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마도(쓰시마) 남쪽에 있는 이즈하라항은 6·25전쟁 직후부터 1960년대 말까지 밀수의 전초기지였다. 이즈하라항에서 출발한 밀수선이 남해안 일대 해안이나 무인도에 물품을 내리거나 바다에 부표처럼 던져놓으면 부산항에서 밀수꾼들이 나가 이를 건져 국제시장 등지에 유통시켰다. 일제 밥솥과 필기구, 간장이 이런 식으로 한반도에 유입됐다. 수법이 대범하고 규모가 방대해 이들에게는 이즈하라특공대라는 별명이 붙었다. 당시 부산세관의 주 업무가 밀수 단속이었고 단속반원들의 무용담이 지금도 중앙동 주변에 전해진다.
임진왜란 직전 대마도의 제20대 도주였던 소 요시토시는 엄청난 고민에 휩싸여 있었다.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향해 일본에 복속한다는 뜻을 전할 사절단을 파견하라고 요구하는데 그 메시지의 전달책이 된 것이다. 그는 일본 지방 영주인 다이묘였지만 예조참의란 벼슬을 가진 조선의 신하이기도 했다. 요시토시는 고심 끝에 말을 바꾼다. 복속 사절이 아닌 통신사를 보내달라고 어감을 순화시킨 것이다. 조선과 일본 사이가 틀어지면 피해를 보는 쪽은 양국의 중개무역으로 먹고사는 대마도뿐이라는 현실 감각이 그런 꾀를 부리게 한 것이다. 이 요청에 따라 파견된 통신사의 수장이 전쟁 가능성을 엇갈리게 보고한 황윤길과 김성일이다.
한일 경제전쟁의 불똥이 대마도에 튀었다. 한국인 관광객 수가 급감한 것이다. 부산과 대마도를 오가는 페리가 텅 비고 아예 운항을 중단한 선사도 있다. 숙박시설이나 렌터카 업체 중에는 휴업에 들어간 곳도 많다. 이달 초 이즈하라항 축제에 조선통신사 재현 행렬이 규모를 줄여 참가하긴 했으나 통신사 재현선의 입항은 무산됐다. 8년 전 후쿠시마 원전 사고 때 대마도 관광객이 줄자 시장이 직접 한국을 방문해 관광 재개를 요청한 일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럴 분위기도 아니어서 현지인들의 시름은 깊어지고 있다.
대마도는 일본 본토로부터 82㎞, 부산에서는 49.5㎞ 거리다. 날씨가 좋으면 부산에서 대마도가 보이고 대마도에선 광안리 불꽃축제가 보인다. 하멜표류기에는 대마도가 원래 조선 땅이었다는 조선인들의 말이 적혀 있고, 동래부지에는 부산 송(宋)씨가 건너가 대마도주 소(宗)씨가 됐다는 기록도 있다. 조선통신사의 첫 기항지로 한일 선린의 상징이었던 대마도가 이제는 갈등의 최전선처럼 됐다.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하는 양국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끼인 대마도의 운명이 다시 한번 흔들리고 있다.
강필희 논설위원 flut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