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국제칼럼] 예술의 쓸모에 관한 의견 /조봉권

예술은 美의 범주 탈피해 眞善美 모두 포괄하는 것

박경리의 소설 ‘토지’처럼 대중 변화시킬 힘 지녀야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진(眞)·선(善)·미(美)라는 말은 아름답다. 그런데 이 근사한 범주를 생각하다 보면, 이런 생각이 곧잘 들곤 했다. 진은 진리와 관련된 영역이니 학문, 선은 착함과 연관돼 있으니 윤리와 도덕, 아름다움을 뜻하는 미는 예술에 대응되는 것으로 보면 어떨까 하는 것이었다. 그럴듯한 분석이 아닌가? 예술 현장을 취재하면서 거듭 궁리해본 결과, 이 분석은 완벽에 가까운 천만의 말씀이었다. 틀린 생각이었다는 뜻이다.

예술에 한정해서 이야기해보자. 취재기자로서 현장에서 본 예술은 미의 범주에 한정되는 게 아니었다. 예술 안에는 진·선·미가 모두 함께 들어가 있고, 들어가 있어야 한다. 차라리 예술은 사람 앞에 놓인, 사람이 만든 ‘진흙공’ 같아 보였다. 그 진흙공의 구성 성분은 대략 공감의 요소, 아름다움의 요소, 새로움의 요소이다.

다만, 이 진흙공과 관련해서는 유념할 점이 몇 개 있다. 진흙공마다(작품마다) 공감·아름다움·새로움 요소의 함량 비율이 다 다르다는 점이 첫째다. 어떤 작품은 공감의 요소가 매우 강하다 보니 새로움은 덜하고, 어떤 작품은 아주 새롭다 보니 잘 알아먹기 어려우며 공감하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이 진흙공은 쓰임새도 다양하다. 어떤 사람은 이 진흙공을 가지고 놀다가 삶의 거룩하고 거대한 이치와 가치를 깨우치는 데까지 상승해버린다. 어떤 경우 겨우 덧없이 소비하는 데 그치고 만다. 물론, 이렇게 소비되는 양태 또한 넓은 의미의 예술이 감당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심지어 반성이나 성찰과는 무관한 갈등과 상처의 원천으로 예술을 이용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는 가장 나쁜 경우라고 하겠다.

다시 진·선·미로 가본다. 예술은 미의 영역에 한정되는 어떤 것이 아니라, 진·선·미를 모두 포괄한다. 그 증거가 있다. 있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많다. 예술 작품을 향유한 수많은 인간이 ‘변화’해왔다는 점이다. 아름다움(美)만을 만나는 것으로 사람은 바뀌기 힘들다. 진·선·미 가운데 진(眞)이라는 항목은 ‘옳고 바른 것은 존재하며 우리는 그 옳고 바름을 인식할 수 있다’는 전제를 알려준다. 선(善)은 우리가 착하고 좋은 쪽으로 실천하면서 마침내 선한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음을 또한 전제로 한다.

그렇게 진·선·미가 한 몸으로 뒤섞이고 어우러진 것이 예술이고 예술작품이라는 주장인데, 이는 ‘예술을 향유하는 아주 높은 단계’에 관해 좀 더 깊이 생각하게 해주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예술을 향유하는 아주 높은, 거의 가장 높은 단계는 그것을 접한 사람이 더 좋게 변화하는 데 있다. 사람이 더 좋게 바뀌는 것이다. 예술을 줄곧 오래 접한 사람이 ‘아! 나는 좀 더 좋은 사람으로 바뀔 수 있겠구나’ ‘좀 더 나은 삶을 살고 싶다’는 사색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작품을 그저 소비하는 데 그친다면 사실 그 예술은 별로 필요 없는 것이다. 예술 대신 다른 걸 즐기면 된다.

이런 변화를 도와주고, 그런 바뀜을 가능하게 해주는 기능이 진·선·미 가운데 진과 선에 많이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진과 선은 근본적으로 자신을 (그리고 세상을) 돌아보는 데서 출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것을 예술이 가진 ‘거울’ 기능이라고 말하고 싶다. 예술을 사랑하면 가슴속에 자기를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거울을 하나 갖는 셈이다. 이것을 예술이 우리 사회에서 갖는 중요한 쓸모라고 생각한다.

