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앞에 내우외환이 소리 없이 닥치고 있다. 밖으로는 미국의 수입규제를 장기적으로 감내해야 하고, 안으로는 이제 반환한 지 20년을 넘긴 홍콩이 연일 뜨거운 시위로 점철되면서 아직 중국의 품으로 들어오지 않고 있다.
시장분석가로서만 보자면 홍콩의 시위는 중국의 주가 약세와 일정한 관련성이 있다.
2014년에는 우산혁명이라는 학생들의 시위가 있었는데, 당시는 홍콩 행정수반을 뽑는 선거에 친중국 인사만 출마하도록 하는 제한조치에 대한 저항이었다. 이번 시위는 범죄인 인도법에 대한 반대가 이슈가 되고 있다. 그런데 지금 중국 주가는 2018년 이후 장기 하락세이고 홍콩도 답보 시황이다. 2014년 시위 사태 이전에도 중국의 주가는 몇 년간 하락세였고 홍콩 증시도 그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러나 홍콩의 주변을 보면 같은 중화경제권이라도 대만이나 싱가포르는 대체로 미국이나 유럽의 주가 흐름과 유사한 경향을 보이는데, 홍콩은 하릴없이 중국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홍콩의 도시 유전자는 여전히 서구 지향성을 가지는 자유경제 유전자이다. 중국이 성장하고 홍콩에 도움을 주던 시절에는 그래도 견딜 만했으나, 본질이 자유로운 도시국가가 통제로 일관하는 공산국가의 영토로 편입되는 것은 아무리 일국양제의 특혜가 있다고 해도 그들이 홍콩의 미래가 밝다고 마냥 기대할 수가 없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 다시 근원적인 도시의 자유가 그리운 것인지도 모른다.
부산의 도시 유전자는 누가 뭐라 해도 개방과 활기이다. 그 뿌리는 지정학적으로 쌓인 외래문화와의 교류 역사가 설명하고 있지만, 육상과 해상으로 연결된 자유로운 도시의 지리적 풍모도 한몫한다. 또 이 같은 도시의 포용적 공간도량은 한국전쟁 이후 더욱 광폭의 교류 변화를 감당한 현대사가 촉진한 측면이 강하다.
그런데 나라가 발전을 거듭하고 시간이 갈수록 국가의 운영 질서는 중앙정부를 중심으로 일사불란한 시스템으로 관리된다. 시민의 총의를 경주한 선거에서 선출된 부산시장이 정작 손안에 든 집행 역량을 보면 시민의 눈에는 그저 지역의 행정관리자일 정도이다. 이미 직할시에서 동료 광역시가 여기저기에서 늘어나면서 예견된 일이긴 했지만, 정말 제2 도시이자 제1의 개항지 부산이라고? ‘천만의 말씀’일 뿐이다.
이탈리아의 도시 설립자 베네딕트는 도시의 기본 요소를 자유 청결 품격 상공인 대학 예술 주민이라고 설명한 바 있듯이, 부산이 글로벌 도시로서 지난 시절의 생명력을 되찾기 위해 정말 필요한 것은 적절한 도시 행동의 자유이다. 하지만 현실은 이제 덩치가 제법 커진 서울의 정보포털 사이트에서도 부산 언론사의 뉴스를 뒷방으로 치부하려고 한다.
앞으로를 예상해보자면 지역별로 시급한 문제가 중앙정부가 정책을 펴는 데 영향을 미치지 못할 수 있어 우려된다. 점점 소수 글로벌 기업의 경영 사정과 국가 지도부의 정치적 결정이나 상황 판단이 나라의 전체 진로를 좌우할 것이기 때문이다. 당장 눈앞에서 미국의 트럼프나 일본의 아베가 그런 행보로 저 큰 나라들을 마치 소 고삐 끌 듯이 이리저리 이끌고 있다. 어쩌면 일대일로의 청사진을 가진 시진핑의 눈앞에는 저 시민이 절규하는 홍콩도 그리 안중에 들어오지 않을 수도 있겠다.
점점 강한 나라를 중심으로 열린 세계가 아닌 닫힌 지역으로 변해가는 지금, 부산이 지키는 대한해협의 이용가치가 잘 보존되리라고 누구도 장담할 수 없게끔 하루가 멀다고 일이 벌어진다. 한일 간에도 마치 역사의 시계를 뒤로 돌리듯이 궁벽한 처신(out of the way)의 일본 정부가 ‘하늘을 쓰고 도리질’을 하고 있다.
플라톤은 국가는 인간의 필요에 의해 생겨났지만, 정의는 국가 없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국가가 그때그때 지목하는 합목적적인 정의의 큰 담론으로 국민의 온 힘을 결집해 가려는 동안 전래(inherited)의 자유로운 도시 유전자를 갈구하며 다시 살아나 보려는 먼 곳의 사정은 잘 들리지 않을 수 있다. 홍콩 시민의 아픔이 자유로 치유되어야 하는 현실을 부산 시민도 어쩌면 동병상련으로 지켜보는 것은 아닌지….
경기대 교수·글로벌경영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