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임시수도 기념거리에서 ‘피란수도 부산 문화재 야행’이 열렸을 때다. 피란수도 부산 문화재 야행은 한국전쟁 기간 임시수도였던 부산의 피란 유산을 시민이 직접 둘러보는 역사 투어 프로그램. 행사 중심이 된 장소는 임시수도기념관과 임시수도 정부청사(동아대 석당박물관)다. 그런데 1925년 건립된 임시수도 정부청사(등록문화제 제41호)에 관한 알림판 설명이 이상하다. 도청 소재지를 경남 진주에서 부산으로 옮길 때 지은 경남도청사이고 한국전쟁 때 임시 정부청사로 썼으며, 옛 경남도지사 관사(현 임시수도기념관)와 함께 부산의 대표적인 근대 공공 건축물이라는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지은 건물인데도 한국전쟁 이전에 대한 언급이 아예 없다. 설명은 ‘피란수도 부산’의 표상이라는 데 집중돼 있다. 왜 그럴까. 불편하기 때문이다. 굳이 언급해서 건물의 역사적 가치에 ‘마이너스’가 되는 걸 원치 않을 것이다.
이는 일제와 연관된 근대문화유산을 대하는 우리 시각의 이중성이다. 근대 개항의 출발점이 된 부산은 일본과 떼려고 해도 뗄 수 없다. 부산지역 근대문화유산에는 일제 잔재와 맞닿은 게 대부분인데, 그런 까닭에 근대문화유산들에 부정적인 시각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여기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는 한 근대문화유산의 보존이나 활용, 재생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 어두운 역사도 역사다. 사실 부산은 일제강점기 식민지적 근대 특성이 집약된 도시다. 이를 인정하기 싫고 애써 외면하고 싶을 뿐이다. 이는 임시수도 시절 국회의사당으로 활용된, 임시수도 정부청사 옆에 있던 무덕관(1926년 건립)이 헐린 배경이다. 당시 국회 정치파동의 현장이기도 했던 건물이 사라지고 몇몇 건축부재와 기록만 석당박물관 한쪽에 보관돼 있다. 임시수도 행정부의 건물은 남아 있는데, 입법부의 그것은 깨끗이 사라진 셈이다.
다른 현장도 찾아봤다. 부산 강서구 대저동 일대다. 이곳을 해시(#)태그한다면 #대저 수리조합 #김해평야 #대저 배와 구포 배 #구포다리와 구포역 #신작로 #일본식 가옥 등으로 대변된다. 이들은 하나의 키워드, 즉 ‘일제의 토지 수탈’로 정리된다. 일제가 조선의 토지 약탈을 위해 동양척식주식회사를 세웠고, 일본 농민에 이민을 장려했으며, 대저수리조합을 통해 낙동강에 제방을 쌓는 등 김해평야 시대를 열었다는 사실이다. 또 대저 일대 배 농사가 유명했고 ‘대저 배’는 구포장을 통해 ‘구포 배’로 전국에 유통됐으며, 1933년 대저와 구포를 잇는, 동양에서 가장 긴 구포다리가 건설됐는데 이 다리와 연결된 신작로(신장로)가 현 강서구청 앞으로 놓이게 됐다는 것. 일본식 가옥은 대저 배의 역사와 함께한다. 대저는 우리나라 근대 배 농업의 발상지임에도 이를 기억하는 이가 많지 않다. 대저 배의 역사를 제대로 남기려면 일본식 가옥과 그 가옥에 있는 배 저장창고도 함께 보존하는 게 마땅하다. 대저의 일본식 가옥 역시 근대 부산의 역사 중 하나다.
대저동 일대에서 일본식 가옥을 만나는 일은 어렵지 않다. 그만큼 많다. 일본식 가옥은 대저동을 지나가는 남해고속도로를 기준으로 해 ‘ㄷ’ 모양으로 포진해 있다. 오래된 소나무와 향나무 등으로 정원을 잘 가꿔 놓아 입이 떡 벌어질 만한 곳도 있다. 대저동 취재 때 동행한 최원준 시인은 “수령 100년이 넘는 큰 소나무와 향나무, 대밭이 있다면 일본식 가옥이 있었거나 있는 곳이라고 보면 된다. 하지만 최근 몇 곳이 사라졌다. 원형 보존 상태가 좋았던 것도 형상 변경이 잦다. 정부와 지자체 차원에서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 일본식 가옥 중 근대건조물로 지정된 것은 두 곳뿐이다. 그나마 그중 한 곳은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정원에 잡초가 웃자라고 있었다. 나머지는 속수무책이다.
다른 지역에서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 먼저 무소속 손혜원 (서울 마포구을)의원의 투기 의혹으로 새삼 유명(?)해진 ‘전남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등록문화재 제718호)이 있다. 이곳은 문화재청이 지난해 6월 처음 도입한 면(面) 단위 등록문화재다. 하나의 건축물에 국한되지 않고 공간 개념으로 통째로 보존·활용하는 것이다. 목포 구도심 일본식 건물 15건과 그 일대의 공간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는데, 일본식 가옥을 개조한 카페, 일제강점기 고급 요릿집과 여관도 포함돼 있다. 경북 울릉군 울릉읍 도동리의 1910년대 일본식 목조 상점 겸용 2층 주택(등록문화제 제235호)은 문화유산국민신탁이 보존·관리를 하고 있다. 제재업자이자 고리대금업자인 일본인이 지었는데, 경제 침탈의 역사를 보여준다. 부산도 근대문화유산의 도시로 우뚝 설 수 있을까. 근대문화유산을 지키고 가꾸는 선례가 많으니, 방법은 찾으면 된다. 사유재산이라고 해서 이를 개인에게 맡길 일이 아니다. 일제강점기 울릉도에도 일본인이 벌목과 제재업 등에 종사하기 위해 많이 들어와 살았다. 부산의 대저동과 오버랩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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