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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 칼럼] 일본은 실수했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7-25 19:41:52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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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한일 간 정치적 갈등을 이유로 한국에 경제보복을 가했다. 한국의 주력 산업인 반도체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산업에 핵심적으로 쓰이는 소재에 ‘수출 금지령’을 내리면서부터다. 이들이 없으면 한국의 주력 산업이 크게 영향받는다. 한국의 어려움이 예상된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일본은 치명적인 실수를 했다. 한국인만이 지닌 특이한 역량을 묵과한 것이다. 한국인은 이상하게도 위기 상황에서 창의성을 발휘하는 힘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평소에는 창의적으로 생각하길 싫어하다가도 위기만 닥치면 이것을 창의적으로 헤쳐 나가는 능력이 매우 높다.
그림 서상균
이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수출규제를 받는 소재가 우리 기업이 쉽게 극복하기 어려운 고난도 기술이기 때문이다. 물론, 단시간에 극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 훨씬 어려운 기술도 극복한 전례가 있다. 한국 기업이 세계시장을 흔들고 있는 OLED 기술이 그것이다. 사실 이 기술은 우리 것이 아니다. LG는 미국의 코닥 기술을 사들여 산업화한 것이고 삼성은 일본 기술을 사들여 성공했다. 이들 기술이 한국에 넘어온 이유는 코닥과 일본 기업이 OLED 개발을 포기해서다. 달성하기 어려운 초고난도 기술이라는 판단이 들자 투자비라도 건질 요량으로 한국에 넘겨준 것이다. 이 난해한 기술을 온갖 어려움 속에서 한국 기업이 완성했다. 여기에 비하면 이번 사태의 기술은 충분히 극복 가능한 것이다.

위기가 닥치면 창의력을 발휘하는 능력은 사실 우리 피에 들어 있다. 임진왜란으로 돌아가 보자. 육지에서 임진왜란의 물꼬를 결정적으로 조선으로 유리하게 틀어 준 사건이 하나 있었다. 행주대첩이다. 권율 장군이 2300여 명의 조선군과 민간인만으로 조총으로 무장한 3만 명의 왜군을 격파한 사건이다. 이 전쟁으로 한양(서울)이 수복되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 혹자는 행주산성에서 아낙네들이 행주치마에 돌을 날라다 던져 이겼다고 하지만 이것은 사실무근이다. 조총은 정확도를 지닌 무기로 사거리는 성인 걸음 60보(70m) 정도지만 조준해서 살상하는 능력이 대단했다. 이런 무기를 무슨 재주로 돌을 던져 이긴다는 말인가? 이 전쟁은 그런 방식으로 이긴 것이 아니라 창의성으로 이긴 전쟁이다. 이 승리의 주역은 승자총통이다. 이것은 일종의 화포다. 화포에는 천자·지자·현자·황자총통 같은 것이 있다. 이들이 대형 화포임에 반해 승자총통은 개인 화포다. 원시적 소총 같은 거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선조 8년에서 11년 사이 전라좌수사를 지낸 김지라는 이가 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납으로 굳힌 쇠구슬 15개를 넣어 한 번에 날릴 수 있다. 사거리는 성인 걸음 600보(720m) 정도다. 사거리가 조총보다 10배 길어 유리할 것 같지만 이 무기는 치명적 약점이 있었다. 정확도가 매우 낮았다. 산탄총이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승자총통은 적을 겨누어 정확히 살상하는 무기가 아니다. 적을 향해 쏘아 대충 맞히는 무기다. 이에 비해 조총은 적을 겨누어 정확히 살상하는 무기다. 조총이라는 이름은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정확도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것이다.

그런데 이 산탄총이 행주산성에서 희한한 방법으로 사용되면서 일본군을 격퇴하는 핵심 무기가 된다. 그 비밀은 승자총통기라는 것에 있다. 승자총통을 수십 개 장착할 수 있는 화차를 말한다. 행주산성에서 사용된 것을 망암화차라고 부른다. 율곡의 수제자 망암 변이중이라는 이가 임진왜란 중 개발한 것으로 승자총통 40문을 삼면에 탑재해 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이것의 위력은 대단했다. 한 번에 15개의 쇠구슬을 넣을 수 있는 승자총통이 40개가 장착되자 600개의 철탄환을 공중에 동시에 쏠 수 있게 되었다. 행주대첩에서는 이 신무기가 40대 투입되었다. 한 번에 2만4000개의 철탄환이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것을 상상해보라. 웬만한 우박을 맞아도 머리에 상처가 나는데 이보다 수백 배 무거운 쇠구슬이 비 오듯 떨어지자 일본군은 대처할 방법이 없었다. 이 무기를 조선이 그것도 전쟁 중 개발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3만의 병력으로 6번의 집요한 공격을 폈지만 이들은 조선의 창의적 아이디어를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위기 상황에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해내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이번의 경제보복은 우리에게 상처만 준 것은 아니다. 다른 한 편에서 보면 우리의 안일함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되었다. 한일 간에는 끊임없이 갈등이 있었다. 그렇다고 일본이 경제와 기술을 무기로 한국을 공격할 것이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시끄럽기는 했지만 데모 몇 번 하다 긴장이 사라지는 경험을 과거 여러 차례 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적어도 우리는 두 가지를 알아야 한다.

하나는 일본이 언제든지 경제를 무기로 공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공격할 대상이 우리의 가장 약한 곳이라는 점이다. 이제 우리의 인식이 명확해져야 한다. 일본과 불필요하게 갈등할 필요는 없지만 긴장이 생기면 이들이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 알았으니 이에 대비해서 이겨야 한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창의성이 필요하다. 이것을 지원하는 정부의 새로운 산업정책이 필요하다. 기업도 일본산만 믿고 경영하는 안일한 생각에서 벗어나 창의적으로 나서야 한다.

다른 하나는 이제 국가 간 전쟁은 국방력도 중요하지만 기업이 전쟁의 일선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이것을 한동안 잊고 살았다. 한국의 경제속도가 빨라지면서 기업의 중요성을 잊었다. 당연히 기업은 있는 것이고 이들은 세금이나 내는 존재로만 여겼다. 하지만 일본의 경제보복은 이들이 경제전쟁의 선봉에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이제 우리는 기업이 경제전쟁에서 이길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이 이들이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정부와 국민이 만들어주는 것이다. 이렇게 대응하면 이 정도의 위기는 벗어 날 수 있다. 우리 몸에는 위기에 창의력을 발휘하는 DNA가 있다.

광운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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