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는 예쁘고 행복한 그림을 그린 작가로 유명하다. 엄마와 아이들을 그린 이 그림 역시 단란한 가정의 행복한 일상을 담고 있다. 즐거운 일상의 순간들을 포착해 밝고 화려한 색채로 그린 그의 그림은 보고만 있어도 유쾌한 에너지를 준다. 작품만 보면 부유한 환경 속에서 평생 고생 한 번 안 하고 자기하고 싶은 그림만 그렸을 것 같지만 사실 르누아르는 13세 때 학교를 그만두고 공장에 취업해야 할 정도로 가난한 집안 출신이었다. 그랬던 그가 어떻게 행복한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 성공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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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샤르팡티에 부인과 아이들’(1878년). |
고학하며 틈틈이 그림 공부를 한 르누아르는 프랑스 명문 미술학교인 에콜 데 보자르에 입학했다. 원하던 화가가 되었지만 그림이 팔리지 않아 궁핍한 생활은 여전했다. 보수적인 살롱전에서 그림이 계속 거부당하자, 1874년 모네 피사로 드가 세잔 등과 함께 제1회 인상주의 전시회를 열었다. 하지만 전시는 성공하지 못했고 대중과 평론가들로부터 혹평을 받았다. 그래도 르누아르는 포기하지 않고 인상파 전시에 계속 참여하면서 인상파의 주요 화가로 떠올랐다. 그의 열정과 노력을 하늘이 알아준 걸까? 이즈음 그에게 중요한 후원자가 나타난다. 바로 파리의 부유한 출판업자 조르주 샤르팡티에 부부였다. 인상파 전시에서 르누아르의 그림에 매료된 부부는 1878년 가족 초상화를 주문하면서 이 가난한 화가를 적극적으로 후원하게 된다. 이 그림은 당시 파리 상류층 가정의 따뜻하고 행복한 분위기를 잘 대변해 준다. 화면 속엔 고급스러운 가구와 동양적인 장식으로 꾸며진 거실을 배경으로 최신 유행 옷을 입은 샤르팡티에 부인과 두 아이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똑같은 옷과 머리 모양의 아이들은 자매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남매다. 엄마 곁에 앉은 세 살 난 아들은 당시 관행에 따라 머리도 기르고 누나 옷을 입고 있다.
이 그림은 이듬해 살롱전에 출품되면서 르누아르 인생에 봄을 안겨주었다. 특히 샤르팡티에 부인의 영향력 덕분에 그림은 살롱전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좋은 자리에 걸렸고, 부인은 르누아르에게 에밀 졸라 같은 유명 평론가뿐만 아니라 파리 상류층 인사도 고객으로 소개해주었다. 이후 그림 주문이 쇄도하면서 르누아르는 드디어 부와 명성을 쥔 유명 화가가 되었다.
누군가 너무 예쁜 그림만 그리는 것이 아니냐고 물으면 “왜 예술이 예쁘면 안 되지? 세상에는 불쾌한 일이 너무 많은데”라고 되받아쳤던 르누아르였다.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고, 가난한 무명 시절을 견뎌냈지만 그는 늘 세상의 아름다운 면만 바라보고자 했던 긍정주의자였기에 이런 밝고 행복한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 것이다. 말년에는 지병인 관절염 때문에 손가락에 붓을 묶어 작업을 이어갈 정도로 그림에 열정적이었다. 숨지기 3시간 전까지도 붓을 놓지 않았던 그는 ‘이제야 그림을 조금 이해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1919년 7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