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부산메디클럽

[인문학 칼럼] 캠핑클럽, 다시 ‘Blue Rain’ /박형준

완전체 핑클 예능 복귀, 말 못한 과거 속내 고백 상처 치유 과정 그려내

환란 뒤 무너진 공동체, 신뢰 회복의 숙제 던져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8-14 19:13:18
  •  |  본지 27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핑클이 돌아왔다. 무더운 여름 밤, 가족과 둘러 앉아 새 예능프로그램 ‘캠핑클럽’(JTBC)을 본다. 1세대 여성아이돌 그룹이라 할 수 있는 ‘핑클’의 이효리, 이진, 옥주현, 성유리 씨가 완전체가 되어 출연하는 것만으로도 이슈가 될 법하지만, 나로서는 핑클이 데뷔한 지 벌써 20년이 지났다는 사실이 더 놀랍다.

1990년대는 대중문화의 격변기라 할 수 있다. 동구권의 사회주의 국가체제가 몰락한 이후 거대 사회담론이 퇴조하고 개인의 가치관과 스타일이 중시되는 소비문화가 확산되었다. 세기말의 묵시록적 풍토가 청년들의 구체적인 삶까지 스며들진 않았지만, 1997년 국가부도 사태를 겪으며 미래의 불확실성을 체감하게 되었다.

핑클은 이 시기에 등장했다. IMF 관리체계가 본격화된 1998년 5월에 1집 앨범 ‘Fine Killing Liberty: Blue Rain’을 발매한 것. 우연의 일치이긴 하지만, 당시 이삼십 대를 보낸 이들에게는 기억할 만한 문화적 사건이다. 대학 진학을 하든, 취업 전선에 나서든, 혹은 그 어떤 방식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든, 90년대를 통과해온 청년이라면 국가의 막대한 빚을 변제해야 하는 채무 환경에서 사회 초년생의 삶을 개시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으나, IMF사태 이후 가속화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너무나 가혹한 경제시스템이었다. 토마스 홉스가 언급한 ‘만인의 만인을 위한 투쟁’, 혹은 속류 다윈주의자들이 잘못 베껴 쓴 ‘인간 진화의 적자생존 논리’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주지하다시피, 자본주의는 자유경쟁의 효과를 인간 본성의 발현으로 삼는다. 인간의 야망과 이기심은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법칙이자 사회경제 운용의 원칙으로 수용되고 전파되었다.

노동자의 비정규화와 구조조정이 ‘외환위기 극복’이라는 국가적 과업으로 실행되었으며, 기업은 시장 경제의 낙오자를 퇴출시킬 수 있는 대의명분과 법률적 장치를 갖추게 되었다. 그렇게 ‘경쟁’과 ‘도태’의 구조는 일상화되었다. 누군가를 제치거나 밟고 일어서지 않으면 생존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는 적대적 커뮤니티가 형성되었고, 타인을 배려하는 ‘인간적 가치’란 값싼 감상주의로 치부되었다. 인간과 인간의 목숨을 건 생존 투쟁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일까.
14년 만에 재회한 핑클의 캠핑클럽에서 첫 앨범 타이틀곡 ‘Blue Rain(블루 레인)’이 흘러나온다. 20여 년 만에 듣는 노래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약간의 비약이 허락된다면, 핑클의 ‘Blue Rain’은 IMF사태 이전의 포용적 공동체를 회복하지 못할 것이라는 현대인의 근원적 상실감을 표상하는 문화적 징후처럼 인식되기도 한다. 국가·부모의 빚을 대물림한 세기말 청년들의 각박한 마음을 위로해줄 ‘그대(human)’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의 음악이 동시대의 우울한 풍경을 예민하게 감지한 예술적 성취라거나, 아름다운 별리(別離)의 노랫말을 문학적으로 극대화했다는 상찬을 늘어놓고자 하는 게 아니다. 한 아이의 아빠가 된 X세대 아저씨의 낭만적 회고담 역시 아니다. 핑클의 ‘캠핑클럽’은 지난 시절을 풍미한 서브컬처의 복고물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가꾸어가야 할 공동체 구성의 근본 과제를 생각하게 한다.

