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의 세계는 1등만 기억한다. 1등은 모든 걸 가진다. 대표적인 승부의 세계인 선거만 봐도 알 수 있다. 당선인만이 모든 걸 가진다. 2등은 의미가 없다. 1표 차이로 지든, 1만 표 차이로 지든 마찬가지다. 그냥 진 것이다. 주어지는 권한은 아무것도 없다. 과정의 아름다움은 순간이다. 곧 잊힌다. 아무리 의미를 부여해도 승패를 바꿀 수는 없다. 승리보다 아름다운 패배라는 말은 이성의 세계에서만 존재한다. 소설이나 영화에 나올 법한 수사에 불과하다. 너무 세속적인가. 지고도 받는 박수의 의미를 알아채지 못하는 개인적인 한계일 수도 있다.
그래도 2등의 의미를 말하라면 조직 구성원으로서 역할이다. 경쟁이 불가피한 조직이라면 순위는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 1등은 2등이 있기에 존재하니까. 2등이 뛰어나면 그만큼 1등은 더 빛난다. 이렇게 말하니 2등의 위상은 더 초라해진다. 남을 빛내기 위한 게 존재의 가치라니. 하물며 꼴찌는 어떻겠나. 꼴찌는 놀림의 대상이 되기가 쉽다. 비참하다.
이런 승부의 세계에서 패자가 주목을 받는 경우가 간혹 있다. 어떨 때는 아예 꼴찌가 관심을 더 받는다. 요즘 한국 여자수구대표팀이 대표적이다. 대표팀은 2019 광주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서 5전 전패, 16위 즉 꼴찌를 했다. 첫 경기는 0-64(헝가리전) 두 번째 경기는 1-30(러시아전) 세 번째 경기는 2-22(캐나다전) 네 번째 경기는 3-26(남아공전)으로 졌다.
그런데 언론은 꿈 같았던 한여름의 동화라고 보도했다. 과정을 주목한 것이다. 대표팀은 두 달 전 급조됐다. 그것도 수구 자체를 처음 접하는 경영 종목 선수들이었다. 훈련 역시 남자부 체고 선수와 5, 6차례 경기를 치른 게 전부였다고 한다. 개최국 자격이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실력 차는 당연한 것. 하지만 사람들은 승패보다 경기할 때마다 한 골씩 더 넣은 것에 환호했다. 대표팀은 ‘4골’을 노렸던 마지막 쿠바와의 경기에서 0-30으로 졌다. 하지만 제2의 ‘우생순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라며 박수를 받았다.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는 그런 것이다. 최선을 다하고 도전하는 모습에 사람들은 환호한다. 스토리가 있으면 더 감동적이다.
요즘 부산에는 시민의 놀림 대상인 꼴찌가 있다. 바로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다. 연봉 1위의 꼴찌라는 비아냥을 듣는다. 그 속에는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는 질책이 담겨 있다. 곧잘 자멸했다는 경기 평이 나오니 변명도 못 할 판이다. 여자수구대표팀과 대비된다.
정순백 논설위원 sbj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