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2월, 미국 언론재벌의 상속녀인 패트리샤 허스트(당시 19세)가 좌익 과격단체 ‘공생해방군(SLA)’에 납치됐다. 그로부터 두 달 뒤 SLA가 샌프란시스코의 한 은행을 습격해 금품을 강탈했는데, 그 일당에 그녀가 있었다. 허스트는 소총으로 은행 직원과 고객들을 협박했다. 이어 그해 6월, 그녀는 “SLA의 동지가 되어 끝까지 싸우겠다”는 선언을 녹음한 카세트 테이프와 사진을 로스앤젤레스 방송국에 보내 미국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다. 그녀는 자신의 부모를 “파시스트 돼지”라고 욕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 세 달 뒤 체포된 그녀는 법정에서 “살기 위해 그랬다”며 표변했다. 변호인단도 “납치범들에게 세뇌됐으며, 이는 ‘스톡홀름 증후군’에 해당된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배심원단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징역 35년형이 선고됐지만, 스톡홀름 증후군을 둘러싼 논란은 뜨거웠다.
스톡홀름 증후군은 인질이 인질범에게 동화되는 비합리적 현상을 뜻한다. 해당 사건은 허스트가 SLA에 납치되기 6개월 전인 1973년 8월에 발생했다. 당시 스웨덴 스톡홀름 노르말름스토리에 있는 한 은행에 강도가 들었다. 강도는 4명의 은행 직원을 인질로 잡고 경찰과 6일간 대치했는데, 그 과정에서 직원들이 강도에게 호의를 갖게 됐다. 강도에 대한 불리한 증언을 거부하는가 하면, 심지어 강도를 옹호하기도 했다. 현장에서 사건을 지켜본 범죄심리학자 닐스 베예로트는 그 이유를 “자신들을 해치지 않은 인질범에 대한 고마움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그리고 그런 심리적 현상을 스톡홀름 증후군으로 명명했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스톡홀름 증후군 낙인’을 찍었다. 최근 세 달 사이 북한이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세 차례 연달아 발사했는데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채 “북한을 대변하고만 있다”는 까닭에서다. 이들은 “문 대통령은 안보의 가장 큰 위협요소”라고도 했다. 북한이 남한과 미국의 대화 제의에 무력 도발로 엇박자를 내는 것은 분명 문제이긴 하지만, 문 대통령을 이같이 규정하는 건 사실 왜곡이 아닐 수 없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남북화해 성과를 모두 무너뜨리고 ‘잃어버린 10년’을 만든 주인공이 자신들이란 것을 망각한 듯하다.
한국당의 행태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횡행한 ‘종북 프레임’의 연장이다. 종북 프레임은 70년 분단의 산물이니, ‘냉전 증후군’이나 다름없다. 그 증상은 기나긴 냉전의 세월만큼 뿌리 또한 깊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