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문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해본다. 공직생활 중 상당 기간 문화행정을 맡아온 나도 이 질문에는 새삼 고민된다. 정의야 어쨌든 문화가 한 도시, 한 국가의 위상을 좌우할 만큼 큰 힘을 가졌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더구나 문화의 세기라고 하는 지금, 문화의 힘은 나날이 강력해지고 있다.
‘장기 비전 없는 부산시 문화행정 이대로는 안 된다!’ ‘부산시 문화수장 자주 바뀐다!’ 부산문화와 관련해 자주 듣는 말이다. 문화행정에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중장기 계획 없이 근시안적으로 펼쳐지는 문화정책에 대한 문제 제기일 것이다.
부산에는 세계적 영화제로 성장한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를 대표하는 ‘부산비엔날레’, ‘부산국제연극제’ 등 장르별로 자랑할 만한 성과도 적지 않다. 그러나 계량화된 지표는 부산문화의 현주소를 아프게 보여준다. 인구 100만 명당 문화기반시설 수는 전국 최하위, 영화를 제외하고는 20%도 넘지 못하는 낮은 문화예술 관람률, 문화정책에 대한 낮은 만족도. 그간 부산시 문화행정이 시민들 눈높이에 맞추지 못해 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최근 부산시가 발표한 ‘부산문화 2030비전과 전략’은 이런 현실을 인정하며 만들어낸 중·장기 계획이다. 이 계획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시민들이 현실적으로 원하는 문화적 요구를 담아내자는 것이었다. 또 하나, 지금의 부산만 볼 것이 아니라 시대와 세계 변화를 수용해 10년 뒤에도 근본 틀을 흔들지 않고 이어갈 수 있는 중장기 비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부산시의 일방적 정책수립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부산시는 최초로 민간이 주도해 내용을 채우고 부산시가 실행 가능여부를 검토하는 상향식 정책수립 방식을 도입했다. 총 40여 차례 걸쳐 일반 시민과 현장 전문가 등 무려 3300여 명이 머리를 맞대 비전을 완성했다. 정책 수립과정 자체가 문화 민주주의 실현의 모범 사례로 기록될 만하다. 부산시는 매년 이 비전이 어느 단계까지 진행되고 있는지 시민들에게 이행상황을 공표해가며 또박또박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부산문화 2030 비전과 전략에는 무엇이 담겼을까? 오늘날 문화에 대한 시민의 욕구는 본인 스스로 시간과 비용을 할애하고 소비하는 수준을 이미 한참 넘어섰다. 정부나 지자체로 하여금 문화를 만들어서 ‘내’가 있는 곳까지 공급하기를 요구하는데까지 이르렀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넘어선 나라에서 당연한 요구일 것이다.
부산문화 2030 비전과 전략은 이러한 요구를 전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예를 들면 동네 어디나 있는 작은 공원들을 문화와 소통의 공간으로 만드는 정담정 조성사업이다. 2030년까지 적어도 100곳이 만들어진다. 동네서점 20곳을 선정해 복합생활문화공간으로 만들고 전국 최초 문화정보 플랫폼 E-문화파크도 구축한다. 어르신들은 문화에서 소외받는 대표적 계층이다. 동네 노인정 200곳을 생활문화공간으로 바꿔나갈 계획이다. 누구나, 언제나, 어디서나 문화를 즐기는 도시, 그것이 이 비전의 지향점이다.
전문 공연시설 확충도 게을리 할 수 없다. 부산의 문화적 위상을 한 단계 높여줄 오페라하우스는 2022년 북항 문화지구에 들어선다. 부산시민공원에는 2000석 규모의 부산국제아트센터가 우뚝 서 공연예술 기반이 획기적으로 확충될 것이다. 부산문화 2030비전과 전략은 이러한 내용들을 비롯해 10대 전략, 27개 과제, 89개 세부과제를 조목조목 담고 있다.
이 비전을 성공적으로 실행해 나가는 데 가장 중요한 주체는 바로 ‘문화시민’이다. 우선 이번 주말부터 가까운 공연장이나 미술관, 박물관, 생활문화센터에 나가보자. 지역 문화예술인들을 만나 어우러지고, 그들의 작품들을 감상해보자. 시민 한 명 한 명의 발걸음이 부산 문화의 근육을 키우고 피를 돌게 할 것이다. 또 하나의 핵심주체인 지역 문화예술인들과 부산 시간의 소통도 중요하다. 비전을 실행해 나가는 과정에서 부산시는 문화예술인들의 목소리를 듣고, 듣고, 또 들으려 한다.
이제 부산 문화시정의 새로운 10년은 출발점에 섰다. 10년 뒤, 백범 김구 선생의 말씀처럼 ‘한없이 높은 문화의 힘’을 가진 부산이 되어 있기를 기대해본다.
부산시 문화체육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