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 직후 프랑스 드골 정부가 나치 부역자 숙청 작업을 시작하자 완전한 대척점에 섰던 이들이 프랑수와 모리악과 알베르 카뮈이다. “민족 화합 차원에서 그리스도의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고 호소한 모리악에 대해, 카뮈는 “배신자와 반역자들을 인간의 정의에 따라 엄격하게 처벌해야 한다”며 단호한 척결을 주장했다. “과거 범죄를 단죄하지 않는 것은 미래의 범죄를 예비하는 것이다”라는 카뮈의 말은 지금도 인용된다. 그러나 카뮈는 이후 천재 작가 로베르 브라지약이 동료들의 구명 노력에도 결국엔 사형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모리악이 옳았다”고 공개 인정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4년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은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 작업을 대대적으로 벌이다 뜻하지 않은 암초를 만났다. 친일 청산에 앞장섰던 당내 주요 인사들의 부모나 친·인척의 친일 행각이 드러나면서다. 당시 열린우리당 의장의 부친이 독립운동가들을 고문했던 헌병이었고,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 특별법’을 대표 발의했던 의원도 아버지가 만주국 경찰이었다. 일제하를 살아낸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에 이 시대의 기준을 들이대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확인된 셈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가 “대일전에서 백태클을 걸면서 우리 선수를 비난하고 일본 선수를 찬양하는 사람들은 신(新)친일파”라고 규정했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도 “(강제동원 관련) 대법원 판결을 부정 비난 왜곡 매도하는 것은 일본 정부의 입장이며 이런 주장을 하는 한국 사람을 마땅히 친일파라 불러야 한다”고 했다. 그러자 야당에서는 “북한 팔이로도 모자라 이제는 일본 팔이냐”며 “자신들과 생각이 다르면 친일이냐”는 반발이 이어졌다. 정작 온힘을 다해 함께 싸워야 할 상대는 장외에 두고 헛되이 내부 총질에만 열을 올리는 형국이 됐다. 한일 양국 간 치열한 경제전쟁 와중에 느닷없이 제기된 신친일파 논란이 뜨악하기도 하지만 정작 일본이 이를 어떻게 볼지 생각하면 기가 찰 일이다.
모리악과 카뮈의 청산 논쟁으로 프랑스 지성계는 양분됐지만 누구도 시비를 걸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목숨을 걸고 나치에 항거한 레지스탕스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대부분 해방된 지 한참 후 태어나 고도 성장기에 청년기를 보낸 사람이다. 그러니 누군가를 친일파라고 매도하기 전에 내게 그런 자격이 있는지 한 번쯤 자문해보는 게 그나마 역사 앞에 공손한 태도일 것이다.
강필희 논설위원 flut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