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결국에는 일본 경제에 더 큰 피해가 갈 것임을 경고해 둔다”고 했다. “우리 기업은 일본의 소재·부품·장비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 수입처를 다변화하거나 국산화의 길을 걸어갈 것”이라며 극일 의지도 드러냈다. 지난 15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다. 대(對)한국 수출규제 등 일본의 경제보복에 강력히 대응하겠다는 메시지다.
우리 대통령이 일본 정부를 겨냥해 ‘경고’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전례를 찾기 어려운 초강경 발언이다. 곧장 국민의 ‘보이콧 재팬’에 불을 지폈다. ‘개싸움은 우리가 한다. 정부는 정공법으로 나가라’. 제목은 거칠지만, 내용은 품격 있는 글이 인터넷에서 열렬한 지지를 받는다.
사실 이보다 더 대놓고 일본을 압박한 건 보수 정부였다. 그땐 ‘말’이 아니라 ‘행동’이었다. 2012년 8월 10일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헬기를 타고 독도를 방문했다. 우리 정부 수립 이후 대통령이 독도를 찾은 건 처음이었다. 이 전 대통령은 독도경비대원들에게 “독도는 진정한 우리의 영토이고 목숨 바쳐 지켜야 할 가치가 있는 곳”이라고 힘줘 말했다.
대통령이 ‘韓國領(한국령)’ 글자가 새겨진 바위를 숙연하게 쓰다듬는 장면은 압권이었다. 많은 국민이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꼈다. 일본이 방위백서에 8년 연속 ‘독도는 일본 땅’이란 주장을 담고, 일본군 위안부 배상청구권 문제에 부적절한 태도로 일관해 국민 분노가 치솟던 때였다.
2012년 그때와 2019년 지금, 두 대통령의 움직임에서 빚어진 정치권 반응은 거울을 보듯 같다. 공수 교대만 이뤄졌을 뿐이다.
2019년, 제1 야당은 일본의 경제보복과 관련한 정부 대응이 잘못됐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정부·여당이 반일 감정을 자극해 국론 분열을 부추긴다는 주장이다. “북한 팔이를 하던 정권이 이제는 일본 팔이를 한다” “외교적 접근보다는 반일 감정에만 편승하고 있다” “정부가 나라를 패망으로 몰아간 구한말 쇄국정책을 펴고 있다” 등의 발언도 제1 야당에서 나왔다.
여당도 가만있을 리 없다. 여당은 제1 야당을 ‘신친일파’ ‘일본 돕는 엑스맨’ 등으로 규정하며 가시 돋친 설전을 벌인다.
2012년, 이 전 대통령이 독도에 섰을 때도 그랬다. 그때 제1 야당은 “깜짝 쇼이자, 정말 나쁜 통치행위” “반일 감정에 편승해서는 안 된다. 독도 문제는 일본보다 더 차분하고 치밀하게 대응해야 한다” “한일관계에 대한 대책이 없다는 게 드러났다” “일본을 자극하는 건 현명한 처신이 아니다” “이게 무슨 외교냐. 똥볼 차기지” 등으로 거센 공격을 퍼부었다.
그때의 여당 역시 제1 야당에 “마치 일제 36년이 한국 근대화에 도움이 됐다는 신친일 매국파가 안 되기를 바란다”며 강력한 수비로 맞섰다.
지금 여당(더불어민주당)은 2012년 그때 제1 야당(민주통합당)이었다. 지금 제1 야당(자유한국당)은 2012년 그때 여당(새누리당)이었다. ‘내로남불’이란 말은 이럴 때 쓴다.
한일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는다. 대한민국을 ‘식민지 조선’쯤으로 취급하는 일본에 맞서 국민은 차분하고 품격 있는 ‘개싸움’을 시작했다. 우리 국민은 일상과 온라인에서 일본 제품 불매를 비롯해 여행 취소 등 ‘보이콧 재팬’ 운동을 실행 중이다. “독립운동은 못 했지만, 불매운동은 한다”며 “개싸움은 우리가 할 테니, 의연하고 당당하게 맞서라”는 게 정부와 정치권을 향한 국민의 주문이다. 부산시를 비롯한 많은 지자체와 교육청, 일선 학교도 갖은 손해를 감수하고서 일본과의 교류 사업을 중단·재검토하고 나섰다. 국민 결의를 모른 척할 일이 아니다. 정도를 넘어선 반일 감정이라 탓할 일도 아니다.
2012년 그때나 2019년 지금이나 국민은 한결같은데, 정치권은 손바닥 뒤집듯 공수를 바꿔가며 한심하고 수준 낮은 행태만 반복한다. 국민이 이렇게 든든한 뒷배가 돼주는데, 정치권은 오만방자한 일본에 맞서 마음 하나 모으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인가 싶다. “그 찌질한 맥주, 알량한 여행에서부터” 국민이 대신 ‘개싸움’을 해주겠다는데, 그래도 부족한가.
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