 열려...한국, 브라질에 2대1 짜릿한 승리
  8. 8부산실내빙상장 훈련선수들, 전국 동계체육대회 선전 기원
  9. 9손흥민 아시아 첫 EPL 50골…이젠 시즌 최다 골 도전
  10. 10겨울스포츠 불모지 부산, 동계체전 4위 넘본다
한국전쟁 70년…분단인 통일인
독일 통일과정 7대 과오
한국전쟁 70년…분단인 통일인
다시 읽어보는 한 ‘분단인’의 삶
강동진 칼럼 [전체보기]
제1부두, 이왕 보존하는 김에 제대로
도시 규제의 경제학
기고 [전체보기]
각본상 ‘기생충’과 문학·문학인의 자리 /김광수
‘견제와 균형’의 형사사법 시스템을 바라며 /백상훈
기자수첩 [전체보기]
장난치지 말고··· /신심범
부산형 일자리와 부산연대기금 /김화영
김용석 칼럼 [전체보기]
개혁을 위한 아카데미상은 없지만
영화 진흥은 영화관서 시작된다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강강술래와 농악
‘시립’과 ‘국립’의 앙상블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이상문학상 사태가 남긴 것 /정홍주
전염성 있는 신뢰를 찾습니다 /최영지
도청도설 [전체보기]
명지의 청년풍
상징색이 중요해
문태준 칼럼 [전체보기]
상월선원의 천막결사
내심(內心)의 소리 듣는 시간
박상현의 끼니 [전체보기]
어느 이탈리안 레스토랑의 10주년
따끈한 쌀밥에는 명란젓
사설 [전체보기]
대거 입국 중국인 유학생, 보다 세밀한 대책 필요하다
미래통합당, 세 불리기 아닌 보수 새 비전 제시해야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인구 절벽 시대, 복지 대타협 급하다
지속 가능한 노인 돌봄, 지역사회도 나서라
이수훈 칼럼 [전체보기]
“한미동맹, 이상없다”
한일 ‘투 트랙 외교’ 올해는 회복해야
이은화의 미술여행 [전체보기]
죽기를 결심하고 그린 명작
모두가 받고 싶은 성탄 선물
이홍 칼럼 [전체보기]
한국 경제 회복탄력성이 관건이다
한국 경제, 희망의 빛도 보인다
장재건 칼럼 [전체보기]
“나는 바이러스가 아니다”
설 연휴 무탈하셨는지?
조영석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나의 LP 이야기
핀란드의 찬가 ‘핀란디아’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와인 바이러스와 기생충
와인의 소리
특별기고 [전체보기]
‘코로나 19’ 반드시 이겨낼 것이다 /곽붕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심사정 지두화 ‘절로도해도’
겸재 정선 ‘수박 서리하는 쥐’
  • 제8회 바다식목일 공모전
  • 2020 어린이 극지해양 아카데미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