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기에 폭탄을 싣고 적함에 충돌하는 ‘가미카제(神風)’ 공격을 제안한 이는 일본 해군 사령관인 오니시 타키지로다. 그는 마리아나 해전에서 미국 함대에 패하자 1944년 10월 필리핀을 겨냥한 자폭공격 명령을 내렸다. 13세기 원나라의 일본 원정을 막아준 태풍과 같은 신의 가호를 기대하며 감행한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자폭특공대는 공군인 가미카제에 머물지 않았다. 어뢰를 몰고 적함에 부딪히는 ‘기이텐(回天)’, 미군의 일본 상륙 저지를 위한 자폭 잠수부대인 ‘후쿠류(伏龍)’도 있었다. 하지만 무모한 공격이었던 만큼 일본의 패망을 앞당기는 요인이 됐다. 그에 대해 깊이 반성한 오니시는 패전 후 자폭공격을 사죄하고 세계평화를 바라는 유서를 남기고 할복 자살했다.
그런 자폭공격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찬양했다. 일간 뉴욕포스트에 따르면 트럼프는 지난 9일 자신의 재선 모금행사에서 “가미카제 조종사들이 기름탱크를 반만 채운 비행기에 올라 조국에 대한 사랑으로 날아가는 것을 상상해보라”고 말했다. 그는 “일본과의 우정, 특히 아베 총리의 부친에 매료됐다”고도 했다. 아베 신조 총리의 아버지인 아베 신타로 전 외상은 고교 졸업 후 가미카제 대원이 되기 위해 해군 비행학교에 자원 입대했으나 종전으로 작전에 참가하지는 못했다. 트럼프의 발언에 대해 미국 내에선 “자신의 조국을 공격한 가미카제 특공대를 미화하다니 믿을 수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고 한다. 당연한 반응이 아닐 수 없다.
트럼프의 가미카제 찬양은 자신의 정치 행태와 닮았다. 공통점은 야만성이다. 백인 중심의 인종 차별주의가 특히 그렇다. 이 또한 가미카제처럼 결말은 비극이다. 올 들어 미국에서 4명 이상 총에 맞아 죽거나 다친 사건이 발생한 도시가 253곳인데, 이중 상당수가 인종 차별주의와 관련이 있다. 지난 3일 텍사스주 엘패소의 월마트 매장에서 총을 난사해 40여 명을 사상한 20대 백인 남성은 “이민자가 원주민의 일자리를 뺏고 있다”고 범행 사유를 밝히기도 했다. 그런데도 트럼프는 생존자가 입원해 있는 병원을 방문해 기념촬영을 하며 ‘엄지척’ 포즈를 취해 비난을 자초했다.
일본 자민당의 원로인 고가 마코토 전 간사장은 지난 12일 도쿄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아베 총리가 독주하는 지금의 일본 정치를 “태평양 전쟁 말기와 같은 정치의 빈곤”이라고 했다. 이 지적은 트럼프에게도 적용된다. 두 지도자의 정치 빈곤이 자국은 물론 세계를 고달프게 만들고 있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