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 노트(Death note)라는 일본 만화가 있다. 2003년부터 ‘소년 주간 점프’에 연재되면서 돌풍을 일으켰다. 2006년 단행본 12권으로 완결된 이 만화는 3000만 부 넘게 팔렸다고 한다. 애니메이션 영화 드라마 뮤지컬 소설 등으로 만들어졌다. 할리우드에 판권이 팔릴 정도로 국제적으로도 인기였다. 한국에서는 2005년, 2006년 국내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는 등 성인 취향의 일본 만화로는 보기 드물게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다.
인기를 끈 요인은 사회적인 이슈가 된 내용이다. 데스 노트는 이름을 적으면 그 사람은 죽는 사신의 공책. 만화는 그런 공책을 전국 수석인 꽃미남의 고교생 주인공이 우연히 주워서 쓰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특히 극악무도한 범죄자를 죽음으로 처단한다는 내용은 사회적 논쟁이 되기도 했다. 주인공은 노트의 힘으로 범죄자가 없는 이상적인 신세계를 만들기 위해 많은 사람을 살해하는 킬러가 되기 때문이다. 이 만화는 버블이 꺼진 지 10년이 넘게 지난 2000년대의 냉소적이면서 염세적인 일본 청년상을 그대로 반영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도 만화가 지금도 회자하는 것은 사람 마음속 깊이 깔린 권선징악(勸善懲惡)에 대한 갈망이 작용한 듯하다. 제도적으로 해결 못 하는 사회 부조리를 개인이 대신 처단하는 모습에 열광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 정치권에도 데스 노트라는 게 있다. 정의당이 반대 입장을 밝힌 공직자 후보는 낙마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고위 공직자 인사 논란 때마다 화제가 되는 말이다. 실제 안경환 전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시작으로 조대엽(고용노동부) 박성진(중소기업부) 최정호(국토부) 조동호(과기정통부) 전 장관 후보자 등은 정의당이 반대 입장을 표명하면서 낙마했다. 청문회를 거치지 않는 대통령 임명직 중에는 박기영 과학기술혁신본부장, 김기식 금융감독원장 등이 있다.
이 때문에 이제 고위 공직자 인선 때 정의당의 데스 노트에 이름이 올랐냐, 안 올랐느냐가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는다. 여기에도 법과 제도의 맹점을 잘 활용하는 고위 공직자를 심판하고 싶은 욕구가 깔려 있을 법하다. 이쯤 되니 정의당의 심상정 대표도 “정의당의 데스 노트는 정의당 것이 아니다. 국민의 것이다”라고 말했다. 최근 심 대표가 취임 1개월을 맞아 가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질문을 받자 내놓은 답변이다. 정의당의 선택이 궁금해진다.
정순백 논설위원 sbj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