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완월동’을 취재하고자 하는 대학생들과 함께 집결지 일대를 둘러봤다. 햇볕이 잘 들지 않고 이제는 사람 출입도 끊겨서 곰팡내가 나는 빈 건물들을 보면서 분명 재정비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도심 재개발을 주도해서 이익을 볼 건물주들은 바로 성매매 업소를 운영해 온 업주들이 아니던가. 여성단체는 성매매 집결지 여성을 위한 재활센터를 짓고 공공성을 살린 재개발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견 그 취지에 동의해서 완월동 취재에 함께하기로 마음을 먹긴 했지만, 현장 활동가에게 던지는 대학생들의 질문이 쉽게 끝나지 않는다. 집결지 여성들은 왜 떠나지 못하고 있나. 부산시와 관할 구청, 경찰은 왜 단속하지 않는가. 이들에게 과연 지원이 필요한가 등…. 요약하자면 성매매가 자발적인 영업행위가 아니냐는 의문점이 해소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상당한 질문과 답변이 오가고 나서야 팀원 전체는 집결지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바로 성매매 피해 여성이라는 인식을 같이하게 됐다. 피해자 이미지에 대한 좁고 정형화된 편견을 깨는 게 담론을 확장하기 위한 우선 조건이라는 생각을 했다.
최근 부산대 이철순 교수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사실과 달리 부풀려졌다고 발언해 파문이 일고 있다. 이 교수는 일본군 위안부 존재 자체를 부정한 게 아니라 길에서 납치하거나 사냥하듯이 잡아간 것은 아니라는 뜻이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강제연행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여성들을 모집했다고 해도 위안소를 운영한 것은 전쟁범죄이고 거기엔 이득을 본 가해자가 존재한다. 이 교수가 굳이 강제성을 부인하는 이유는 아마 일본군 위안부가 전쟁에서 일방적으로 희생당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던지자는 의도일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는 ‘강제로 끌려간 어린 소녀’라는 이미지가 정형화될수록 그 사례에 해당하지 않는 피해자들은 주변으로 밀려난다. 주변부 이야기에는 언론의 주목도 역시 덜하다.
광복절을 즈음해서 국제신문은 위안부 문제를 여러 차례 기사로 다뤘다. 1400번째 수요집회와 위안부 기림의날 행사를 스케치하고 위안부 이야기를 담은 영화와 책을 소개했다. 하지만 어쩌면 이미 많이 찾는 현장의 안전한 이야기일 수 있다. 조금 생소하고 혼란스럽더라도 주변부 서사를 다뤄서 질문을 던졌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광복절인 8월 15일과 그다음 주가 시작되는 19일, 국제신문 1면에 실린 뉴스는 부산 아파트 분양가가 하락했다는 소식이었다. 이 뉴스가 시사하는 점은 뚜렷하지 않다. 정부의 부동산 규제정책이 어느 정도 효과를 냈을 수 있다, 그러나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을 것이다, 해운대와 수영, 동래에서 고분양가 아파트가 많이 나왔는데 이 지역에서 분양이 없어 평균가격이 하락했다는 정도다. 부동산 규제정책이 지역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인상을 주지만 본격적인 분석 기사가 아니었다. 분양가 하락은 집값 하락에 비하자면 더욱 부분적인 이야기이기도 하고 과연 그날 가장 주목할 뉴스인가 의문이다. 1면을 광복절이란 계기를 살려 더 주목성 높게 구성할 수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가끔 어떤 기사를 읽을 때는 이 글이 바이라인을 단 기자가 쓰고 싶었던 기사일까, 아니면 해당 출입처에 배치된 1인의 마감용에 가까울까 생각한다. 이 기사의 주인은 누구일까. 세월호가 물에 잠기고 언론이 질타를 받을 때 어떤 기자는 ‘기레기’를 만든 원인 중 하나를 출입처라고 짚었다. 기자마다 개성과 전문성이 발현되기 어려운 구조라는 거다. 당시 그 기자는 반년간 세월호만 취재하는 중이었는데 그렇게 인력을 배치한 게 주간지에서도 이례적인 시도이자 기자에 대한 배려라고 했다.
진짜 쓰고 싶은 글을 쓰기보다 써야 하는 글을 쓰느라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면 활력을 찾기는 어려울 거다. 기자가 자기 글을 쓸 수 있도록 면이나 기사 구성 배치를 아예 뒤엎어버릴 수는 없을까. 매체가 너무 많다고 하는 요즘 종합일간지를 읽을 때 느끼는 점이다.
부산민언련 사무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