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와 1970년대 세계시장에서 일본인은 ‘경제동물(Economic Animal)’이라고 불렸다. 경제적인 실리(實利)를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던 일본인의 특성을 비꼰 표현이었다. 당시 일본인은 제2차 세계대전 패망의 상실감을 돈벌이로 달랬다. 다행히 그들에게는 태평양전쟁을 하면서 습득한 무기 제조기술이 있었다. 이를 산업기술로 바꿔 세계시장을 공략했다. 일본산 자동차, 전자, 기계는 지구촌을 휩쓸었다. 대한민국도 마찬가지였다. 그 덕분에 일본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도약했다.
이 같은 경제력에 도취된 일본은 결국 교만해졌다. 이웃 국가에 대한 침략 역사를 정당화하거나 역사를 왜곡하는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냉전시대의 진영논리는 일본의 역사적 범죄를 퇴색시키는 데 한몫을 했다. 막대한 달러를 거머쥔 일본은 1980년대 초반부터 미국의 자산을 사들였다. 당시 제조업 붕괴와 달러 가치 하락으로 침체됐던 미국의 국채, 기업, 부동산은 일본계 은행의 수중에 넘어갔다. 일본 전자기기의 대명사 격이자 다국적 기업이던 소니는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영화사와 방송국까지 사들였다. 당시 일본 언론에서는 ‘극미경제(克美經濟)’라는 단어도 등장했을 정도다. 일본인은 미국의 자산을 사들이면서 카타르시스를 느꼈을 법하다. 태평양전쟁 당시 진주만 공습을 재차 떠올렸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일본의 도박은 최악의 결말로 끝났다. 1980년대 후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냉전체제가 붕괴되자 세계경제 질서는 진영 논리에서 다자 간 무역시대로 재편됐다. 한국 중국 동남아 국가들이 초고속 성장하면서 일본을 위협했다. 때마침 미국은 저금리 시대에 접어들고 실리콘밸리에선 벤처 열풍이 불었다.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오라클은 세계경제의 새로운 경제주역으로 등장했다. 국채와 부동산 등 안전자산 가치가 급락하자 일본이 사들인 미국 내 투자자산의 가치도 급락했다. 결국 일본계 은행과 금융회사는 줄줄이 침몰했다.
이후 일본 경제는 장기 침체에 빠졌다. 세계시장을 석권했던 자동차 전기 전자 기계 조선의 생산기지를 중국과 동남아로 이전하거나 사업 자체를 포기했다. 한국이 반도체 강국으로 부상한 것은 히타치 도시바 등 일본 반도체 기업의 사업 포기에 따른 반사이익에 의한 것이었다. 일본계 금융회사들은 미국 국채와 기업을 헐값에 되팔았다. 그러자 월가의 기업 사냥꾼들은 일본이 토해낸 기업을 반값에 사들였다. 일본의 미국 본토를 향한 경제 공습은 일장춘몽으로 막을 내렸다.
일본의 경제 공습이 이번에는 한국으로 향했다. 일본 정부가 반도체 소재인 불화수소 등의 한국 수출규제 조치를 취하고 나선 것이다. ‘에칭가스’로 불리는 고순도 불화수소는 반도체 불순물 세정 과정에 주로 사용되는 물질이다. 국내 반도체 업체들은 불화수소의 90%를 일본에서 수입하는 상황에서 일본의 행위에는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한국의 주력 산업인 반도체에 타격을 주려는 저의가 도사리고 있다.
이번 조치의 배경은 두 가지로 압축된다. 먼저 한국의 대법원이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일본 기업이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린 데 보복이라는 해석과 한국 경제의 급성장에 대한 견제라는 해석이다. 어떤 해석을 내리든 이번 사태는 일본이 아직도 19세기 제국주의 사고에서 탈피하지 못한 채 패전국의 피해 의식에 매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이웃 국가들에게 씻을 수 없는 역사적 과오를 저지르고도 진정성 있는 참회를 한 적이 없는 그들이다.
문제는 일본의 경제 공습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불행하게도 우리의 대응은 100년 전 조선 말기의 상황을 보는 듯하다. 지독한 가난을 경험해본 우리에게 먹고사는 경제 문제는 무엇보다 소중한 가치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국가와 민족의 자존심까지 내팽개친다면 경제전쟁에서도 살아남기 힘들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한강의 기적’은 한국 국민의 자존심과 열정으로 일궈낸 결과물이다. 더욱이 우리의 소중한 영토마저 제 것이라고 생떼를 쓰는 상대방이라면 우리는 더 똘똘 뭉쳐야 한다. 경제 문제이기 이전에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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