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전공한 피리라는 악기는 고구려 시대 서역에서 실크로드를 따라 우리나라로 유입된 악기로 향악화(鄕樂化)되면서 궁중음악에서부터 민속음악까지 합주에서 주선율을 담당하는 악기가 되었다. 이처럼 외래 음악과의 교류는 역사적으로 꾸준히 존재해왔다. 다만 전통음악의 큰 범주 내에서 주체적 수용과 변용으로 천 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계승·발전해왔다. 그러나 19세기 개항(開港)을 시작으로 20세기 전통음악은 서양음악의 유입과 일제강점기로 예상치 못한 혼돈 상황을 맞는다.
 |
| 국립국악원의 정악단 공연 모습. 국립국악원 제공 |
1885년 이후 외국인 선교사들에 의해 서양음악이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이후 선교사들이 설립한 학교에 음악 과목으로 풍금에 맞추어 부르는 찬송가를 가르치면서 점차 일반인도 찬송가 곡조에 당시 정서에 맞는 가사를 붙여 부르는 창가(唱歌)가 유행하게 된다. 서양음악의 유입 과정은 기존 비슷한 문화권 간 대륙을 통한 교류가 아닌, 전혀 다른 문화권의 바닷길을 통한 유입 과정으로 그야말로 이질적인 외래 음악이었다. 더불어 일제강점기에는 일본풍 대중음악으로 인해 예인으로서 전승 단절 위기와 생존이 결부된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다.
이렇게 험난한 세월을 거쳐 1969년 국가무형문화재 제30호로 지정되었고, 2010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인류무형문화유산 목록에도 등재된 판소리와 더불어 우리나라 대표적인 성악 장르이자 성악곡인 가곡(歌曲)이 있다. 정가(正歌)라고도 불리는 가곡은 16세기 ‘금합자보(琴合字譜)’에 ‘만대엽’으로 수록된 이후 18세기에 접어들며 민간이나 관아에서 활동하던 가객들이 19세기에는 궁중연향에도 참여하며 양반을 비롯한 지식층이 향유한 성악 장르였다. 3장 형식의 정형시를 5장으로 나누어 노래하며, 남녀 창의 연창 순서에 따라 ‘동창이 밝았느냐’로 시작하는 ‘초수대엽’을 시작으로 마지막 곡인 ‘태평가’까지 연창하면 몇 시간이 필요한 느리고 품격 있는 음악이다. ‘청구영언’ ‘해동가요’ ‘가곡원류’가 모두 가곡의 노랫말을 기록한 가집(歌集)이다.
세계도 인정한 가곡. 그러나 가곡 하면 성악가가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부르는 한국 가곡이 먼저 떠오르지는 않는가? 1920년 발표된 우리나라 최초로 서양식으로 작곡된 홍난파의 ‘봉선화’를 홍난파 선생은 ‘가곡’으로 이름 붙이면서 이후 작곡되는 곡들은 독일 가곡, 이탈리아 가곡처럼 한국 가곡으로 부르며 대중에 소개해왔다. 기존 가곡과 그 이름이 같았던 두 장르는 어느새 원 가곡은 ‘전통가곡’으로, 서양식으로 작곡된 가곡은 ‘한국 가곡’으로 불리고 있다. 한국에서 창작되고 한국인이 불러온 한국 가곡도 내년이면 100년이 된다. 100년의 역사를 간직한 한국 가곡과 400년의 역사를 간직한 전통 가곡 모두 장르는 다르지만 오랜 시간 우리 민족의 삶과 숨결을 담고 있는 한국의 소리이며 그 예술성은 세계 속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다. 세계가 인정한 한국의 소리 전통가곡 ‘초수대엽’을 한번 들어보길 권한다.
소리연구회 소리 숲 대표·음악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