핑클은 SES와 더불어,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거의 첫 자리에 놓이는 여성아이돌 그룹이다. 4명의 멤버는 높은 대중적 인기를 구가하며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이십 대 가수로는 감당하기 힘든 스케줄과 인간 관계 그리고 내부 경쟁으로 인해 심적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캠핑클럽’이 시청자의 주목을 끄는 이유는, 다시 식구(食口)가 된 네 사람이 과거에는 말하지 못했던 속내를 드러내며, 그 상처를 조금씩 치유해 가는 여정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핑클의 캠핑장은 단순한 휴양지가 아니라 서로의 오해를 지워가는 대화의 마당이 된다. 근사하게 튜닝한 캠핑카나 일상 바깥의 여행지보다 더욱 아름다운 것은, 함께 밥을 먹고 잠을 자며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 애쓰는 마음이자, 서로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고자 하는 용기이다.

인간 본성은 이기적일 수 있다. 그러나 이기심뿐 아니라 이타심도 인간 덕목이다. ‘좌파 다윈주의’의 저자 피터 싱어가 ‘이기적 유전자’(리처드 도킨스)를 인용하며 말했던 것과 같이, 인간의 이기심이 성찰되고 관리될 수 있다면 우리 사회의 적대성은 변화될 수 있다. 나도 ‘핑클’도 불혹의 나이가 되었다. 한국 사회가 20년 전보다 나아졌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를 감미로운 음악으로 위로해 주던 ‘요정’ 핑클은 이전보다 더 따뜻한 ‘어른’이 되어 새 감동을 전해주고 있다. 그것은 바로, IMF사태 이후 우리가 잃어버린 마음, 인간에 대한 애정과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다.

부산외대 한국어문화학부 교수


[국제신문 공식 페이스북] [국제신문 인스타그램]