창의성과 다양성이 꽃피게 하는 힘, 세상을 더 절실하게 인식하게 해주는 힘, 사람의 마음이 트이고 열리게(疏·트일 소)하여 서로 통(通·통할 통)하게 하는 소통의 힘 같은 예술의 덕목은 그런 거울 기능을 따라오는 것이다. 하물며 나는 돌아보지도 않고, 예술을 함부로 가벼이만 사용할 수 있겠는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연유는 작가 박경리(1926~2008) 선생과 ‘토지’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오는 15일은 ‘소설 토지의날’이다. 이날 강원도 원주시 토지길 박경리문학공원에서 기념행사도 열린다. 사연을 찾아보니, 박경리 선생의 대하소설 ‘토지’ 1부의 첫 장면이 1897년 음력 8월 15일 한가위 날이고 ‘토지’가 끝나는 날도 1945년 8월 15일이다. ‘토지’ 전체 (모두 5부 20권)가 26년 만에 완간된 날도 1994년 8월 15일이었다.

박경리 선생과 ‘토지’의 높은 가치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라면, 너무 먼 길을 돌아온 것이라고 나무랄 분이 계실 것이다. 하지만 예술작품 ‘토지’와 ‘소설 토지의날’을 앞두고 다시 찾아본 박경리 선생의 삶과 예술에 관한 자료를 곱씹으면서 나는 예술의 쓸모에 관한 근본적인 생각을 자꾸만 떠올리게 되었다. 그는 예술과 실천으로 자기 삶을 꽃피우고, 독자의 삶이 바뀌게 한 예술가이기 때문이다.

‘토지’를 앞에 놓고 예술의 쓸모를 생각하면서 나는 박경리 선생께 깊이 고마웠다.

편집부국장 겸 인문연구소장 bgjoe@kookje.co.kr


[국제신문 공식 페이스북] [국제신문 인스타그램]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많이 본 뉴스RSS

