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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도설] 헛헛한 입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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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두보(712~770)는 48세 무렵 당나라의 변방인 성도 완화계에서 초당을 짓고 살았다. 여전히 가난했지만, 오랜 방랑 끝에 맞은 2년 남짓한 짧은 정착이었다. 그에 앞서 두보는 46세가 되어서야 겨우 얻은 말단 벼슬을 황제에게 간언하다 잃어버리는가 하면, 어린 자식이 굶어 죽고 안록산의 난과 대기근을 만나는 등 지옥 같은 시련을 겪었다. 그래서일까. 당시 그가 쓴 ‘입추후제(立秋後題)’라는 시의 분위기는 세상 밖에 버려진 듯 처연하다. ‘해와 달이 서로 너그럽지 않아/어젯밤 계절이 바뀌었네/쓰르라미는 쉼 없이 울고/가을 제비는 이미 나그네가 되었구나’.

두보처럼 신산스러운 삶을 살았던 헤르만 헤세(1877~1962)의 입추 감회도 비슷하다. ‘여름은 늙고 지쳤다/무지막지한 두 손을 늘어뜨린 채/텅 빈 눈으로 경작지를 바라본다/이젠 끝날 것이다/여름은 자신의 불꽃을 흩뿌렸다/자신의 꽃들을 모두 태워버렸다’. 그의 ‘여름은 늙어버렸고’란 시에는 조국 독일이 일으킨 1, 2차 세계대전에 반대했다가 매국노라는 지탄과 함께 저서 판매·출판금지 처분까지 받았던 상처가 배어 있다.

벌써 입추다. 입추의 스산한 서정은 동서고금의 시공간을 윤회하는 것일까. 한일 갈등, 남북·북미대화 교착 등 2019년 한반도의 엄중한 현실이 선인들의 고단했던 삶을 호출한다. 대화 제의에 발사체 도발로 대응하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자신이 천명한 자유무역 원칙을 뒤집고 경제 보복을 감행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모두가 사태 악화의 장본인인 건 분명하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책임은 없지 않다. 북한의 발사체 도발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합의에 역행하듯이, F-35A 스텔스 전투기 등 남한의 전략무기 도입 또한 거기서 자유로울 수 없다. 2012년 대법원의 첫 강제징용 배상판결이 내려진 뒤 지금과 같은 한일 갈등이 예상되는데도 아무런 대책을 모색하지 않은 것도 문제다.

그런데도 진지한 성찰을 보기 어렵다. 일본 내 여행금지구역 지정 주장, 도쿄올림픽 보이콧 주장, ‘노 재팬’ 깃발·배너 설치 등등. 정치권과 지자체에서 감정적 일탈이 속출하고 있다. “아베 내각의 잘못이지 일본 국민의 잘못이 아니다.” 보다 못한 시민들이 자제를 촉구하고 나섰다. 이 여름, 문제 해결을 위해 비지땀을 흘리고서도 ‘헛헛한 입추’를 맞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두보와 헤세는 평생 고난 속에서 살았지만, 결코 엄혹한 현실을 회피하지 않았다. 우리와 다른 선인들의 입추 맞이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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