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3학년인 첫째가 여름 방학식날 성적표를 가져왔다. 30개쯤 되는 항목 중 악기 연주를 제외하고는 모두 ‘상(上)’. 그런데 갑자기 궁금해졌다. ‘이 녀석, 정말 교과 과정을 제대로 소화하긴 한걸까.’
며칠을 고민하다 인터넷에서 3학년 1학기 수학 문제 몇 개를 찾아 출력했다. 제대로 알고는 있는지 확인은 해봐야 할 것 같았다. 5학년이 되면 첫 ‘수포자’가 나온다던데, 이 아이도 혹시 나처럼 수포자가 되진 않을까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아니나 다를까. 틀린 문제가 쏟아졌다. 문제 몇 개로 어찌 전부를 판단하겠는가만 기본 개념만 알아도 풀 수 있는 난이도 ‘하’ 문제까지 틀린 걸 보니 화가 치솟는 동시에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확인 안 해 봤으면 어쩔 뻔 했나 싶어서.
그래도 초등 저학년까지는 뛰어 노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왔다. 이 같은 교육철학을 실현하는 유치원을 찾아 힘들게 두 아이를 밀어넣었다. 교육 담당 때는 혁신학교의 취지에 격하게 공감하기도 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아이가 학년을 거듭할수록 그 신념(?)이 마구 흔들린다. 초등학교에 시험이 없어지면서 자녀 실력이 궁금해진 엄마들이 사설 기관 경시대회에 몰린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내가 지금 딱 그러고 있다.
혁신학교 도입, 자사고 폐지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한편으론 사설기관 경시대회 홈페이지를 뒤지고, 국·영·수 학원을 알아보는 ‘이중 행동’을 보이는 밑바탕에는 대학 입시에 대한 불안감이 있다. 교육부, 교육청은 초중고가 입시기관이 아닌 창의력을 키우는 전인적 교육기관이 되어야 한다고 한다. 시험을 없애고 혁신학교를 확대하며, 자사고를 줄이고 고교 학점제를 도입하는 것도 다 이 같은 정책의 연장 선상에 있다.
그런데 문제는 대학 입시는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라는 점이다. 지난해 발표된 2022 대입 개편안을 봐도 정시비율 정도 달라졌을 뿐이다. 상황이 이러한데 초중고부터 일단 혁신하자고 하니 ‘한가한 소리 하고 있네’라는 반응이 나온다. 아무리 취지가 좋더라도 대상자를 설득하지 못하면 그 정책은 있으나 마나다. 속도조절에 실패하거나 앞뒤가 뒤바뀌어도 마찬가지다. 대학입시가 달라지지 않는다면 초중고 혁신은 말짱 도루묵이 될 것 같아 씁쓸하다.
기획탐사팀장 songya@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