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는 대외적으로 일본의 대한국 수출규제, 미중 통상 마찰, 미국의 개발도상국 지위 배제 압박, 여전히 풀리지 않는 한중 갈등 등 사면초가 상태에 처해 있다. 일본 정부는 한국을 백색국가(white list)에서 배제하기로 결정하였고, 이 조치는 이달 말에 실시될 것이다. 한국으로 수출하는 경우 이미 발표된 세 가지의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주요 핵심 소재에 이어 1000개가 넘는 전략물자 관련 품목이 개별적인 수출 허가를 받아야 한다. 1972년 ‘미중 연합 성명’이 체결되었던 상하이에서 12차 무역협상을 진행하였으나, 기대와 달리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면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다음 달 1일부터 기존 2500억 달러에 더해 추가적으로 3000억 달러 상당의 중국산에 대해 1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경고했다. 추가 관세가 부과되는 품목은 대부분 소비재로, 중국의 대미 수출이 위축될 경우 한국산 중간재의 대중국 수출이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세계무역기구(WTO) 개도국 우대 체계를 시정해야 한다고 밝히면서 한국 멕시코 터키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면서 개도국 지위를 유지하는 나라로 거론했다.
우리는 수출은 중국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핵심 부품과 소재 수입은 일본에 의존하는 무역구조를 가지고 있다. 미중 통상마찰이 격화되면서 중국에 대한 수출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우리 경제에는 큰 부담이다. 지난해를 기준으로 대중국 수출 의존도는 26.8%에 달하고, 홍콩을 포함할 경우 34.4%에 달한다. 2018년 말 누계를 기준으로 한국의 해외 투자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도 투자 건수로는 35.7%로 1위를 차지하며, 투자액으로는 14.3%로 미국에 이어 2위다. 우리 경제가 미중 무역전쟁 등 중국발 리스크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특히 반도체의 41.2%, 평판 디스플레이 및 센서의 46.8%, 석유화학 중간원료의 81.4%, 반도체 제조장비의 48.8%가 중국으로 향하고 있다. 미중의 기술패권 경쟁은 대중국 수출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전자통신(ICT) 분야 수출에 타격을 줄 것이며, 기술패권 경쟁 과정에서 미국과 중국으로부터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한국의 수입에서 일본이 차지하는 비중은 10% 내외로 높지는 않지만, 핵심 소재와 부품에 대한 대일본 의존도가 높아 일본의 수출규제가 우리 주력 산업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불가피하다. 한국이 백색국가에서 배제되면서 일본으로 개별 허가를 받아야 하는 전략물자 대상 품목은 전체 대일본 수입액의 43%에 달한다. 전략물자 리스트 규제 품목의 경우 일본으로부터 수입하는 비중은 가공기계류는 29.5%, 첨단소재 28.9%, 화학물질 23.6%, 센서 19.5%, 전자부품 및 소재는 15.1%이다. 연간 대일본 수입이 1000만 달러를 넘어선 730여 개 품목의 수입에서 일본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90%를 넘는 품목이 60여 개, 4분의 3을 넘는 품목이 120여 개, 50% 이상인 품목 245개에 달한다.
최근의 글로벌 무역질서가 자유무역을 통한 공동발전이 아니라, 안보를 이유로 내세워 경쟁국의 발전을 끌어내리려는 방향으로 전개된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이미 글로벌 경제 전쟁이 시작되었고, 협상이 아닌 일방적 굴복을 통해 해결하려는 양상마저 나타나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과 일본의 대한국 보복 조치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상황이 중국의 시장과 일본의 핵심 부품과 소재에 의존하는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크다. 결국, 시장의 다변화와 핵심 소재·부품의 독자적 기술력이다. 미중 마찰의 장기화·상시화에 따른 리스크를 줄이는 길은 우리 수출시장을 다변화하는 것이다. 신남방정책과 신북방정책을 보다 내실화·구체화함으로써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실질적 정책으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한다. 일본의 보복에 대응하는 길은 부품과 소재 분야에서 우리의 독자적 기술력을 확보함으로써 일본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이다. 정부가 이미 발표한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및 보복조치 관련 종합 대응 계획을 중단 없이 실행함으로써 우리 경제 체질은 물론 한일 경제협력 구조를 근본적이고도 항구적으로 바꿀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