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 년 전 국내 가전업계는 가습기 생산에 열을 올렸다. 건강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 증가로 그 수요가 급격히 늘어나서다. 주요 업체마다 신제품을 속속 선보였고 전체 시장 규모도 해마다 커졌다. 하지만 가습기는 내부에 물을 넣은 상태로 이틀만 그대로 놔둬도 세균이 10배 넘게 증식하는 게 문제점으로 꼽혔다. 1994년 10월 한국소비자보호원은 가전 4개사 제품에 대한 조사결과를 이같이 공식 발표하고 경종을 울렸다.
그리고 한 달여 뒤 가습기용 살균제가 국내 시장에 처음 나왔다. ㈜유공(SK이노베이션의 전신)이 18억 원을 투자해 개발한 것으로, 가습기 안의 물에 약품을 타는 방식이었다. ‘가습기 메이트’란 이름의 이 제품은 각종 수인성 질병을 일으키는 세균과 물때 등을 완전히 없앨 수 있는 것으로 소개됐다.
당시 업체 측이 낸 광고에는 이런 문구가 적혔다. ‘가습기 메이트가 우리 가족 건강을 지켜줍니다’ ‘번거로운 가습기 청소 걱정 싹 씻었어요’. 그러면서 가습기 내 물을 갈지 않고 하루만 지나면 세균이 100배 이상 증식한다는 글귀도 담았다. 다소 자극적인 표현으로 살균제 구매를 부추기는 듯한 모습이었다. 게다가 살균 효력이 보름 넘게 지속되고, 독성 실험에서는 인체에 전혀 해가 없는 걸로 나타났다는 홍보문도 붙었다.
그러나 검찰이 그제 발표한 ‘가습기 살균제 사태 재수사’ 결과를 보면, 1994년 최초 출시 전부터 부실 개발된 것으로 드러났다. 그 과정을 보면 말문이 막힌다. 업체의 담당 연구원이 ‘인체에 안전한 기준을 고려하지 못했다. 해당 물질은 매우 위험해 제조상 애로가 있다’고 진단해서다. 의뢰를 받은 서울대 교수 연구팀도 ‘실험용 쥐들의 병변 등을 볼 때 인체 유해성 여부를 검증하기 위한 추가 흡입독성 시험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그럼에도 업체 측은 추가 검증 없이 가습기 살균제를 만들어 시장에 내놨다. 판매 수입에 급급해 기업윤리와 소비자 안전을 내팽개친 꼴이다.
이 제품은 세계 최초이고, 우리나라에서만 출시됐다. 하기야 안전관리가 철저한 해외 선진국이었다면 과연 이렇게까지 됐을까 싶다. 살균제의 대량 피해가 감지되고 판매를 중단시킨 것은 첫 제품 출시 후 17년이 흐른 2011년이 되어서다. 그간 정부에 등록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는 이달 19일 기준으로 6476명이고 이들 중 1421명이 숨졌다. 생존 피해자도 대다수가 고통에 시달린다. 피해 구제와 완전한 진상규명도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부실 개발의 비극치고는 너무나 혹독하다.
구시영 논설위원 ksyo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