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10월 18일 오후 5시께 반원 3명과 함께 형사반장의 직책으로 근무 명을 받고 시위 현장을 살펴보던 이모 경관은 옛 부산시청(현 롯데백화점) 건너 대로변 광복동 입구 앞 노상을 지나던 중 공수부대 계엄군으로 보이는 군인들이 시민을 무릎 꿇려 놓고 진압봉으로 구타하는 것을 목격하였다. 경찰관으로서 이를 결코 묵과할 수 없다고 판단한 그는 스스로 경찰관임을 밝히고 “왜 무고한 시민을 구타하느냐. 당장 그만두시오”라고 제지하였다. 그러나 그 순간 지휘관으로 보이는 장교가 경찰관 신분증을 낚아채어 빼앗고 군 트럭 안에 대기 중이던 10여명의 군인에게 “야! 조져, 저 새끼들 필요 없어. 조져”하고 명령하자 전원이 뛰어 내려 각자 소지하고 있던 참나무 몽둥이로 4명의 경찰관 머리 등을 무자비하게 내려치고 쓰러진 경관들을 군홧발로 짓밟는 등 집단폭행을 가하였다. 이모 경관은 구타를 당하던 중 정신을 차리고 다른 경관들에게 도망치라고 소리치고 자신도 필사적으로 그곳을 벗어나 몸을 숨겼다가 날이 어두워진 뒤 택시를 타고 직장으로 돌아갔다.
본서로 돌아간 그는 이미 계엄군으로부터 상황을 통보받은 서장에게 불려가 위로는커녕 호된 질책을 받고, 동시에 자신들이 겪은 사건에 대해 일절 함구할 것을 명령 받았다. 그 후 이 사건은 40년 동안 침묵 속에 갇히고 말았다. 피해 당사자인 4명의 경관은 이 사건으로 몸에 큰 상처를 입어 병원 치료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정신적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4명 중 1명은 이미 사망하였고, 당시 사건 현장에 있었던 나머지 세 명의 피해 경찰은 지난해 11월 부마민주진상규명위원회에 부마민주항쟁관련자로 인정받기 위해 진실규명을 신청하였다. 지난 3월 이들은 부마민주항쟁 관련자로 공식 인정되었다. 40년의 세월이 흐르고 나서야 이들은 ‘시위 진압 훼방꾼’의 누명을 벗고 명예를 회복할 수 있었다.
이 이야기에서 사건 일자와 장소를 어느 날 어느 곳이라고 바꿔 놓으면 독자 중 십중팔구는 아마도 1980년 5월 광주의 모습을 머릿속에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1980년 5월 광주의 모습이 아니라 그보다 7개월 앞서 부산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시간적으로도 그리 멀지 않은 광주와 부산에서 벌어진 별개의 두 사건은 사실상 여러모로 닮은 점이 많다. 광주에서 일어났던 살인적 진압 방식의 단초는 이미 부산과 마산에서 목격되었던 것이다. 단지 부마항쟁으로 촉발된 반유신 반독재 민주항쟁의 열기가 이른바 10·26사태로 일시 종식되었을 뿐이다. 이러한 상황을 놓고 보면 최근 언론보도를 통해서 새로 밝혀진 대로, 광주 학살의 최고 책임자로 지목된 전두환이 광주에 앞서 보안사령관 자격으로 부산을 먼저 방문했다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1979년 10월 16일 이후 부산 시내 전역은 연일 ‘유신체제 타도’를 외치는 시민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로 인해 유신정권이 파견한 군부대원과 시민 사이에 격렬한 충돌이 곳곳에서 일어났다. 부산에서 시작된 반유신 항쟁의 불길은 10월 18일에는 부산 인근 도시 마산으로 옮겨 붙었다. 당시 유신 정권은 부산과 마산 시민의 예상치 못한 거센 저항에 부딪히자 두 도시에 각각 계엄령과 위수령을 선포하고 유례없는 폭력적인 방법으로 이를 진압하였다. 그러나 그 후과 또한 컸다. 결국 권력 내부에 큰 균열이 일어나 박정희의 유신독재는 10월 26일 이른바 ‘대통령 유고’ 사태로 막을 내렸다. 결과적으로 부마민주항쟁이 유신체제의 종말에 결정타를 날렸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부마민주항쟁은 한국현대사의 흐름을 바꾼 대사건이며, 한국 민주화운동사에 있어서도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한 중대 사건이다.
지난 6월 25일 정부는 부마민주항쟁 발생일인 10월 16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는 내용의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의 일부 개정령안을 입법예고한다고 밝혔다. 만시지탄의 감이 없지 않으나 이제 부마민주항쟁은 4·19 혁명, 5·18 광주민주화운동, 6·10 민주항쟁에 이어 한국현대 4대 민주화운동의 하나로 공식적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와 더불어 지난 7월 4일에는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부마 1979, 유신의 심장을 쏘다’란 제목으로 부마민주항쟁40주년 기념전시 개막식이 열렸다.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이 주최한 이번 기념전시는 광주, 창원을 거쳐 10월 중에는 부산에서도 열릴 예정이다.
올해는 3·1운동 100주년과 함께 부마민주항쟁 40주년이 되는 해다. 특히 부산과 마산을 중심으로 부마민주항쟁 40주년을 기념하려 각종 행사가 진행되고 있거나 예정되어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부마민주항쟁의 역사적 의의를 되새겨 볼 많은 기회가 마련됐다. 이제 부마민주항쟁은 응당 국가적 기념 대상이 되겠지만, 그중에서 부산과 마산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가 각별히 기대되는 상황이다.
동아대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