 많이 본 뉴스RSS

  1. 1호두까기 인형이 만드는 8월의 크리스마스
  2. 2고리원전 인근 드론비행 잇단 적발
  3. 311개국 코미디 고수들 출동…열흘간 쉴 새 없이 웃음폭탄 투척
  4. 4[메디칼럼] 과거 향수에 갇혀 늙어버린 나라 /김부경
  5. 5부전마산복선철 배차간격 확 줄여야
  6. 6진주, 빅데이터·AI기반 교통안전도시 된다
  7. 7하반기 금융권 공채…은행만 2000명 뽑는다
  8. 8우리은행, 추석 앞두고 중소기업에 15조 지원
  9. 9부산대 정외과 동문도 ‘위안부 동원 부정’ 교수 규탄
  10. 10지리산 능선…가을 알리는 야생화 만개
  1. 1부산의료원장 A씨 "조국 딸 혼자가 아닌 ‘다수 제자’들을 위한 장학금"
  2. 2청문회 앞둔 조국...웅동학원 관련 의혹이 제기되다
  3. 3조국 딸 의혹에 “내일이라도 청문회 열어달라” 청문회 일정은?
  4. 4점점 커지는 '조국 의혹'…野 '집중포화' 돌파할까
  5. 5조국 가족 운영하는 '웅동학원'…청문회 앞두고 재조명
  6. 6한일 외교장관, 21일 베이징서 회담…갈등해법 모색 주목
  7. 7위장 이혼·위장 매매 의혹 조국의 전 제수, 호소문 전달해... "아이가 상처받지 않게 해주세요"
  8. 8한국당, 오늘 조국 일가 "위장매매·소송사기 혐의" 고발
  9. 9최인호 "내년 수도권 인구 비수도권 추월…균형 발전 필요"
  10. 10조국 "인사청문회 내일이라도 열어달라…의혹 설명할 것"
  1. 1하반기 금융권 공채…은행만 2000명 뽑는다
  2. 2우리은행, 추석 앞두고 중소기업에 15조 지원
  3. 3오시리아단지 ‘완판’ 임박…잔여부지 투자자 속속 등장
  4. 4돈세탁 의심 금융거래, 지난해 100만 건 육박
  5. 5IMO(국제해사기구) 규제 앞둔 부산항, 대기질관리구역도 지정…선사 비상
  6. 6반도체 흔들리자…상반기 상장사 순익 43% 급감
  7. 7‘홍콩 악재’ 투자자 불안 커지는데 금감원 “지수 연계 ELS(파생결합증권) 손실 희박”
  8. 8웅동 배후단지 입주할 신규업체 내달말 모집
  9. 9갤노트10 홍보 트레일러 전국 누빈다
  10. 10취미용 드론 성능 천차만별
  1. 1조국 딸, 의전원 포기 않고 용이 되려 했나…두 번의 유급과 장학 혜택의 모순
  2. 2조국 딸 사진 명예훼손 처벌 가능…문제의 본질은 어디로
  3. 3초오 달여 먹고 또 사망 사고…“사약 재료로 사용된 독한 약초”
  4. 470대 몰던 승용차 인도 돌진해 30대 임산부 덮쳐
  5. 5‘우 순경 사건’ 우범곤 순경 총기난사… 주민 62명 사망·33명 중경상
  6. 6주택에 침입해 여성 속옷 훔친 40대 구속…모두 3차례 걸쳐 범행
  7. 7금난새, 서울예고 교장 사임 의사 전달…과거 ‘교장이 출근하지 않는다’ 감사
  8. 8수원 아파트 균열 발생… 1991년 지어진 건물, 8~9개 층에 5cm ‘쩍’
  9. 9양산지역 특성화고 설립 추진 잰 걸음
  10. 10'한강시신 사건' 장기화할 뻔…경찰 대응 논란
  1. 1코미어 꺾은 미오치치, 1년 1개월만에 헤비급 타이틀 탈환
  2. 2퀴라소 야구 네덜란드 유럽야구선수권 우승 안기기도
  3. 3 한국, 퀴라소에 4-0 완승… “다음은 일본전!”
  4. 4램파드 첫승 또 실패... 첼시vs레스터 1-1 무승부
  5. 5추신수, 3년 연속 20홈런…미네소타전 동점 홈런 쾅
  6. 6추신수 3년 연속 20홈런…최지만 끝내기 안타
  7. 7 친정팀 만날 다익손, 롯데 구원의 손 될까
  8. 8권순우 US오픈 테니스 예선 3번 시드
  9. 9EPL 최고 왼쪽 풀백 애슐리 콜, 축구화 벗고 지도자로 2막 연다
  10. 10‘30인 생존게임’ 한국선수 중 임성재만 웃었다
지방분권으로 도시 살린다
대학이 가져온 ‘부’- 독일 하이델베르크
지방분권으로 도시 살린다
친환경에서 캔 ‘노다지’- 독일 프라이부르크
강동진 칼럼 [전체보기]
이기대·청사포가 눈앞서 사라진다면
2030엑스포 개최에 관한 간절한 소망
기고 [전체보기]
부산포해전을 부산대첩으로 격상하자 /서정의
‘문화도시 부산’에 대한 소고 /김배경
기자수첩 [전체보기]
극한직업의 수상구조대 /임동우
옛 해운대역 도시재생 롤모델로 /이승륜
김용석 칼럼 [전체보기]
달에는 토끼가, 지구에는 청룡이 산다
기생충의 세상, 그 우화의 이면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전통 가곡인가, 한국 가곡인가
음악과 통일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신라젠 쇼크 줄여야 바이오가 산다 /이석주
“한가한 소리 하고 있네” /하송이
도청도설 [전체보기]
색깔 혁명
그린란드 매입설
문태준 칼럼 [전체보기]
조선시대 ‘북캉스’ 풍경
데이비드 호크니의 첫 생각
박상현의 끼니 [전체보기]
경상도의 여름음식 찜국
품종을 따져라, 밥맛이 달라진다
사설 [전체보기]
조국 후보자 잇단 의혹 청문회서 명명백백 밝혀야
한일 외교장관 내일 회담서 갈등 해법 머리 맞대길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중앙정부와 지자체 복지 역할 재정립
‘건강보험 하나로’와 문재인 케어
이은화의 미술여행 [전체보기]
예쁘고 행복한 그림의 화가
바람둥이 화가의 영원한 사랑
이홍 칼럼 [전체보기]
일본은 실수했다
창의성, 한국기업의 다음 생존전략
장재건 칼럼 [전체보기]
조국의 ‘서해맹산(誓海盟山)’
두 정치인의 죽음
제언 [전체보기]
광안대교, 해양안전 감시시스템 구축을 /이윤석
조영석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더위 식혀주는 음악들
7월의 음악예찬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닭백숙과 와인…더위를 이기는 조합
‘디오픈’ 우승컵은 와인 주전자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김윤겸의 실경산수 ‘태종대’
김정희를 흠모한 이한복
  • 2019아시아 트레일즈 컨퍼런스
  • 사하관관사진공모전
  • 제5회 극지 해양 도서 독후감 공모전
  • 부산관광영상전국공모전
  • 유콘서트
  • 어린이경제아카데미
  • 어린이극지해양아카데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