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1769~1821)은 책벌레였다. 생전에 8000권이 넘는 책을 읽었다고 한다. 52세로 생을 마친 그가 6살 때부터 독서했다고 치면 1년에 190권, 이틀에 한 권꼴이다. 말이 그렇지 실로 엄청난 분량이다. 전쟁터에서도, 말잔등에 앉아서도 책을 놓지 않았다니 그럴 만하다. 불우한 청소년기를 보낸 그가 프랑스 황제의 자리에 오른 것은 독서의 힘이 컸을 터다. 스스로도 독서에서 얻은 통찰과 직관력이 자신을 만들었다고 이야기했다는 것이다.
구한말 문인이자 역사가, 열사였던 매천(梅泉) 황현(1855~1910)은 그보다 훨씬 더한 다독가였지 싶다. 20대에 책 1만 권을 읽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황현은 어려서부터 총명해 주위 사람을 놀라게 했다. 두어 살 무렵부터 숯 조각으로 담장에 무언가를 그렸는데, 마치 글씨 쓰는 연습을 하는 것 같았다. 서당에 입문해서도 한 번 보고 들은 것은 모두 기억할 만큼 뛰어났다.
조선 명재상 황희의 후손인 그는 28세 때 과거(科擧)에서 1등을 하고도 시골 출신이란 이유로 시험관에 의해 두 번째로 밀려났다. 34살 때 부모님의 권유로 다시 응시해 장원급제했으나, 갑신정변 뒤 정권의 부정부패에 환멸을 느껴 벼슬길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왔다. 이후 전남 구례의 작은 서재에 3000여 권의 책을 쌓아 놓고 시문(詩文) 짓기와 역사 연구, 경세학 공부, 후진 양성 등에 힘을 쏟았다. 그 속에서 ‘매천야록’과 ‘오하기문’ 등이 나왔고, 2000여 편의 시가 만들어졌다.
허세와 위선을 혐오했던 그는 반골의 지식인이었다. 그렇지만 세상의 흐름과 형편을 보고 읽는 능력이 남달랐고, 그의 꼬장꼬장한 직필은 추상과도 같았다.문란했던 과거제도를 비롯해 청일전쟁 당시의 이런저런 혼란상, 민씨 정권의 부패, 허구에 찬 일부 의병운동까지 그는 날카로운 붓끝을 거침 없이 날렸다는 평가다. 을사조약에 이은 국권 피탈의 비보를 듣고 자결의 길을 택한 것도 그의 강직한 성품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문화재청이 그제 황현 유품을 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가 남긴 벼루와 벼룻집, 필통, 연적 등 문방구류 19점과 안경, 책장 등 생활유물 35점이 포함됐다. 이들 자료는 그의 면모를 잘 보여주는 것으로 역사·학술적 가치가 높고, 동시대 선비문화와 생활상을 짚어볼 수 있는 문화재라고 설명했다. 심한 근시 탓에 20대부터 썼다는 황현의 안경, 그리고 벼루 등에서 구한말 격동기를 보낸 그의 치열했던 삶의 체취가 느껴진다.
구시영 논설위원 ksyo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