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에게 무서운 의뢰인은 무죄를 주장하는 사람이다. 성추행 사건은 더욱 그렇다. 피해자가 사실상 유일한 증거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지하철에서 치한으로 오해를 받은 청년이 법정에서 자신은 범인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판사는 이렇게 말했다. “진실은 신만이 알고 있다.” 이 말을 듣고 그는 중얼거렸다. “그건 틀린 말이다. 진실은 내가 알고 있다. 난 내가 범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성추행을 당했다는 피해자는 법정에서 일관되게 그를 치한으로 지목했다. 그는 다시 말했다. “그래도 난 하지 않았다.”
성추행을 부인한다면 변호사의 조력을 받는 것이 좋다. 피고인을 변호하는 변호사를 변호인이라고 부른다. 1심 법정 안으로 들어가 형사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을 살펴보자. 법대에 앉은 판사가 사건번호와 피고인 이름을 부른다. 변호인과 피고인은 방청석에서 일어나 피고인석에 앉는다. 민사재판은 변호사 혼자 출석해도 된다. 하지만 형사재판은 변호인과 피고인이 함께 출석해야 한다. 형사재판이 열리는 날을 ‘공판기일’이라고 한다. 첫 공판기일에서 판사는 피고인에게 성명, 주민등록번호, 주소지, 직업 등을 묻는다. 피고인을 확인하는 절차를 ‘인정신문’이라고 한다. 그 후 검사는 공소사실에 대한 요지, 예를 들면 ‘피고인은 여성의 엉덩이를 만져 강제 추행하였다’고 진술한다. 판사는 변호인에게 공소사실을 인정할 것인지 여부를 묻는다. 변호인이 공소사실을 인정하면 ‘자백’으로, 그렇지 않으면 ‘부인’으로 진술한다.
만일 피고인이 공소사실을 부인한다고 진술하면, 증거조사 절차로 나아간다. 검사는 증거목록 및 증거기록을 제출한다. 증거기록은 수사기관인 경찰이나 검찰에서 수집한 증거를 편철하여 기록으로 만든 것이다. 증거기록엔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피해자의 진술조서 등이 담겨 있다. 판사는 변호인에게 증거를 인부하라고 요구한다. 증거 인부란 증거에 대한 동의 또는 부동의를 말한다. 검사가 제출한 증거 중 동의할 증거와 부동의할 증거를 특정하는 것이다. 성추행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증거는 바로 피해자의 진술이다. 변호인은 피해자의 진술조서를 비롯하여 피고인에게 불리한 증거에 대하여 부동의한다고 답변한다. 검사는 피해자를 증인으로 신청하고, 판사는 다음 공판기일을 정한다. 이것으로 첫 심리가 끝난다. 소요되는 시간은 대략 10분 전후에 불과하다.
다음 심리는 보통 1개월 전후로 지정된다.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증인으로 출석한다. 검사는 증인이 자유롭고 편하게 증언할 수 있도록 피고인을 퇴정시키거나 가림막을 설치하여 줄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성추행 사건에 있어서 피해자의 진술은 중요하다. 피해자 진술이 일관되지 않고 모순된다면 피고인에게 유리하다. 반대로 그것이 일관되고 명확하다면 피고인에게 불리하다. 이런 경우 판사는 피해자의 진술을 받아들여 이렇게 판결한다. ‘피해자의 진술이 일관되고 명확하며 피해자가 무고로 처벌받을 위험을 감수하고 피고인을 모함한다는 것은 상식과 경험칙에 반한다.’ 그래서 피해자 진술의 모순점을 찾아내어 신빙성을 탄핵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힘겨울 때가 많다. 지난해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군 ‘곰탕집 성추행’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사건에서 피고인은 1.3초 만에 스쳐 지나던 여성의 엉덩이를 움켜쥐는 성추행을 했다는 혐의를 부인했지만 1심과 항소심에서 모두 유죄가 선고됐다.
증인 신문이 끝나고, 검사와 변호인이 달리 증인을 신청하거나 제출할 증거가 없다면 결심을 한다. 검사는 구형을 한다. 예를 들어 “피고인을 징역 1년에 처하여 달라”고 진술한다. 변호인은 무죄 이유를 설명하고 “무죄를 선고하여 달라”고 진술한다. 마지막으로 피고인이 직접 자신의 억울한 심정을 토로하며 최후 진술을 한다. 심리가 끝났다. 드디어 선고를 받는 날이 다가왔다. 과연 판사의 저울은 어디로 기울어질까? 변호인도 그날은 불면의 밤을 보낸다.
변호사