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의 관리자를 자처하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지난 6월 말 일본 오사카에서 개최되었다. 대표성 문제나 효율성에 대한 비판에도 G20은 WTO(세계무역기구) 및 브레턴우즈 체제와 더불어 국제경제와 금융정책의 조율 및 운영에서 비중 있는 역할을 해왔다. 1999년 설립 이래 금융위기 극복, 지속 성장을 위한 제도 개선,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의 개혁 등 화두를 이끌고 있다. 이번 제14차 정상회의에서는 자유무역의 강화가 관심사였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갈등 양상에 비추어 이번 정상회의에 거는 기대는 크지 않았다. 정작 중요한 사안은 오사카 회의가 끝난 직후에 불거졌다.
일본 정부가 지난달 4일부터 우리의 주력 수출제품인 반도체와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패널 제작에 사용되는 소재 3개 품목에 대해 수출규제를 시작하는 한편 추가적으로 우리나라를 소위 화이트국가에서 제외하는 조치를 진행하고 있다. 일본의 처사는 WTO 협정에 근거하지 않은 자의적인 행위이다. 중국에 대해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고 안보적 차원에서 정보통신정보망 보호를 위해 화웨이와의 거래를 중단시킨 미국의 조치와도 거리가 있다. 보복관세나 안보를 위한 무역규제는 WTO 협정에 명확한 규정이 있다.
일본이 행정절차를 통한 무역규제에 능하다는 것은 주지하는 역사적인 사실이다. 지난 1일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회의에서 비비안 발라크리쉬난 싱가포르 외교장관은 아세안 회원국 가운데 한 나라도 백색국가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면서 백색국가 명단은 오히려 확대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은 이번에는 전통적인 규제수단에 구애를 받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이는 만큼 그 파장이 결코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자유무역주의 흐름을 바꾸어 놓을 가능성마저 엿보인다. 자유무역은 생산의 효율화와 소득 증대라는 성과를 통해 세계화의 추동력이 되었다. 프란시스 후쿠야마는 그의 저서 ‘역사의 종말’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기초한 자본주의의 확산으로 인류사회의 사회문화적 진화는 종착점에 도달했다고 말한 바 있다. 하물며 일본은 전후 복구와 경제발전 과정에서 자유무역과 세계화의 혜택을 가장 크게 누렸다.
자유무역을 가능케 하는 생산 기반은 분업이다. 데이비드 리카르도가 비교우위론을 제시하여 자유무역의 효율성을 증명한 이래 비교우위의 지표가 노동 생산성을 넘어 자원, 자본, 혁신과 개혁 등으로 확대되면서 세계경제의 통합을 견인해왔다. 기술의 발전이 고도화한 오늘날의 생산 활동은 상품 단위의 분업을 넘어 제조 과정의 분업으로 발전하고 있다. 소위 범 세계적 가치사슬(global value chain)이 그것이다. 일본의 보복조치는 자유무역의 기반인 분업화된 시장구조를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지난달 24일 제네바에서 개최된 WTO 일반이사회에서 이 문제에 대한 논의가 있었는데 한일 양국이 토론의 결과를 전하는 목소리는 사뭇 다르다. 당연히 그럴 것이다. 정치적인 동기에서 야기된 사안을 경제적인 규범의 틀에서 논의하는 것은 애초 의미를 두기 어렵다. 자유무역을 규율하는 국제체제에는 한계가 있다. WTO 협정은 자유무역 원칙을 선언하는 한편 반덤핑 조치 등 예외적인 대응을 인정하고 있는데 회원국이 이러한 규정을 원용할 경우 자기 해석을 앞세우는 사례가 많은 것이 현실이다. 물론 개별 국가의 부당한 조치에 대해서는 제소를 통한 구제장치가 마련되어 있지만 실효성 있는 결과로 연결되기는 쉽지 않다.
글로벌 거버넌스가 공정하고 효율적인 모습을 갖추기까지는 거리가 있다. 이러한 이유로 개별 국가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가져올 부조화로 자유무역질서가 부정되고 국가 우선주의가 모습을 드러낼 위험성이 있다는 점은 꾸준히 경계되어 왔다. 자유무역 질서에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국가가 스스로 질서의 실체적 규범을 이루는 구성원 전체의 ‘합의와 신뢰’를 파기하는 행태가 초래할 결과는 예단하기 어렵다. WTO는 자유무역 질서의 훼손과 시장 참여자의 이탈을 막아내야 하는 새롭고도 중차대한 과제를 마주하게 되었다.
전 부산시 국제관계대사·전 주요르단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