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술자리는 주로 고단함을 성토하는 대회장이다. 직장(職場)은 일을 하는 곳이니 당연히 힘들다면 일이 많아서 힘들어야 할 것 같은데, 정작 ‘씹히는’ 대상은 따로 있다. 직장 상사다. 부장, 팀장, 사수, 선배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는 이들은, 한 취업포털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직장인 퇴직 유발자 1위에 꼽힌다.
오죽하면 무두절(無頭節)이라는 신조어까지 나왔을까. 상사가 없는 날은 단군이 나라를 세우고 민족이 일제로부터 해방된 날만큼이나 경사스럽다는 뜻이다.
연간 노동시간이 OECD 2위에 빛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집에 있는 시간보다 직장에 있는 시간이 더 많다. 그러니까, 깨어 있는 시간의 절반 이상을 괴로운 직장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사랑하는 가족보다 싫어하는 상사를 보는 시간이 더 길다는 뜻이다. 그러니 직장 상사 문제만 해결되면 삶의 질은 대폭 개선될 것이 분명하다.
정부가 바뀌고 노동조건 개선이 주요한 사회의 화두로 떠오르면서 직장 내 갑질, 괴롭힘도 해결해야 할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이에 2017년 11월 시민사회에서 먼저 ‘직장갑질119’를 만들었다. 직장갑질119는 근로자들의 직장 내 괴롭힘 문제를 변호사, 노무사 등 전문가가 카톡, 이메일 등을 통해 상시 무료로 상담해주는 창구로, 현재까지도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카카오톡에서 ‘직장갑질119’로 오픈채팅방을 검색하면 된다. 현재는 ‘직장갑질119’란 이름이 많이 알려지면서 여러 오픈채팅방이 검색되는데, 맨 아래쪽의 참여자가 1400명이 넘는 ‘직장갑질119’ 오픈채팅방(스태프 오진호)에 들어가서 자유롭게 문의하면 된다.
최근에는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란 통칭으로 근로기준법, 산재보상법, 산업안전보건법도 개정, 시행됐다. 주요 내용은 ▷괴롭힘을 당한 근로자가 사용자(사장)에게 신고하면 사용자는 근무장소의 변경, 유급휴가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하고(근로기준법 제76조의 3) ▷만약 신고를 이유로 해당 근로자에게 불이익을 주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엄히 처벌한다(동 법 제109조). 또 ▷직장 내 괴롭힘 때문에 정신질환이나 뇌경색 등 과로성 질환에 걸리면 산업재해로 인정, 치료비와 치료에 필요한 기간 중 급여까지 지급하고(산재보상법 제37조) ▷상사만이 아니라 고객으로부터 폭언 등 갑질이 있는 경우에도 사업주는 업무의 일시 중단 등 조치를 취해야 하고(산업안전보건법 제26조의 2), 조치를 요구했다는 이유로 근로자에게 불이익을 주면 역시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한다(산업안전보건법 제68조).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는 당연히 형사처벌 되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국가의 형벌권은 수사기관의 자의에 의해 남용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어떤 행위의 경우에 처벌된다는 것인지가 법률에 명확히 정의되어 있어야 한다(죄형법정주의). 그런데 ‘괴롭힘’이라는 것은 너무나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이어서 직접 처벌규정을 두기 곤란한 면이 있다. 예를 들어 용모가 단정하지 못하다고 지적한다거나, 심지어 업무를 지나치게 많이 부여하는 일까지도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괴롭힘’이 될 여지가 있다. 관련한 고소 고발이 엄청나게 늘어남은 물론 수사기관의 주관적 평가에 따라 엄청난 사람들이 기소되어 전과자가 될 위험도 있다. 괴롭힘 자체를 직접 처벌하는 규정을 두기 어려운 이유다.
괴롭힘 자체를 처벌하지는 못하더라도 이번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은 괴롭히는 행위를 신고하는 것을 법률상 권리로 보장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사업주가 신고를 받고도 법대로 조사, 조치를 하지 않으면 노동부의 시정조치 대상이 될 수 있고, 신고를 이유로 해당 근로자를 전보시키는 등 불이익 조치를 취하면 엄히 형사처벌 하는 것은 모두 괴롭힘 피해자의 자유로운 신고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들이다. 나아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로 일어나는 과로성 질병을 산업재해로 인정함으로써, 직장내 괴롭힘으로 인한 피해를 근로자 개인의 문제가 아닌 업무와 관련된 문제로 파악하여 사회보험으로써 피해를 보상한다는 부분도 주요한 변화다.
변호사·법무법인 여는 금속노조법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