  1. 1하루 차이로…서면 비스타동원 전매 규제 피했다
  2. 2신공항 운명 25일 윤곽 나온다
  3. 3거제 이수도, 모노레일 등 갖춘 ‘관광 힐링섬’ 된다
  4. 4“상온 노출 백신 맞고 몸에 이상 있을라” 독감 무료접종 대상자도 돈 내고 맞는다
  5. 5이 와중에 캠핑장·호텔 예약 쇄도…추석 거리두기 강화될 듯
  6. 6동남권발전협의회, '부울경 메가시티' 추진 막올랐다
  7. 7부산대 양산캠퍼스 2개 사업 내년 국비 0
  8. 8설치할 땐 공공예술, 증개축 땐 고철 취급…작가들 분통
  9. 9월북? 우리군 정황 알고도 5시간 무대응 왜? 커지는 의문
  10. 10 '1골 2도움’ 손흥민 맹활약…토트넘, 유로파리그 PO 진출 성공
  1. 1야권 통합 선 그은 김종인 “안철수 정치 모른다” 혹평
  2. 2문 대통령, 스가 총리와 첫 통화 “양국 관계 방치 안돼”
  3. 3이스타 대량해고 논란 이상직, 민주당 탈당
  4. 4여당 ‘공정경제 3법’ 속도 내는데…국민의힘 엇갈린 목소리
  5. 5김두관 “광역전철 연결해 부울경 메가시티 완성하자”
  6. 6행안위 피한 부산시, 국토위 국감 날벼락
  7. 7문 대통령 ‘종전선언’ 다시 불 붙였지만…북미 호응이 관건
  8. 8이낙연 “후보 낼지 늦지 않게 결정” 부산 공천에 무게
  9. 9국방부 “연평도 실종자 피격 후 화장 … 北 강력 규탄”
  10. 10안철수, 야권 통합 놓고 국민의힘과 샅바 싸움
  1. 1‘푸드트럭 맛집’도 드라이브 스루…긴 대기줄·코로나 감염 걱정 ‘No’
  2. 2부모님 추석음식 대신 장보기…우리집은 ‘간편 홈스토랑’
  3. 3고등어·오징어 등 자원량 급감 땐 정부 직권으로 총허용어획량 설정
  4. 4BPA, 바르셀로나에 물류센터 추진 “남유럽 경쟁력 강화”
  5. 5정부 지원없는 지역상생발전기금…부산 5년새 40% 줄어 97억 불과
  6. 6트레이더스 자체브랜드 ‘티 스탠다드’ 론칭
  7. 7공동어시장 위판액 2500억 달성 유력
  8. 8연금 복권 720 제 21회
  9. 9부산시 R&D예산 5% 증액…소부장·친환경 선박 육성 방점
  10. 10금융·증시 동향
  1. 1난치병 환우에 새 생명을 <232> 의안 수술 외국인 A 씨
  2. 2합천 폐교에 캠핑장 구비한 독서당
  3. 3거제 이수도, 모노레일 등 갖춘 ‘관광 힐링섬’ 된다
  4. 4고성, 전국 첫 ‘청소년수당’ 내년 1월부터 지급
  5. 5청년…지금이야말로 <2> 부산에 ‘살고 싶다’
  6. 6부산대 양산캠퍼스 2개 사업 내년 국비 0
  7. 7삼국시대 축성 거창 ‘거열산성’, 국가사적지 제559호로 지정
  8. 8도시·농촌 기술 교환 등 청년 자립법 호응
  9. 9‘전태일 3법’ 입법청원 10만 명 동의
  10. 10오늘의 날씨- 2020년 9월 25일
  1. 1불펜 전환 서준원, 롯데 5강 경쟁 ‘필승카드’ 될까
  2. 253세 미우라, J리그 최고령 출전기록 경신
  3. 3김광현, MLB닷컴 선정 신인 올스타 ‘세컨드팀’
  4. 4프랑스오픈 27일 개막…나달 4연패 도전
  5. 5메날두(메시·호날두) 시대 저무나…UEFA 올해의 선수 최종후보 동반 제외
  6. 6토트넘 오리엔트전 취소에 더 꼬인 살인일정
  7. 7투수 성적만큼 안전도 중요…머리 보호패드 확산될까
  8. 8수아레스 AT마드리드행, 연봉은 204억 원 반토막
  9. 9스포원 이혜진, 양양 전국사이클 3관왕
  10. 1025일도 ‘슈퍼 코리안데이’…류현진·김광현 동시 출격
우리은행
21대 국회 대해부
PK 당선인의 ‘인생 입법’- 김두관·서병수 진심 인터뷰
21대 국회 대해부
PK 당선인의 ‘인생 입법’- 울산 경남 당선인 역점 법안
강동진 칼럼 [전체보기]
일몰제가 준 생명 같은 교훈
2020년 지금 우리에겐 취사선택권이 없다
기고 [전체보기]
검경, 상호협력·견제와 균형의 길로 /정의롬
인적자원개발, 한국판 뉴딜의 열쇠 /최희숙
기자수첩 [전체보기]
뭐 먹지? 고민될 땐 ‘탑쓰리’ /박호걸
전재수·최인호, 가덕신공항 정치적 이용 말라
김용석 칼럼 [전체보기]
닫힌 사회와 그 친구들
삼각 교수대와 황금 요강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융합 우리를 아름답게 하리라
농악 ‘함께’와 ‘신명’의 미학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주거빈곤 아동을 바라보는 자세 /하송이
구멍 뚫린 정책, 고통은 국민의 몫 /정유선
도청도설 [전체보기]
대답 없는 장관
고향 기부
문태준 칼럼 [전체보기]
가을의 시간을 맞으며
이주의 시대와 문학
박상현의 끼니 [전체보기]
며느리는 돌아오지 않는다
자갈치시장 ‘백화양곱창’과 ‘불산’
사설 [전체보기]
산재 사망사고 솜방망이 구형, 대기업 봐주기 아닌가
북 연평도 해상 실종자에 총격 후 불까지 태웠다니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정치권으로 확산되는 기본소득 포퓰리즘
청년 기본소득이 ‘가짜 기본소득’인 이유
이수훈 칼럼 [전체보기]
남중국해 갈등과 우리의 대응
기후위기 그리고 그린 뉴딜
이은화의 미술여행 [전체보기]
인내와 고통으로 탄생한 명작
명작이 된 습작
이홍 칼럼 [전체보기]
코로나 아이러니
외국인 근로자 문제, 어떻게 해야 하나
장재건 칼럼 [전체보기]
당정의 균형발전 엇박자
이낙연·김종인에 주어진 반 년
조영석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명반과 곡명에 대한 편견
더위에 지친 당신께 이 곡을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와인으로 느끼는 자부심
가격이 중요하나요?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인상의 소나무 그림
손재형의 ‘승설암도’
  • 2020국제환경에너지산업전
  • 행복한 가족그림 공모전
  • 국제 어린이 경제 아카데미
  • 2020 어린이 극지해양 아카데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