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이 직업인지라 하루 대부분을 뉴스 홍수 속에서 지낸다. 흔히들 이야기하듯 좋은 소식이 많으면 좋으련만, 어디 세상사가 그리 마음대로 되겠나. 뉴스의 창 속으로 들여다본 세상은 갈수록 험해지는 양상이다. 정치 경제 사회 외교 등 쏟아지는 새 소식은 온통 폭발 직전의 화약고다. 그 뉴스들과 연관된 정서는 험악하기만 하다. 혐오, 막말, 비난, 대립, 비아냥 등이 난무한다. 이런 험악한 말들은 꼬리를 물며 확대재생산되고 종내는 문제의 근원이 무엇인지조차 불투명해진다.
너무 앞서간 건 아닌지 모르겠다. 직업 특성상 자주 보는 게 이런 류이다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갈수록 뉴스를 보는 게 두려워지는 게 필자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터이다. 타협이라곤 모르는 정치는 더 말할 것도 없고, 사안사안마다 핏발 선 극단이 대세다. 물론 뉴스 속 세상에 유달리 관심이 많은 일부의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상대 의견엔 조금도 관심을 두지 않는 불통과 단절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 소통이 본질인 인터넷 시대의 역설이기도 하다.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더 든 건 최근 관심을 끈 두 정치인과 관련이 있다. 한 명은 지난 16일 극단적 선택을 한 정두언 전 의원이다. 또 한 명은 지난 23일로 1주기를 맞은 노회찬 의원이다. 1년의 차이가 있긴 해도 하필이면 1주일을 사이에 두고 허망하게 떠나버린 그들의 생전 족적이 떠올라서다. 각각 합리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 인사로 정치권 등에서 나름의 평가를 받던 터여서 참으로 애꿎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아울러 과연 무엇이 이들을 극단적 선택으로 내몰았을까 하는 생각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비록 보수와 진보로 정치적 지향은 달랐지만 둘의 공통점은 많다. 무엇보다 진영을 가리지 않는 열린 자세다. 정 전 의원은 ‘비운의 풍운아’로 불릴 정도로 정치적으로 더 큰 뜻을 펼치지는 못했다. 그러나 보수 진영의 정치평론가로 활동하며 진보 측에 쓴소리를 하되 터무니없는 비판은 삼갔다. 오히려 자신의 친정인 보수 진영을 향해 개혁을 끊임 없이 요구했다. 그의 빈소에 범여권 인사가 대거 조문을 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노 의원 또한 마찬가지다. 진보 진영의 최전선에 서 있으면서도 전혀 짙은 정치색을 띠지 않고 보수와 대화를 마다하지 않았다.
이런 정치적 성향은 그들의 독특한 캐릭터와도 무관하지 않다. 진영을 떠나 부당한 사안이 발생하면 특유의 촌철살인으로 문제의 핵심을 꼬집었다. 그 바탕엔 유머도 깔려 있다. 첨예하고 살벌한 정치판에 그들의 유머러스한 촌철살인은 윤활유와도 같았다. 음악을 사랑한 휴머니스트였던 것도 닮았다. 그러면서 각자의 자리에서 끝없이 정치개혁을 주문했다. 그들이 대중으로부터 유달리 사랑받았던 것도 이런 따뜻한 정치 덕분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런 꿈을 끝내 이루지 못한 채 유명을 달리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들을 좌절하게 했을까. 표면적으로 노 의원은 정치자금 수수 의혹, 정 전 의원은 오랫동안 앓아온 우울증이 그들을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끌었다. 그러나 이런 이유만으로 둘의 돌연한 죽음을 설명할 수 없다. 진보와 보수를 오가는 유연한 성향 속에서도 끝내 좌절할 수밖에 없었던 더 깊은 속내가 있었으리라 본다. 여린 심성의 자신들이 가진 힘만으로는 도저히 어쩔 수 없는 공고한 기득권에 대한 절망감이 그 실체일지도 모른다. 촌철살인과 유머조차 제대로 통하지 않는 꽉 막힌 정치에 대한 좌절이기도 하다.
정 전 의원의 빈소에는 여야를 떠나 수많은 정치인이 찾았다고 한다. 이들은 하나같이 진영을 가리지 않은 고인의 소통과 유머 정신을 기렸다. 1년 전 노 의원 빈소에서의 장면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노 의원이 꿈꾸던 정치는 여전히 요원하기만 하다. 정 전 의원 빈소에서 이어진 정치인들의 칭송 또한 그저 인사치레에 그칠 공산이 크다. 돌이켜 보면 우리 정치판에 흔한 풍경이다. 안타까운 죽음을 접하고 나서야 고인의 숭고했던 뜻을 기리기 바쁜 악습이다. 고인들은 이런 ‘반짝 칭송’이 아니라 자신들의 유지를 이어가길 무엇보다 바랐을 것이다.
희망사항일 뿐일까. 이런 와중에도 쏟아지는 뉴스 속엔 대립과 갈등이 여전히 난무한다. 그럴수록 두 합리적 정치인의 빈자리는 더욱 커 보인다. 그들의 유머와 소통, 포용 그리고 휴머니즘을 그리워하는 이들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누군가는 고인들의 역할을 대신하겠지만, 합리적 정치인이 설 땅이 없는 정치는 비극이다. 상대를 조금도 인정하지 않는 극단의 대립만 계속되는 한 우리 정치의 비극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단순한 빈소에서의 덕담이 아니라 정치인들이 한시라도 고인들의 뜻을 잊지 말아야 할 이유다.
논설실장 jj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