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힐링의 시대를 건너가고 있다. 나라 안팎의 큰 이슈에 가려져서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지만, 우리 사회에 힐링 열풍은 여전하다. 오히려 수면 아래에서 요란하지 않게, 삶의 특별한 측면이 아니라 삶과 하나 된 힐링이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정착되는 분위기이다. 이제 힐링은 사회 전반에 스며든 문화 현상이 되었다. 이처럼 우리 사회에 힐링이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은 질병에 대한 접근 방식이 공격적이지 않아야 한다는 사고방식과 관련된다. 항생제를 투여하고 환부를 도려내기보다는 오히려 인체의 자연치유력을 믿으며, 심지어는 질병도 삶의 일부로 용서하며 살자는 것이다. 또 힐링 열풍의 배후에는 서양의학의 한계에 대한 자각도 있다. 당뇨나 고혈압 또는 아토피와 같은 만성질환에 대해서는 병원에서도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누구나 안다. 서양의학은 질병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체의 면역력과 자연치유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반성도 있다.
경제성장과 과학의 발달로, 이전에는 의료가 주로 질병 치료(cure)에 주안점을 두었다면, 지금은 건강 유지를 위한 캐어(care)가 관심사다. 이 같은 변화는 발병의 원인과 질병의 형태가 바뀐 것과도 관련이 있다. 이전에는 열악한 환경위생 탓에 감염성 질환이 많았다면, 현대사회의 질병은 주로 잘못된 생활습관이나 고령화에 따른 만성질환 또는 퇴행성 질환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같은 만성질환에 대해서는 대증요법 중심인 서양의학으로 대처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는 사실이다. 서양의학은 어떤 질병에 대하여 그 원인을 살피기보다는 나타난 증상을 완화하는 데 치중해왔다. 만성질환은 나타난 증상만 고려해서는 다루기 어렵다. 만성질환을 치료하려면 환자를 총체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인간이 본래 가진 자연치유력을 회복하는 자연치유 힐링이 요청된다.
인도의 자연의학 아유르베다에 따르면, 힐링의 핵심은 ‘비움’이다. 생명은 떨림이며, 떨림은 빈 곳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몸도 그렇고 마음도 그렇다. 지나치게 많은 영양분을 섭취하여 몸 구석구석이 꽉 차게 되면 떨림도 없고 생명도 없다. 마음도 마찬가지다. 비울 때 건강하다. 몸을 비우는 것이 단식이라면, 마음의 불을 끄고 마음을 비우는 것이 명상이다. 아유르베다 의학에서는 풍화수지(風火水地)와 함께 공(空)을 인체의 구성 요소 중 하나로 인정한다. 몸에 수분이 부족하면 건강에 좋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빈 곳이 부족하면 몸과 마음에 문제가 생긴다. 동양화의 여백이 그런 것처럼, 몸과 마음에 여백이 있는 사람이 건강하고 아름답다. 요즘 우리 주변에서 단식이나 해독요법 또는 명상이 널리 성행하는 것은 우리 몸에 빈 곳을 만들자는 노력으로 봐도 무방하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우리 사회의 힐링 문화가 마냥 긍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는 힐링이 그 자체로 목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힐링은 말 그대로 단지 본래의 상태로 돌아가는 치유 과정이며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 주변에는 힐링을 위한 힐링이 많다. 심지어 힐링을 힐링해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여기에는 건강에 대한 오해가 있다. 건강은 우리의 몸과 마음에서 모든 질병이 사라진 상태가 아니다. 살아있는 몸을 유지하는 한, 어느 정도 통증을 안고 사는 것이 사람이다. 녹슬지 않는 쇠는 병든 쇠이며, 녹슨 쇠야말로 건강한 쇠라는 말이 있다. 녹은 쇠와 공존해야 한다. 배척과 제거의 대상이 아니다. 건강이 모든 질병의 부재로 오해될 때, 의료는 쉽게 공격적이게 된다. 자연스러운 치유 과정을 기다리기보다는 환부를 칼로 도려내고 항(抗) 또는 진(鎭) 자로 시작하는 약으로 대항하고 진압하게 된다. 서양의학의 한계는 지나친 수술과 항생제와 진통제로 자초한 결과로 봐도 무방하다. 힐링의 핵심은 기다림이다. 아유르베다 의사는 ‘시간(kala)’을 하나의 ‘약재’로 여기며, 모든 처방에서 빼지 않는다. 지금 우리는 힐링의 시대를 건너가고 있다. 어디로 가고 있는가? 웰빙에서 힐링으로 건너온 것처럼, 이제 우리는 힐링에서 웰다잉으로 건너갈 것이다. 이미 건너가고 있는 중이라 해도 무방하다.
선문대 대학원 통합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